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2 칸 통신②] ‘오징어게임’ 스타 이정재 감독 데뷔작 ‘헌트’에 기립박수
이정재 각본?감독에, 이정재?정우성?전혜진?허성태?김종수?정만식 주연?조연의 화제작 <헌트>가 우리 시간으로 20일 오전 7시를 기해, 칸영화제 주 상영관인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성황리에 세계 첫선을 보였다.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결국 충돌하는 안기부 간부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1호 암살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 반전에 반전을 거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오징어게임>의 월드스타가 빚어낸 첫 장편 연출작이 아니더라도, 칸에서는 으레 상영 전후로 환호를 수반한 열띤 갈채나 기립박수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엔딩 크레디트가 뜬 직후부터 터진 기립박수가 약 7분간 이어졌다거나, 2017년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됐던 <불한당>(변성현)과 2019년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기생충>(2019) 때도 7분이었다는 등의 국내 보도는 그러려니 치자. 매체에 따라 8분이라고도 하고 5분여간이라고도 하나, 그 또한 마찬가지다. 그 몇 분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5년만에 다시 칸을 찾아 올해로 총 21회를 맞이하는 경험 치로 판단컨대, <헌트>을 향해 쏟아질 호응이 ‘역대급’일 거라는 내 예상은, 보란 듯 빗나갔다. 첫 상영에 대한 반응은 평균 이상 정도였으니 말이다. 명색이 전문가라면서도, 칸영화제가 아직도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 OTT 영화나 드라마에 그다지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프랑스에서 개최된다는 기초적 사실을 의식하지 못해 벌어진 오판 아니었나 싶다. 뤼미에르극장 1층과 2층 모두 빈자리 하나 없이 관객들로 꽉꽉 들어찼다고 하나, 다소는 과장이다. 이른 입장이 아니었건만 운 좋게도 1층 우측열 썩 괜찮은 좌석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주변에 빈 좌석이 더러 눈에 띄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겪기 불가능할 일종의 진풍경(?)이었다.
칸영화제만의 ‘별난’ 특징 중 하나가 어렵사리 입장을 해놓고도 상영 도중 퇴장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헌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장 내 옆옆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영화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는 대체 왜 그렇게 서둘러 나간 것일까. 그렇게 영화가 재미없게 다가섰던 것일까. 아무리 박하게 평한다 하더라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혹 <헌트>가 ‘한국적 맥락’(Local Contexts)을 모르면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어서 아니었을까? 영화가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난삽’하게 다가섰던 게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벌였던 광주대학살을 비롯해 전두환 친동생 전경환 사기사건을 시사하는 ‘전경자 사기사건’과, 1983년 북한 장교 이웅평이 전투기를 몰고 월남한 사건을 끌어들이는 등 당시의 크고 작은 실재 사건들을 극화시켜 빼곡하게 배치했다.
필자는 애써 해외 프로페셔널이나 일반 관객들의 반응을 물어보진 않았다. 칸 현지에서 데일리를 발간하는 미국 영화산업 관련 업계지 할리우드 리포터가 “화려한 액션 장면들은 인상적이었으나, 플롯 내용이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했다”고 평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미국의 대표적 연예매체 버라이어티 또한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헌트>가 그려낸 극 중 캐릭터들의 쫓고 쫓기는 역학관계는 이정재와 그의 팀이 심사숙고한 기술들로 열심히 끌고 나갔지만, 화려한 액션 신들에 비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면서, “액션은 번드르르하고 즉흥적이었으며 감정이 와 닿지 않고 양식화된 느낌이 강했다.”(이상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151286632330888&mediaCodeNo=258 참고?인용).
물론 정반대의 평도 즐비하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정말 놀라웠다. 한국역사를 잘 몰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거나 “(이정재와 정우성 중)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선한 놈인지가 헷갈렸다”면서,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와 같은 관객평을 전한다. 필자의 총평은 위 두 평가의 어떤 사이에 위치한다.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관계망도 그렇거니와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을 따라가기란 여의치 않았다. 지나치게 서두르는 듯한 편집 호흡도 그렇고, 영화제 공식언어인 프랑스어와 영어가 동시에 자막으로 나오는 바람에 한층 더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 지점이 있는 대사 처리 등도 거슬렸다.
<경향신문> 기자가 “정부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견제와 같은 당시 정치맥락이나 5·18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주요사건을 인물의 대사나 회상을 통해 스치듯 다루다 보니 인물의 감정선과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난해하기보다는 산만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는데, 그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이정재의 연출 역량은 기대 이상이다. 2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하된 대작을 연출 초짜가 그 정도로 요리했다니, 감탄하지 않을 길 없다.
배우 출신 감독으로는 한국 영화사의 새장을 열었다고 할까. 상업 오락 영화에, 한국 현대사의 숱한 그늘들을 적절히 배합시킨 문제의식은 큰 주목에 값한다. 전반적 연출리듬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개별 연기는 말할 것 없고 이정재-정우성 투톱의 연기 ‘케미’도 좋다. 성격화(Characterization)들도 인상적이다. 특히 주지훈·황정민·이성민 등 정상급 배우들의 카메오 연기는 영화 보기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스타 캐스팅이 얼마나 험난한지 익히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깜짝 출연만으로도 영화는 흥미진진하다.
<헌트>는 오는 7월이나 8월에 개봉될 예정이란다. 개봉을 전후해 영화를 다시 한번 더 찬찬히 관람할 참이다. <헌트>에 이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23일(현지시간 기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는 26일, 문수진의 단편 경쟁작 <각질>은 27일, 그리고 병행 섹션인 비평가 주간 폐막작인 정주리의 <다음 소희>는 25일 공식 첫 선을 보인다.
미처 언급하지 않았으나, 한국 배우 오광록과 김선영이 출연하고 20대 후반의 신동한 등이 조감독으로 참여한 영화 한편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22일 선보인다. 캄보디아계 프랑스 감독 다비 추의 두번째 연출작이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박기용)가 제작 지원을 하고, 캄보디아 출신의 프랑스 감독 다비 추가 연출한 프랑스 영화이자 두번째 장편영화인 <서울로 가는 길>이다. 어린 나이에 입양된 25세 여성 프레디(박지민 분)가 자신이 태어난 조국으로 돌아와 친부모를 찾는 과정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