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명량’·‘용의자’ 반열엔 ‘실패’···일제식민기를 ‘희망·용기’로 해석엔 ‘성공’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영화 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만은 아니다. 목하 나의 각별한 관심권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영화들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둘러싼 일화를 송강호, 박해일, (고)전미선 등을 동원해 극화했거늘 개봉(7월 24일) 3주차에 이미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 10위권에서 사라지며 100만 고지도 넘지 못한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를 비롯해, <나랏말싸미>와는 대조적으로 개봉(7월 31일) 3주차 8월 13일(화) 기준으로 620만에 근접한, 기발한 발상에 탄탄한 플롯·캐릭터·연기 등을 두루 겸비한 코믹 재난영화 <엑시트>(이상근), <엑시트>와 같은 날 선보이며 쌍끌이 흥행을 펼치리라는 예상을 보란 듯 깨뜨리며 이제야 160만 선에 육박 중인, <검은 사제들>(2015, 장재현)의 김주환 감독(<청년경찰, 2017)>) 버전 격인 미스터리·액션·판타지·공포 드라마 <사자> 등이다.
그리고 이 영화도 그 중 하나다. <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는, 두만강에서 만주쪽으로 40리 정도 들어간 곳에 위치한 계곡지대 봉오동에서 1920년 6월 7일, 홍범도와 최진동 등이 이끄는 연합독립군단 대한군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가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200여명의 부상자를 내는 대승을 거둔 전투다.
같은 해 10월에 있던 청산리대첩에 가려진 면이 있으나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최초의 압승으로,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올렸다는 점 등에서 한국독립운동사의 기념비적 쾌거다. 다른 영화들 이야기는 다음 기회를 보자.
영화 <봉오동 전투>는 다름 아닌 그 역사적 실화를 극화한 ‘팩션’ 드라마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작전을 펼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한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황해철(유해진 분)과 발 빠르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황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 등은 총탄이 빗발치는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감독은 <구타유발자들>(2006), <세븐데이즈>(2007), <용의자>(2013), <살인자의 기억법>(2017)의 원신연. 공동제작에 각색에도 참여했다. <명량>(2014)의 김한민 감독이 주 제작자와 각색 외에 기획자로 나섰다. <봉오동 전투>에서 <용의자>와 <명량>의 기운과 그림자, 혹은 어떤 기시감이 느껴진다면 그래서다. 때문에 나는 <봉오동 전투>를 단적으로 ‘용의자와 명량의 독립운동 버전’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영화는 운명적으로 그 두 영화들과의 크고 작은 비교를 피할 길이 없다. 그것도 감당키 결코 쉽지 않는 부담스러울 대로 부담스러운 비교. 싫건 좋건 <명량>은 1760만명이라는 기적의 수치로 국적 불문 역대 흥행 정상작 아닌가.
<명량>에 비할 바는 안 되도 <용의자>도 413만 여명이라는 주목할 만한 흥행 성적으로, 한국영화 역대 박스 오피스 84위에 올라 있지 않은가. 비평적으로도 페이소스까지 담는데 성공한, 흔치 않은 휴먼 액션 드라마이기도 하고….
뿐만 아니다. <암살>(2015, 최동훈), <밀정>(2016, 김지운)에 이어 일제 식민치하의 실제 독립운동을 ‘전격적’으로 그린 <봉오동 전투>에 대한 호불호는, 상기 비교 말고도 영화의 팩션성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팩트 즉 사실에 역점을 두고 볼 경우, 영화가 지나치게 활극으로 치달은 게 아닐까 등의 비판을 면하기 불가능해 보인다. 달리 말해 영화가 섬세한 휴먼 드라마보다는 크고 작은 액션 위주의 스펙터클에 과도한 무게중심을 두면서, 드라마와 스펙터클 사이의 균형감을 시종 견지한 <명량>이나 <용의자> 곁에 나란히 서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연기의 달인’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유해진이나, 대사보다는 특유의 깊은 표정과 몸짓으로 존재감을 증거하는 류준열, 소재 등에서 무거울 수밖에 없는 영화에 일말의 코믹 터치를 불어넣어 숨 쉴 틈을 주는 조우진 등의 열연이 빛 바랜다면 그 또한 과도한 활극성 탓일 터. 그 결과 영화의 실화성이 적잖이 희석되고, 픽션물 같은 착각마저 인다.
픽션 즉 허구로서 영화적 재미에 방점을 찍고 본다면, <봉오동 전투>는 충분히 즐길 만한 웰-메이드 오락영화로 손색없다. 자료를 참고하면, 감독의 의도도 이쪽인 듯. 캐릭터들의 입을 통해서도 발화되듯, <봉오동 전투>는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 독립군이 되어 이름 모를 영웅으로 살아간 시간과 그들의 승리에 관한 영화이다. 기억되지 못 했고, 한 줄의 기록조차 남겨지지 않았던 이들이 뜨겁게 저항해 쟁취한 승리가 바로 봉오동 전투이다.”
감독은 강변한다. “지금까지 영화들이 대부분 피해의 역사, 지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에 대해 다뤘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는 절망으로 점철된 시기가 아니라 희망과 용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다. 외면하고 싶은 아픈 역사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저항의 역사다.” 그는 일제 식민기를 다룬, 같은 류의 여타 영화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기록하려는 열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할까.
판단은 물론 관객 개개인 몫이다. 혹 감독의 바람처럼 볼 수 있다면, <봉오동 전투>는 통쾌하기 짝이 없는 파격이요 반란이라 평해질 법도 하다. 여기 저기 어색하고 세련되지 못한 대목들이 없지 않고, 아예 드러내놓고 활용한 ‘애국 코드’가 다소 부자연스럽긴 해도 말이다.
그러니 <사자> 대신에 <엑시트>와 더불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쌍끌이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개봉(8월 7일) 2주차에 250만 선을 향해 나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