여자배구 라바리니 감독 ‘김연경 의존도’ 줄이며 ‘김연경 효과’ 높인다

라바리니 감독과 김연경 선수

박신자·김연경·히딩크·라바리니···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의 김연아 그리고 박세리로부터 시작해서 LPGA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여자골프. 더 이상 한국 여자 스포츠 선수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낯설지 않다.

남녀 통틀어 한국 스포츠가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최초로 메달을 차지한 것은 1967년 체코에서 열린 FIBA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였다. 1967년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한 시동이 걸려있었던 시점이지만 아직 우리의 국력은 북한에도 뒤질 때였다.

당시 어렵게 비자를 받아 간 대한민국 선수를 맞이한 사람들은 북한의 외교팀들이었다. 그들이 계속 쫓아다니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대한민국의 어린 여자농구팀은 강팀들을 연파하며 소련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기간 한국소개 자료를 돌린 단장이 추방되었고, 공포 속에서 한국팀은 마지막 경기에서 준우승이 확정된 후 특별 요청으로 눈물 속에 은메달만 수여받은 후 도망치듯 체코를 떠났다.

실제로 대회 기간 취재를 위해 체코에 입국했던 대한민국의 이기양 기자는 실종되었고 후에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1967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여자 농구에서 우승한 한국 주장 박신자가 시상대에서 관중들의 박수갈채에 답하고 있다. <사진 대한체육회>

대한민국 한국여자 농구팀에는 박신자라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있었다. 박신자는 176cm의 단신 센터였다. 당시 한국 여성의 평균키는 150이었다. 190cm가 넘는 장신선수들이 즐비한 팀 사이에서 맹활약을 한 박신자가 팀과 함께 사라진 후에 통상 우승팀에 주어지는 대회 MVP를 차지했는데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시 여자농구팀이 귀국하고 거국적인 카퍼레이드가 벌여졌고 수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꽃가루를 뿌리며 자랑스런 여자농구 선수들을 맞이하였다.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한 여자농구 박신자 선수가 청와대를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만나고 있다. <사진 대통령기록관>

박신자는 1999년 세계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이 만들어졌을 때 최초로 헌액되었다. 박신자와 한국여자 농구팀이 일으킨 기적은 예를 들어 메시가 평범한 나라의 축구선수로 뛰면서 그 팀이 월드컵의 준우승을 차지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김연경

현재 한국 여자스포츠에도 메시와 같이 세계 최고의 선수가 있다. 바로 김연경이다. 김연경은 한국, 일본, 터키, 중국에서 뛰면서 각 소속팀을 모두 우승으로 이끌었고, 런던올림픽 때는 득점상과 대회 MVP를 차지하였고, 현재 남녀 통틀어 연봉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대한민국 여자배구팀은 김연경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아직 올림픽에서 메달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구기 팀이 올림픽에서 최초로 메달을 딴 것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날으는 작은새’라고 불렸던 164cm 세계 최단신 공격수 조혜정이 이끄는 여자배구팀이었다. 헝가리와의 마지막 동메달 결정전에서 역전승을 마무리하는 조혜정의 마지막 스파이크를 잊을 수 없다.

몬트리올에서 여자배구 금메달은 한국계 시라이가 이끄는 일본팀이 차지했다. 시라이는 재일교포로 한국으로 와서 선수생활을 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당시 배구협회가 조금이라도 적극적이었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양정모가 아니라 여자배구팀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 여자배구팀의 감독은 2019년 1월 감독으로 이탈리아에서 영입한 스테파노 라바리니다. 라바리니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김연경에 주로 의존하는 팀의 칼라를 바꾸려고 했다. 김연경과 같이 특출한 선수는 한국에는 약이기도 하면서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바리니는 편하게 김연경에 의존하기 보다는 올해 도쿄 올림픽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김연경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러시아에 2:3 역전패하여 올림픽 직행 티켓을 놓쳤고, 잠실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일본의 2진 선수로 구성된 팀에 또 져서 충격을 주었다.

라바리니의 승부수는 드디어 1년이 지나서 통했다. 라바리니는 김연경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수비보다는 토털배구와 스피드 배구를 추구했다. 2020년 새해벽두 태국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전에서 한국은 그동안 수시로 까다롭게 발목을 잡았던 대만을 3:1로 이기고 결승전에서 최근 박빙의 승부를 벌여왔던 주최국 태국을 3:0으로 완파하고 1장 남은 올림픽 티켓을 잡았다.

라바리니는 대만과의 준결승에서 첫 세트를 뺏기고도 부상으로 컨디션이 안 좋은 김연경을 끝까지 벤치에 앉히는 배짱을 보였다. 준결승을 쉬면서 컨디션을 회복한 김연경은 결승에서 맹활약을 보였다.

놀랍게 라바리니는 배구선수 출신이 아니다. 그는 배구를 좋아하는 일반인이었으나 16살부터 배구코치를 하면서 배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현대배구의 흐름에 맞는 전술과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라바리니의 전술은 대한민국 여자배구팀에도 통한 셈이다. 대한민국 배구팀은 이번 대회에서 김연경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이재영과 김희진 강소휘와 같은 선수들이 살아났다. 동시에 또 50%에 달하던 김연경의 공격 부담률이 이번 태국과의 결승전에서는 30%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후배들과 공격을 나누면서 부담이 줄은 김연경의 공격성공률은 TV시청으로도 과거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보였다. 김연경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라바리니는 김연경과 한국배구를 살린 것이다.

라바리니의 전술은 히딩크가 일으킨 2002년 월드컵에서의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히딩크는 한국축구의 약점이 체력이라고 보고, 당장의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A매치에서 5:0으로 계속 지면서도) 기초체력을 기르면서 월드컵에 초점을 맞추었다.

히딩크. 그의 불끈 쥔 주먹은 2002년 초여름 대한민국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히딩크와 라바리니의 전술은 당장의 승부에 연연하여 중요하지도 않은 경기에서 손흥민을 무조건 풀타임으로 사용하는 벤투의 전술과 확연히 비교된다. 현재 올림픽 최종예선전을 치루고 있는 대한민국 올림픽축구팀을 벤투가 이끌지 않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라바리니의 이런 틀에 얽매이지 않은 뉴패러다임적 전략이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통해서 대한민국 여자배구가 다시 한번 기적을 연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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