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격돌 안시성·명당·협상···전찬일 “목숨 구걸 않는 캐릭터 인상적” 평론

영화 ‘협상’ 언론시사회의 배우 현빈, 손예진, 이종석 감독(왼쪽부터).

[아시아엔=전찬일 영화 문화콘텐츠 비평가, <아시아엔> 문화담당 위원] 김광식 감독(<내 깡패 같은 애인, 2010>, <찌라시:위험한 소문, 2014>)의 <안시성>, 박희곤 감독(<인사동 스캔들, 2009>, <퍼펙트 게임, 2011)>의 <명당>, <히말라야>(2015, 이석훈)의 각색 등을 거쳐 장편 데뷔전을 치른 이종석 감독의 <협상>···2018 추석 연휴를 맞이해 선보인 한국영화들이다.

역사물 두 편에 현대물 한 편이다. 언뜻 다양성?차별성이 약해 보인다. 2017 한가위 국산 개봉작들인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남한산성>(황동혁), <범죄도시>(강윤성) 등과 비교해보면 더 그렇다. 2017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 같은, 의외의 주연배우도 없다.

<안시성>의 태학생 수장 역 사물, 남주혁이 비견될 만한 하나 그 파격성이나 집중성 등에서 비교가 안 된다. <범죄도시>의 마동석처럼, 티켓 파워를 겸비한 깜짝 스타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들 세 영화를 향한 대중 관객들의 호응이 상대적으로 허약한 편이다.

9월 23일까지, 개봉 첫 주 5일간의 흥행 수치가 140여 만, 76만, 62만 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날 동시에 선보였다 하더라도 저조한 스코어다. 지난해의 <킹스맨: 골든 서클> 같은 외국 히트작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허나 24일(월)부터 3일간 연휴가 더 이어지고, 27일 하루만 건너뛰면 다시 3일간의 주말 모드와, 10월 3일(수) 개천절 경축일이 기다리는 만큼 만회 내지 상승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구체적으로 전하진 않겠다. 사실 네이버나 다음에 실려 있는, 이들 세 영화에 대한 평점은 관람객들이건 몇 되지 않는 전문가들이건, 작년 추석의 세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영화 스터디 37년, 평론 25년 차인 나에게 이 영화들을 추천하겠냐고 묻는다면, 별 다른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하련다. 제법 즐길 만하니까. 단,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근거에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51대49의 기준에 입각해 삶을 영위해오고 있는 바, 이 영화들 역시 51%의 기준 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자격과 수준은 갖추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안시성>은 “강추”하고픈, 문제적 휴먼 역사 드라마다.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로 일컬어져온, 88일간의 안시성 전투와 양만춘 스토리를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극화한 220억대의 대형 토종 블록버스터.

강추의 으뜸 이유는 이렇듯 국산 스크린 역사영화의 의례적 마중물인 이씨조선을 탈피해, 645년의 고구려로 뛰어들었다는 바로 그 점이다. <안시성>은 실제 역사상의 대사건 즉 ‘사실’(Fact)들을 토대로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발휘해 다채로운 ‘허구’(Fiction)들을 자유롭게 융?복합시켜 빚어낸 전형적 ‘팩션(Faction)영화’다.

사실과 허구에서 비중은 당연히 허구에 주어진다. 고구려에 관한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우리네 역사현실인 바, 안시성과 양만춘에 대한 기록은 몇 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시성>의 감흥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이런 유의 영화들에 꼬리표마냥 따라다니는 고증이니 역사왜곡 등에 집착하지 않는 일정한 거리감 내지 여유가 요청된다. 지난 8월 출간된 홍남권 역사소설 3부작 『평강 고구려의 어머니』, 『안시성 그녀 양만춘』, 『계백 신을 만난 사나이』에서처럼 양만춘을 여자로 설정하는 파격까지 감행되고 있는, 그야말로 포스트-포스트-모던 시대 아닌가.

이 요청은 <명당>에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그렇게 감상할 경우, <안시성>과 <명당>은 다채로운 보고들을 꺼리는 물론 우리네 역사와 현실, 미래에 대해 크고 작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단연 주목할 만한 공론장적 오락영화로 손색없다.

<안시성>은 사실 노골적 ‘국뽕’마저도 미덕으로 승화시키는 불가사의한 대중영화다. ‘미션 파서블’로 둔갑시킨다고 할까. 오죽하면 어느 후배 영화평론가가 사적 채널에서 “없던 애국심도 막 생기게 만드는 영화”(윤성은)라고 했겠는가. 그래서다, 여느 영화 같으면 적잖이 오글거렸을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항복이라는 걸 배우지 못했다!”는 만춘의 포효가, 이순신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에 겹치면서 예상치 못한 크고 그윽한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성동일이 분한 극중 조연 캐릭터 우대가 다른 일꾼들과 함께 토산에 파묻혀 전사하는 장면도 그렇고.

안시성, 노골적 ‘국뽕’마저도 미덕으로 승화시키는 불가사의한 대중영화

나는 한 매체에 다음과 같은 총평을 내렸다. “이런 역사영화는 스펙터클과 드라마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에 십상인데, <안시성>은 둘의 조화가 최절정에 이른 작품”이라고. “특히 양만춘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라는 메시지를 담은 점이 인상적”이라고.

앞서 <아시아엔>에 피력했듯 “가장 뛰어난 덕목은 영화 출연하는 모든 캐릭터, 주연에서 조연, 단역까지 모두 살아 숨 쉰다는 것”. 만춘 포함 사물과 당태종(박성웅)은 말할 것 없고, 부관 추수지(배성우), 기마부대장 파소(엄태구), 백하부대장 백하(설현), 환도수장 풍(박병은), 부월수방 활보(오대환), 고구려 신녀 시미(정은채), 연개소문(유오성) 등 모든 캐릭터들과 연기들이 시종 생동감 넘치는 것. 영화 후반 신녀 시미에게 자신의 배신을 자백케 하면서 그녀를 죽게 하고, 그녀의 배신으로 인해 파소의, 나아가 백하의 목숨을 잃게 하는 영화의 플롯에서는 감탄이 절로 난다. 이만 하면 모두를 살린 좋은 영화이지 않을까, <안시성>은.

<안시성>에 대해 일정 정도 리뷰를 했으나, 솔직히 위 세 영화들에 대한 영화 미학?예술적 진단?평가에는 별 관심 없다. 지금 이 순간 소위 영화적 완성도니 따위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이 영화들에서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다른 지점이다. 이들 영화들이 일부 인물들의 죽음을 처리하는 시선과 태도다! 파소도, 백하도, 심지어 신녀 시미조차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대다수 사피엔스들처럼 구차하고 비겁하게, 부끄럽게 삶을 연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의?명분에 걸맞게 의연히 죽음을 선택한다. 일찍이 <동주>(2016, 이준익)에서 윤동주와 송몽규가 그랬듯이. <명당>이나 <협상> 또한 마찬가지다.

<명당>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을 축으로, 장동 김씨의 권세를 영원히 지속시키고자 온갖 권모술수를 일삼는 왕의 처가 어른 김좌근(백윤식)과 그 아들 병기(김성균), 재상과 더불어 김씨 일가가 쥐락펴락하는 세상을 뒤집고 싶은 일념에서 그 어떤 인간적 수모도 감내하는 흥선(지성) 등 왕이 될 수 있는 천하명당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대립?욕망을 그린 휴먼?역사 드라마다.

명당,개인은 물론 시대 운명까지 바꾸려는 인물들 간의 갈등

천하명당을 이용해 권력을 탐하다 못해 왕권까지 탐하게 되고, 마침내는 개인은 물론 시대의 운명까지 바꾸려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풍수지리 사상에서 시작된 명당이라는 소재와 조우해, 거대 서사로 탄생됐다.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숱한 캐릭터들의 드라마는 역사적 사건, 즉 사실과 영화의 극적 장치 즉 허구가 적절히 결합돼 팩션영화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명당>의 우선적 재미는, 명 연기자들의 호연을 지켜보는 데서 연유한다. 그야말로 불꽃이, 마구 튄다. 연기 조화도 조화지만, 그 연기 대결의 강도는 세 편 중 단연 최고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씨조선이 끝내 망하고, 뒤이어 일제식민지로 치닫게 되는 우리 역사가 실은 당장은 명당이나, 결국은 망국으로 귀결될 풍수지리에 의해 예정돼 있었다는 극적 암시다. 여간 흥미로운 가정이 아니다.

하지만 평소 풍수지리에 무관심한 이들에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설정일 법도 하다. 그와 같은 대담한 극적 설정이 동시에 극적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영화의 부진한 흥행에 한 몫 한 건 아닐까.

<명당>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을 끄는 요소는, 한양 최고 기방 월영각의 대방 초선 캐릭터와, 그 역을 연기한 문채원이다. 초선은 극중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건만, 특유의 미모와 지성, 의리 등의 덕목으로, 이 남자들의 드라마에서 기대 이상의 강력 임팩트를 안겨준다. 그녀는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배신하지 않고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놓는다. <안시성>의 그들처럼. 놀랍지 않은가.

이렇듯 영화는 기생이란 존재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을 조롱하고 불식시킨다. <최종병기 활>(2011, 김한민)에서 확인된 바 있는 문채원이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를 새삼 각인시켜주면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기론, <협상>의 인질범 민태구(현빈) 역시 못잖다. ‘사적 복수’라는 한계는 명확하고, 그 목적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이고 살상을 저지르긴 해도 그는, 영화 속 여느 고위급 권력자들과는 달리 비겁하게 살아남으려 하지 않는다. 흥미롭지 않은가. 영화의 이해를 위해, 내 이야기를 더 하는 대신 제작자 윤제균의 변을 전하면 어떨까.

‘협상’ 제작자 윤제균의 변

“<협상>은 우리나라 최초로 ‘협상가’를 전면에 내세운 ‘협상’에 관한 영화입니다. ‘새로운 영화, 새로운 장르에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국제시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이종석 감독과 의기투합했습니다. 시나리오 초고를 읽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힘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 손예진이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협상전문가 캐릭터에 도전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자 배우 현빈이 사상 최악의 인질범으로 연기 인생 최초의 악역 캐릭터에 도전했습니다. 협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대립하는 협상가와 인질범처럼 손예진, 현빈 두 배우의 폭발적인 연기 시너지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솔직히 더러는 동의가 되고, 더러는 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부진한 흥행 실적도 후자 쪽 의견이 더 많다는 구체적 증거일 듯. 내게도 아쉬움이 적잖다. 태구 캐릭터가 좀더 사려 깊었더라면, 싶다. 그래야 민태구의 복수가 사적 한계를 넘어 공적 영역으로 나아가는 결말부의 통쾌함이 더 커졌을 테니까. 손예진의 하채윤 캐릭터도 좀더 통찰력 있고 좀더 대담했더라면, 싶은 바람도 있다. 물론 내적 극 논리를 넘은 탈-텍스트적 바람이란 건 잘 안다.

윤제균의 말처럼, 어떻게 더 잘 해낼 수 있겠는가. 손예진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현빈은 여태껏 본 영화 중 가장 멋있다. 채윤의 선배 경찰 안혁수 역 김상호도, 때로 답답은 해도 약방의 감초 같은 명 조연으로 멋있다. 한영숙/장영남도 멋있다.

이만들 하면 세 영화 다 볼만하지 않을까.

 

One comment

  1. 잘 읽었습니다. 특히 지엽단말적인 문제로 폄하하지 말자는데 동감합니다. 세 영화 모두 수작이며 관객들에게 충분한 줄거움을 줄 것이라는것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타가 있는데 남재혁이 아니라 남주혁입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네요. 수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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