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2 칸 통신①] 코로나19, 우크라이나전쟁 뚫고 17일 개막

코로나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뚫고 개막한 2022 칸영화제 개막식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영상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17일 오후 7시(한국시간 18일 오전 2시)를 기해, 제75회 칸영화제가 12일간의 대장정을 내딛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크고 작은 우려 따위는 아랑곳 없다는 듯, ‘엔데믹’의 자유롭고 열띤 분위기에서였다. 공식적으로는 영화 상영 중 마스크를 착용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그 요청에 응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당장 나부터도 그랬다. 실내건 실외건 마스크를 쓰거나 벗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있는 중이다.

개막 선언의 주인공은 줄리앤 무어였다. <세 가지 색 : 블루>(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와 공동으로 1993년 50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은 로버트 알트먼의 <숏컷>으로 유명세를 탔으며, 이후 30년 가까이 건재를 과시하고 있은 60대 초반의 세계 최강 캐릭터 (여)배우다.

55분 간 진행된 개막식을 이끈 MC는,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낯익은 40대 중반의 비르지니 에피라였다. 비록 여우주연상 수상은 못했어도, 폴 버호벤의 <베네데타>(2021)와 <엘르>(2016)나 쥐스틴 트리에의 <시빌>(2019) 등을 통해 ‘칸의 디바’로 부상한 여장부다. 그녀는 기대 이상의 당당한 자태와 유려한 말솜씨로, 과다한 말잔치로 지루해질 뻔한 잔치에 특유의 활기를 더했다.

비르지니는 올 칸 개막식을 단연 빛낸 프랑스의 유명 싱어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인 뱅상 들레름의 축하 공연에서도, 사회자 이상의 활약상을 톡톡히 펼쳤다. 뱅상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록스타 조니 할리데이의 Que je t’aime(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를 연주·노래하며 청중의 참여를 끌어냈는데, 말미에 제목이자 후렴구인 Que je t’aime를 뱅상과 함께 부르며 공연의 맛과 멋을 한층 더 심화·제고시켰다.

그녀는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명배우 포레스트 휘태커와, 위원장 뱅상 랭동을 필두로 한 9인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이 등장할 때도, 그리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영상으로 깜짝 출연할 때도 그랬다.

개막식 직전 칸 현지에서 가졌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강변했듯, 그녀는 ‘나’(I)를 남발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길지 않았고 요점으로 바로 들어갔으며”, 배우이면서도 관객으로서도 영화만들기에 대해 말할 줄 알았다. 그 점에서 그녀는 문자 그대로 진정한 ‘의식의 주인’(Master of Ceremony)이었다.

1997년부터 2017년까지 20회 참여했으나 2년은 개인 사정으로 2년은 코로나19로 걸렀던 칸 영화제를 5년만에 다시 찾은 필자의 감회가, 남다르리라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테다. 칸을 향한 이틀간의 여정 중,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항을 거쳐 두 번째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니스 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반나절의 시간을 고흐 미술관을 여유 있게 음미하며 고흐를 재발견하고, 니스에서 1박 후 월요일 휴관임에도 사전 연락을 취해 특별 관람한 마르크 샤갈 박물관을 만끽한 것부터가 평생 잊을 수 없을 귀한 선물이요 추억이었다.

17일 오후 칸에 도착해 프레스 배지를 발급 받는 과정도, 그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진풍경이었다. 대기 줄이 어찌나 긴지, 일찌감치 예매해놨던 영상 개막식 및 개막작 관람을 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했었다면 상상이 갈까.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보게 된 개막작 <파이널 컷>은 별다른 감흥을 안겨주진 않았다. 지난 2011년 칸에서 남우주연상(장 뒤자르댕)을, 2012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는 작품상을 거머쥔 사상 최조의 외국어 영화였다는, 화제의 프랑스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의 감독 미셸 아자나비시우스가 연출했건만 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하련다.

2022년 칸영화제는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만에 선보이는 <헤어질 결심>과,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 황금종려상을 가져간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송강호를 필두로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이지은), 이주영 등의 멋진(Cool) 연기자들과 함께 빚어낸 한국영화 <브로커>가 경쟁 부문에, <오징어 게임>의 월드 스타 이정재가 주연에 메가폰까지 잡은 <헌트>가 심야 상영(Midnight Screening) 섹션에, 문수진의 <각질>이 총 9편의 단편 경쟁작에 포함된 데다, <도희야>로 2014년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됐던 정주리의 <다음 소희>가 칸 비공식 병행 섹션인 비평가 주간에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폐막작으로 월드 프리미어 될 터라 우리 영화를 향한 국내외적 관심이 크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일찍이 다른 지면에서 말했듯, “상기 한국영화들은 작금의 ‘한류’라는 연장선에서 크고 작은 화제몰이의 주인공들이 될 공산이 크다. 그 중에서도 <헌트>는,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고 있는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매버릭>(조셉 코신스키)과 더불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킬 게 틀림없다. <오징어 게임>의 기록적 대성공으로 세계적 톱스타가 된 이정재에게 쏠릴 스포트라이트는 예측컨대 “역대급”일 게 자명하다.“ 뿐만 아니다. “말이 세계 3대 영화제이지 그 영화역사적 위용?파장 등에서 베를린이나 베니스에 추종을 불허하는, 2022년 칸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물론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야기시킬 화제성과 최종 수상 여부다.”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는 상은, 송강호 등 남우주연상이다. 전도연이 15년 전에 이미 <밀양>(2007)으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제 때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터라, 그 기대·예상이 성급하게 비칠 수는 있어도 말이다. 한국영화 중 첫 번째로 선보이는 것은 <헌트>다. 19일 자정에 첫 선을 보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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