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여름 영화 대해부①] ‘밀수’에서 ‘달짝지근해 7510’까지


프롤로그, 가이드에 앞서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 부산콘텐츠마켓(BCM) 전문위원] 올해 최대 화제작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실존했던 한 과학자의 핵개발 프로젝트의 막후를 그린 <오펜하이머>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논하기로 하자. <밀수>에서 <달짝지근해 7510>(이하 <달짝지근해>)까지, 올 여름 대목에 맞춰 선보인 화제의 한국영화 6편이 모두 그 베일을 벗었다.

류승완 감독이 <모가디슈> 이후 2년 만에 발표한 <밀수>(개봉 7월 26일)는, 1970년대 가상의 마을 군천을 중심 무대로 펼쳐지는 해양 범죄 활극이다. 처음엔 입에 풀칠 하기 위해 바다에 던져진 각종 밀수품을 건지며 살아가던 일군의 해녀 등 보통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했던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는데,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김종수 등 화려한 출연진이 개별적으로나 앙상블적으로나 놓치기 아까운 명품 연기를 선사한다.

<비공식작전> 한 장면

<비공식작전>은 <끝까지 간다>(2014)와 <터널>(2016)의 명장 김성훈 감독이 하정우 주지훈 투톱 등과 함께 1986년 레바논 한국 외교관 납치 실화사건을 추적한 웰-메이드 드라마다. <더 문>(이상 8월 2일 개봉)은 ‘신과 함께 시리즈’의 쌍천만 감독 김용화가 설경구 도경수 김희애 박병은 조한철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달 탐사선 우리호의 달을 향한 여정을 극화한 야심적인 SF 드라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9일)는 <잉투기>(2013)와 <가려진 시간>(2016)으로 그 존재감을 각인시킨 바 있는 엄태화 감독이,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등 스타 연기자를 기용해 빚어낸 최상급의 재난성 휴먼드라마다.

한편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해 관객들과 조우한 <달짝지근해>는 <완득이>(2011)와 <증인>(2019)의 이한 감독이 유해진 김희선 차인표 진선규 등 연기파들과 더불어 완성시킨 요절복통 감동 드라마이며, <보호자>는 톱스타 정우성이 ‘보호자’ 역의 주인공 외에도 감독까지 맡은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영화 <밀수>

추정 순제작비만 적게는 180억원(<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많게는 약 280억원(<더 문>)이 투하되며 이른바 2023년의 네 ‘텐트폴 영화’―텐트를 세울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기둥을 뜻하는 텐트폴(tentpole)에서 나온 용어로, 한 해의 핵심적인 상업영화를 가리킨다―의 승패는 일찌감치 드러났다. 2강(<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1중(<비공식작전>) 1약(<더 문>)으로. 특히 <더 문>의 참패는 가히 ‘충격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8월 14일(월) 기준으로 50만조차 넘질 못해 1백만 선 돌파도 불가능하다. <비공식작전>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14일을 기해 1백만명을 넘긴 했으나, 200만 선은 힘겨워 보인다. <더 문>은 2022년 빅4의 흥행 대참패작 <외계+인 1부>(최동훈 감독)의 153만에 현저히 못 미친다. <비공식작전>도 <비상선언>(한재림 감독)의 205만명에 미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실은 2강도 마찬가지다. <밀수>는 500만 고지를 향해 나아가면서 일찌감치 손익분기점을 넘긴 했으나, 지난해의 빅4 1위 작 <한산: 용의 출현>(김한민 감독)의 726만명에 근접하기란 불가해 보인다. <달짝지근해>와 <보호자>도 가세하지만, 무엇보다 15일 새벽 2시 기준 예매 관객 수만도 60만명에 육박 중인 <오펜하이머>로 흥행추가 전격 기울어질 테기 때문이다. 예매율 2위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16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3위 작인 <달짝지근해>는 고작 8만을 넘어 9만을, 5위 작인 <보호자>는 4만을 넘어 5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예매율로만 치면 15일부터 당분간 한국 영화계는 ‘<오펜하이머> 판’이 펼쳐지는 셈이다. 그 기세가 과연 지속될 것인가는 물론 장담할 순 없지만….

박스오피스 200만 선에 접근 중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의 으뜸 흥행 상수인 액션과 코믹 요소가 비교적 약해, <한산>은 고사하고 2위작인 이정재의 첫 장편 연출작 <헌트>의 435만명을 상회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개인적으로는 워낙 출중한 완성도 덕에 뒷심을 발휘하며 장기 상영에 들어가, 그 기록을 넘어서리라 예상은 하고 있으나 말이다.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오락적 재미에선 그렇다손 치자. 2023년의 네 텐트폴 영화들의 미학적 수준?완성도나 영화사적 의미 등이 2022년의 네 화제작들에 비해 떨어져, 지금과 같은 상대적으로 부진?저조한 흥행 실적에 그치고 있는 것일까. 다시금 기승을 부리고는 있다곤 해도, 엔데믹이 선언된 지 몇 개월이 흐른 이 시점에서? 작년의 빅4 영화들이 기대에 현격히 미치지 못했던 흥행 성적으로 인해, 작금의 국산영화 위기론이 전격 대두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기에 던지는 물음이다.

제 아무리 엄격?인색하게 진단하더라도,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다. 수준 차가 나긴 해도 <오펜하이머>의 기세에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을 <달짝지근해>와 <보호자>까지 6편을 꼼꼼히 짚어보면, 그야말로 ‘6편 6색’이라 평하지 않을 도리 없다. 흥행 스코어에 상관없이 그 다채성에 눈 부실 지경이다. 그래 그들의 면면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영화들이 다양하지 않다고?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볼 영화가 없다고? 하긴 한동안 그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긴 어려웠다. 특정 영화를 실례로 들 것도 없이, 특히 올 상반기까지 지난 1년이 그랬다. 그러나 올 여름의 화제작 6편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그런 비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고작 3주에 걸친 짧은 기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보인 국산 대중영화들이 이렇게 다채로운 적이 있었는지 자문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 않을 자신이 없다.

박세영 감독의 경이로운 역대급 실험영화 <다섯 번째 흉추>(2일 개봉)나 이솔희 감독 김서형 주연의 문제적 범죄드라마 <비닐 하우스>(7월 26일 개봉) 같은 저예산 다양성 영화들로까지 그 시선을 확장시키면, 그 다채로움은 한층 더 커지고 깊어진다.

칸영화제에서의 월드 프리미어에 이어 9월 6일 국내 첫선을 보이는 유재선 감독 정유미 이선균 주연의 <잠>이나, 28일 시작되는 추석 연휴에 맞춰 ‘마침내’ 선보일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과 김지운 감독의 ‘화려한 재기’ <거미집> 등까지 감안하면, 더 그렇다.

필자의 오십 수년의 영화 보기 이력으로 진단컨대, 다채성이란 측면에서 2023년은 한국영화역사의 어떤 원년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찍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등 한국영화사의 빛나는 수작?걸작들이 대거 등장하며 한국영화사를 빛냈던 2003년이 그랬듯. 30년 구력의 영화비평가인 나부터가 그 작업을 열심을 기울여 시도?추진할 계획이다. 이 원고가 그 작업의 일환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필자는 영화 텍스트(Text)를 넘어 그 텍스트를 에워싸고 있는 이런저런 콘텍스트들(Contexts; 맥락/문맥), 그중에서도 특히 역사적?산업적?문화적 맥락들과, 해당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들과 맺기 마련인 상호/간(間)텍스트들(InterTexts)에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또 애쓰는 비평가의 길을 걸어왔다.

앞으로도 비평 활동 최후까지 그럴 참이다. 상호텍스트들 중에서는 다른 영화들과의 관련성에 머물지 않고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춤, 건축 등 타 분야 예술?문화?오락들과의 연관성에도 영화 못지 않은 관심?애정을 두루 바쳐왔다. 속내에서는 ‘영화광적’ 삶을 살아왔건만 단 한 번도 영화마니아임을 자처한 적이 없는 건 그래서다. 내게 영화는 다른 분야들과 대등?평등한 수평적 존재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한때, 구체적으로는 대중문화로서 영화가 20세기 전반을 대변한다고 해서, 영화에 그 어떤 특권 내지 기득권을 부여?주장하려는 노선에 크고 작은 저항을 해온 터였다.

<거미집>과 <잠>, 그리고 아직 개봉 일정이 잡히지 않은 김창훈 감독 홍사빈 송중기 비비(김형서) 주연?조연의 걸출한 데뷔작 <화란> 등 올해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5편의 장편과, 학생 영화들의 단편 경쟁 섹션인 라 시네프(옛 Cin?fondation)에 초청된 황혜인 감독의 <홀>과 서정미 감독의 <이씨 가문의 형제들>까지 총 7편의 한국영화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우리 영화의 다채성에 각별한 눈길이 가닿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들이 평소 다른 그 무엇보다 다양성이 모든 문화?예술?오락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겨온 내 취향과 지향, 가치관에 부응한 것이다. 그래 올 칸에서 만난 한국영화의 다채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또 역설해왔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은 다름 아닌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서서히 대두되었고 최근 들어 급부상한 한국영화, 더 나아가 K-콘텐츠 전반의 크고 작은 위기론은 거의 전적으로 ‘국내용’이라는 것이다. BTS나 블랙 핑크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더 이상 떨어뜨릴 수 없으리만치 떨어뜨리며 역대급 실패를 드러낸 2023 잼버리 사태를 어느 정도나마 ‘반전’시키고 더러는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뉴진스, NCT 드림, 마마무 등 K-팝을 선두로 한 K-컬처요 K-콘텐츠였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객관적으로 조망하면 작금의 위기론은, K-콘텐츠를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터진 게 아닌가, 등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 산업적 관점을 넘어 문화적으로 접근할 경우, 영화를 포함한 K-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은 여전히 강력하고 문제적이며, 현재진행형이요 미래형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올 빅4의 저조한 흥행세는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 내 한결같은 견해)다. 그보다는 이 땅의 대중 관객들의 영화관람 성향의 근본적 변화나, 여타 환경적 요인들로 인해 발생했을 확률이 높다. 코로나-19를 겪으며 급부상한 OTT(Over The Top;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2배 가까이 상승한 관람료,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으로 인한 ‘숏 폼 콘텐트’(Short Form Content)의 일상화 등이 가져온 결과들이랄까. 올 여름의 국산 화제작 6편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품게 된 내 나름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제 위기론 와중에 그런 ‘파격적’ 문제의식을 갖게 한 여섯 편의 화제작들 속으로 좀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보자. 지면의 제약상 마냥 길어질 수는 없으므로, 가능한 간략하면서도 압축적으로…….(계속)

One comment

  1. 헛소리.. 작년부터 이번해에 까지 영화들이 충격적으로 상태가 안좋음. 유명한 감독들 작품들 다 실망이 큼. 최동훈, 류승완, 이병헌, 한재림, 변성현등 여러 감독들이 수준미달의 작품을 내놓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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