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볼만한 영화②] ‘알라딘’과 ‘라이온 킹’ 그리고 ‘기생충’

라이온 킹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자, 이제 <기생충>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보도자료는 말한다. 영화는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의 만남이 빚어낸 신선한 스토리”로 “공생이 어려워진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기생충>이 “두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며, “같이 잘 살고 싶었던 백수 가족의 엉뚱한 희망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극의 전개는 현실과 인생의 특성이기도 한 희비극적 정서를 충격과 공감으로 전해주며 봉준호만의 가족희비극을 완성해 냈다”고.

전원백수로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 긴 해도 사이는 좋은 기택(송강호 분)-충숙(장혜진)네 가족.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명문대생 친구 민혁(박서준)이 연결시켜 준 고액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아버지는 물론 엄마, 여동생 기정(박소담)까지, 온 가족의 원조와 기대 속에 기우는 박사장(이선균) 집으로 향한다. 기택네처럼 역시 4인으로 구성된, 잘 나가는 글로벌 IT기업 CEO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다소 푼수 같긴 해도 젊고 아름다운 사모 연교(조여정)가 그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영화 포스터

어디에도 충숙(장혜진)의 ‘침입’으로 인해 밀려나는 가정부 문광(이정은)에 대한 언급은 없다. 크레디트에는 엄연히 주연으로 등재돼 있거늘 말이다. 그러니 4년 몇 개월 째 박사장 네 지하에 숨어 살아온, 문광의 남편 근세(박명훈)란 존재도 자료에서 지워져 있을 수밖에. 일찍이 다른 리뷰(광화문 문화포럼, 2019년 7월호)에도 역설했듯, <기생충>은 흔히 거론돼왔듯 두 가족이 아니라, 세 가족 이야기다.

영화를 관람한 이들은 알겠지만, 문광과 근세로 이뤄진 세 번째 가족 이야기야 말로 봉준호가 관객들에게 제시하고픈 ‘한방’이요 핵식 메시지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감독이 스포일러에 대한 주의를 신신당부한 것도 그들을 숨기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문광과 근세의 드라마야 말로 평범하다 못해 통속적일 대로 통속적인 줄거리요 소재며 주제를 지닌 가족‧휴먼드라마 <기생충>을 문제적 블랙 코미디로 비상시키는 결정적 변수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던지려는, 신자유주의를 향한 비판‧고발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고. 이렇듯 <기생충>은 지하와 지상, 그 중간 지점인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세 가족에 대한 접경의 드라마다.

<기생충>은 평범치 않은 세 가족 사이를 오가며, 감독이 역설했듯 희비극적으로, 더 이상 그럴 수 없으리만치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다름 아닌 ‘봉준호’가 ‘역대급 완성도’로 빚어낸 ‘가족 희비극’란 사실이 한국 영화로는 사상 최초로 <기생충>에 올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우선적 요인이었다. 더욱이 칸은 전통적으로 가족 드라마를 선호해오지 않았는가.

한데 ‘역대급 완성도’라고? 영화보기 50년쯤, 영화스터디 37년, 영화비평 26년 차의 전문가로서 단언컨대, <기생충>의 영화 미학·예술·오락적 완성도는 가히 ‘기념비적’이라 평하지 않을 길이 없다. <살인의 추억>(2003) 등을 넘어 봉준호 필모그래피 중 최고작인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124년에 달하는 공식적 세계 영화사의 맥락에서 조망해도, 내 진단은 유효하다.

안다. 호불호에서 <기생충>을 얼마든지 싫어할 수 있으며, 크고 작은 실망을 할 수 있다는 것쯤은. 그 불호나 실망 등은 그러나 그 소재나 주제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영화적 만듦새와는 무관할 공산이 크다. 그 얼마나 불편한, 때론 불쾌하기까지 한 가족 휴먼 드라마인가. 게다가 영화는 가족 차원을 넘어, 바야흐로 전 세계 경제적 불평등 등의 으뜸 요인으로 지목돼온 신자유주의를 향해 통렬한 비판‧고발을 날리지 않는가.

싫건 좋건 목하 현존 세계의 지배적 ‘세계 체제’(이매뉴얼 월러스틴)를 향해, 선-악의 경계가 와해된, 반지하-지상-지하의 세 경계적 가족의 극적 사연들을 통해. 다름 아닌 이런 요인들이 <기생충>에 관객들이 선뜻 다가서기 주저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별 다른 생각 없이 영화를 편하게 즐기고픈 관객들에게 <기생충>은 지나치게 무겁지 않을까? 가뜩이나 버티기 어려운 세상, 위안이 필요한 판에 뭐하고 골치 아픈 영화를 보러 간다는 말인가. 더욱이 영화는 세계 최고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술 영화 아닐까. 제 아무리 봉준호라고는 하지만···. 이런 의문·회의들이 <알라딘>에 이롭게 작동했지 않았을까?

완성도에서 <기생충>은 흠잡기 쉽지 않다. 연기부터 말하면, 상기 주조연만이 아니다. 기택의 아들 기우 역 최우식은 ‘발견’에 값한다. 극중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아도 기정 박소담은 빛을 발한다. 그 빛은 박사장의 딸 다혜, 아들 다송 역 정지소, 정현준에게서도 뿜어 나온다. 10명에 달하는 주조연이 제몫을 100% 이상 완수하면서, 이름을 얻는데 성공한다. 성격화(Characterization)의 맛은 어떤가. 캐릭터들의 성찬이다. 플롯의 정교함이나 완급 조절은 비교의 예를 찾기 쉽지 않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2000) 정도? 혼성적이면서 자기반영적(self-reflexive)인 장르 세공력도 압도적이다. 요즘 말로 융·복합 장르의 교과서라 할만하다. 강렬한 계단 이미지 등 공간 및 걸출한 음악 효과 등 사운드 연출 솜씨 또한 역대급이다···.

이와 같은 덕목들로 <기생충>은 내러티브는 물론 시‧청각적 재미와, 페이소스 짙은 정서적 울림, 불쾌감을 곁들인 지적 자극을 종합적으로 선사한다. 일말의 교훈은 덤이다. 공생‧상생이 제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그 과정, 즉 그 수단‧방법이 정당해야 한다는 ‘봉준호식 윤리’랄까. 이런 불편한 문제작이 1천만 고지를 돌파했다. 놀랍지 않은가.

단언컨대 칸 황금종려상이 아니어도 <기생충>은 역사적 걸작으로 남을 자격 충분하다. 그 세계 영화사의 어떤 무게중심을 <펄프 픽션>으로 1994년에 이미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던 선배 감독 쿠엔티 타란티노에게서 ‘봉테일’로, 한국영화로, 아시아영화로 상당 정도 이동시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