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창간 8돌] ‘기생충’ ‘설국열차’ ‘괴물’의 봉준호 만나다 ···’어느 11월의 멋진 날에’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 참석자들

[아시아앤=이형선 전 <원주문화방송> 기자] ‘···봉준호 감독이 ’2019 자랑스런 아시아인상‘을 받게 됐다···’

아시아엔 창간 8주년 기념식 초대장을 받고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새 8년이나 됐구나.’

한국기자협회장을 하면서 아시아기자협회를 만들고, 그들의 생생한 시각과 진솔한 생각을 담아낼 매체를 만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군분투하던 이상기 선배님(아시아엔 발행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렇게 힘든데 이걸 꼭 해야 하나?’

봉준호 감독이 필자의 아들 윤재성군을 꼭 껴안고 있다. 

늦은 출산에 애 키운다는 핑계로 도와드리지도 못하면서,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늘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우보천리(牛步千里)라고, 그 많은 짐을 짊어지고 한발 한발 걸어서 여기까지 이른 노고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엄마, 거기(기념식) 나도 가면 안돼?”

여덟살 꼬마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했지만, 매달리는 아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집을 나섰다. 영화 <옥자>(봉준호 감독)를 본 아이의 품 속엔 ‘봉준호 감독님에게’로 시작되는 꾹꾹 눌러 쓴 편지 한통이 들어 있었다.

지난 5월,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다.
‘정말 봉준호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을까?’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뒤적이다 잠들었는데, 찬란한 햇살과 함께 칸에서 그렇게 기다리던 낭보가 날아와 있었다.
정말 기뻤다. 그가 수상하는 장면을 보는데 눈물이 다 났다.

한때 시나리오를 공부하면서 그가 만든 영화는 물론, 각본까지 샅샅이 찾아 읽은 적이 있었다. 작품성은 말할 것도 없고, 대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m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까지 찾아봤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 먹었고, 먹고살기 힘들어 아르바이트로 결혼식장의 비디오를 찍어주는 일까지 하면서도 한시도 그 꿈을 놓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날 황금종려상 수상 기사에 모처럼 댓글을 달았다.
‘봉 감독님을 보면서 저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칸의 영예가 단지 봉준호 개인만이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밤을 새우는 대한민국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느꼈다면 나만의 지나친 감상일까?

혹시라도 어디서든 만나면 따뜻한 밥한끼라도 사드리고 싶었다.

한국영화가 지난 20년 동안 영향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상 후보로 오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美기자의 질문에 “좀 이상하긴 하지만, 별 것 아니다. 아카데미시상식은 국제영화제가 아니지 않나? 로컬이지”라고 하는 그를 보면서 또 한번 속 시원히 웃었다.

봉 감독에 대한 아자상 기념식은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렸다. 산골에 살다 오랜만에 열차를 타고 나선 나들이 길, 오전 중에 비도 그치고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좋아라 하며 따라 나선 아이의 얼굴은 기념관이 가까워질수록 굳어졌다.

전날 밤에도 ‘너무 떨린다’며 뒤척이더니, 그 많은 어른들 틈에서 꽃다발과 편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자랑스런 아시아인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

아이의 긴장은 기념식장에 들어오자 곧 풀렸다.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알파고 시나씨(아시아엔 편집장)를 보더니 냉큼 뛰어가 싸인을 받아왔다. 유명한 개그맨을 만났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아이는 들떠 있었다.

잠시 뒤, 모두가 기다리던 봉준호 감독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몸집에 우직한 인상이었다.

이상기 선배는 창간 8주년 기념사에서 전찬일 영화평론가와 더불어 ‘아시아영화제’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봉 감독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머리를 끄덕였다. 모두가 박수를 쳤다.

‘2019 자랑스런 아시아인상’을 받고 나서 봉 감독은 “한번도 아시아인이나 세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산 적이 없었는데, 20년 동안 그냥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며 “지난해 수상자였던 박항서 축구감독님이 아시아에 끼친 영향에 비하면 저는 너무 보잘 것 없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좌중은 웃음으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동안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뤄뒀던 일들에 마음속으로 하나 둘 순번을 매겼다. 봉준호 감독의 사인도 받고 사진까지 함께 찍는 영광을 누린 아이는 마치 제가 상이라도 탄 것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11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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