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2 칸 통신③] 박찬욱 <헤어질 결심> 최대 화제작, <기생충>이어 황금종려상 ‘기대’

탕웨이와 박해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과연 칸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 세 번째 경쟁작 <아가씨>(2016)로는 빈손으로 돌아갔으나, 첫 번째 초청작 <올드보이>로 2004년 심사위원대상, <박쥐>로는 2009년 안드레아 아놀드의 <피쉬 탱크>와 공동으로 심사위원상을 안은바 있는 ‘칸의 남자’의 네 번째 경쟁 부문 입성작 말이다. 영화는 23일 오후(현지 시간) 공식 선보이며, 상대적으로 미적지근하게 흘러가던 75회 칸의 최대 화제작으로 급부상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영화 포스터

영화는 칸 현지에서 가장 널리 참고되는 데일리인 스크린인터내셔널 11인 평단으로부터 종합 평균 3.2점(4점 만점 기준)을 받은바, 총 21편 중 14편의 평점이 발표된 25일 현재 선두를 달리면서, 봉준호의 <기생충>(2019)에 이어 한국영화 사상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향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영화 보기 50여년, 영화 스터디 40년, 영화 글쓰기 삼십 수년의 이력으로 판단컨대 <헤어질 결심>의 영화 미학‧예술적 수준은, 단연 주목해야 할 문제적 걸작으로 손색없다. 단지 박찬욱의 전작(全作)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아니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서도….

그렇다고 <헤어질 결심>의 3.2점이 거품을 물을 정도로 대단한 평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저들의 평가와 칸 경쟁 부문 9인 심사위원들의 결정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지난해 황금종려상을 안은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은 1.6점에 지나지 않았다. 총 24편의 경쟁작 중 숀 펜의 <플래그 데이>(FLAG DAY)의 1.1점과 난니 모레티의 <일층 이층 삼층>(TRE PIANI; THREE FLOORS>의 1.5점에 이어 바닥에서 세 번째이거늘, 세계 최고권위를 ‘과시’해온 영화제의 정상에 오르지 않았는가. 더욱이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2018년 칸에서, 3.8점으로 스크린 사상 역대 최고점을 받고도 무관에 그쳤지 않았는가.

<기생충>은 하지만 3.5점으로 황금종려상 유력후보로 점쳐졌고, 끝내 수상으로 귀결됐다. 2021년의 경우, 3편이 3점을 넘었는데 다들 본상을 차지했다. 3.5점으로 최고점을 얻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각본상, 3.4점의 <메모리아>(아피찻퐁 위라세타쿤)는 <아헤드의 무릎>(나다브 라피드, 2.1점)과 더불어 심사위원상을, 3점의 <아네트>(레오 카락스)는 감독상을 가져갔다.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에 불과해도, 오로지 프랑스인 15명으로 이뤄지는 ‘르 필름 프랑세’와는 달리 세계 여러 나라의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로 구성되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단의 평가가 일종의 척도가 되어온 게 현실인 것이다.

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수긍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가령 영국 유력 매체 <가디언>을 대표해 참여하고 있는 피터 브래드쇼는 그저 잘 나가는 평론가 중 1인이 아니라, 영국에서 막강 영향력을 행사하며 영국 영화 비평계를 대표해온 ‘더 원’(The One)이라는 것이, 런던아시아영화제 전혜정 집행위원장의 전언이다. 그런 그가 가디언 지에 5점 만점을 주고 스크린과 더불어 갈라 크롸제트에서도 황금종려상 감이라며 4점을 부여했으니, 어찌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내 매체의 보도들에서, 그의 이름과 평가가 적잖이 동원되고 있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 결과다. 프랑스 포지티프 지의 미셸 시망이나, 타임 지의 스테파니 자카렉은 또 어떤가. 그들의 위용 또한 피터 못잖다. 그러니 <헤어질 결심>이 황금종려상 유력후보로 회자되는 것이 과욕만은 아닌 것이다.

기자회견장의 탕웨이, 박찬욱, 박해일(왼쪽부터) <사진 전찬일>

대체 <헤어질 결심>이 어떤 영화기에 피터 브래드쇼 같은 최강 수준의 평론가가, “그 긴장과 음모, 그 과시적인 감정적 대치들, (종종 오늘날의 스릴러들을 방해하곤 하는) 휴대폰 테크놀로지의 천재적 사용, 환상적인 옥상 추격을 포함한 그 양식적인 세트 피스들, 그리고 맛깔스럽게 조작하는 그 플롯의 비틂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매우 히치콕스럽다'(very Hitchcockian)”로 평한 것일까?

탕웨이는 ‘굉장’(magnificent)하고, 그녀가 영화에 불어넣은 ‘지성과 활기 넘치는 에너지’(intelligence and live-wire energy)는 ‘경이’(a marvel)라면서 말이다. 사실 피터의 이 단평이 <헤어질 결심>에 다가서는 핵심 지점이다.

박 감독은 국내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영향을 준 작품들로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1964)과 스웨덴의 경찰 추리 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7권, 셀리아 존슨과 트레버 하워드 주연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국의 고전 멜로 영화 <밀회>(Brief Encounter, 1945)를 들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오마주를 바치려 하지 않았다면서, 그 영화역사상 으뜸 거장과의 직접적 관련성은 부인했다. <헤어질 결심>은 그러나 히치콕에서 시작해 히치콕으로 끝나는 영화(라는 것이 내 최종 해석이)다.

박해일과 탕웨이

암벽 등반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베테랑이 산 정상에서 추락해 변사하는 사건으로부터 영화는 출발한다.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 분)은 사망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와 조우하는데, 어딘가 평범치 않다. 딸과 아버지로 오해 받을 만큼 나이차가 많다고는 하나, 남편의 죽음 앞에서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 것.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라면서. 경찰은 당연히 그녀를 피의자로 지목,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 등을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관심을 넘어 그녀에게 서서히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 좀처럼 속내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서래는 해준이 의심하는 것을 알면서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대한다….

그다지 새롭다고 할 순 없어도 이 간단한 줄거리만으로도 혹하지 않을 수 없을 의미심장한 제목의 영화에는 ‘히치콕적인 기운’이 관통한다. 마르틴 베크에서 영감을 얻었을 형사 캐릭터부터가, 내키진 않아도 옛 친구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 매들린(킴 노박)을 미행하며 그녀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혹(Attraction)을 느끼는, <현기증>(1958)의 은퇴한 형사 존 ‘스코티’ 퍼거슨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박해일은 제임스 스튜어트의 아우라마저 풍긴다. 해준이 서래의 아파트를 훔쳐보는 장면들은 영락없이 ‘히치콕 월드’의 어떤 전환점이자 ‘훔쳐보기 영화’(?)의 대표작 중 대표작인 <이창>(1954)을 빼닮았다. 결말부 해준이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사라진 서래의 행방을 찾아 헤매는 장면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의 클라이맥스 러시모어 산 시퀀스에 연결된다.

기자회견장의 탕웨이와 박찬욱 <사진 전찬일>

감독의 만년 친구 조영욱이 지휘한 음악은 어떤가. <무진기행>을 소환할 뿐 아니라 영화의 주제에도 가닿는 이봉조 작곡 정훈희 노래의 주제곡 <안개>는 한국 영화음악사에 길이 빛날 명 선곡이다. 특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정훈희-송창식이 듀엣으로 부르는 <안개>는 가히 압도적 울림을 선사한다. 고전음악 팬이라면 그야말로 ‘환장’하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선곡들의 효과는 여느 대중영화의 클리셰적 배경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속으로의 몰입감을 배가시켜주기는 하나 그 효과는 <싸이코>(1960) 등 히치콕 영화음악의 대위법적 연출에 직결된다. 결국 <헤어질 결심>은 의도 여부를 떠나, ‘21세기의 히치콕’이 되고 싶은 박찬욱의 무의식적‧잠재의식적 욕망을, 피터 브래드쇼가 ‘in their way’라고 표현했듯 천의무봉의 ‘박찬욱식 스타일’으로 극화시킨 멋진(Cool) 영화다.

음악만이 아니라 미장센으로도 영화를 지배하는 안개 이미지는 <헤어질 결심>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결정적 장치다. 영화의 어느 순간 서래가 입었던 옷 색깔이 어느 시선에서는 녹색으로 또 다른 시선에서는 파랑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게 ‘단일하게’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함’(ambiguity)이야말로 <헤어질 결심>을 넘어 ‘박찬욱 월드’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제작사 상호가 ‘모호 필름’인 것은 그저 ‘가오’(허세)로 지어진 것이 아닌 셈이다.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표를 도저히 구할 수 없어 드뷔시관에서의 4시 반 프레스 상영으로 관람해 현장에는 함께 하지 못했다. 박찬욱은 뤼미에르대극장의 6시 공식 상영 후 다음과 같이 아주 간단한 소회를, 겸손하게 피력했다. “이렇게 길고, 지루하고, 구식의 영화를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 소회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2시간 18분이면 대중 영화치고는 짧다고 할 수 없다. 박찬욱 영화 특유의 센 폭력이나 섹스 설정‧묘사도 거의 없다. 오죽하면 기자회견에서 왜 그런 요소들이 없냐는 웃지 못 할 해프닝적 질문이 나왔겠는가. 그간 칸을 찾았던 박찬욱의 세 전작(前作)을 떠올려보면 그 질문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야말로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하드보일드적 명장’ 아니었던가.

영화 색계 포스터

그런 그가 체모 노출은 물론 실제 정사를 의심받기도 했던 <색, 계>(2007, 이안 감독)의 여주인공 탕웨이를 기용해, 소위 ‘플라토닉 러브’의 어떤 정점을 보여줬던 이안의 <와호장룡>처럼 최상의 경지로 영화를 빚어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헤어질 결심>이 누군가에게 지루하다면, 박찬욱 월드의 어떤 변화 때문일 공산이 크다. 게다가 그는 지독히도 고전적(classical), 달리 말해 ‘구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냈다. 가볍다 못해 이 한없이 경박한 시대에,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디지털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 즉 사본‧모조품(simulacrum)의 시대에 말이다. 고로 정훈희(와 송창식)가, 말러가 호출된 것은 그냥 효과적 멋부리기가 아닌 것이다. 이 영화는 박찬욱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는 ‘찬욱 월드’의 디지로그적 정면 승부수다. 그 기표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에 기댔건만 그 기의는 아날로그적 정서를 잃지 않으려는, 환갑을 바라보며 삶의 새 주기를 맞이하는 세계적 중년 감독의 어떤 몸부림이랄까.

기자회견장의 탕웨이 배우, 박찬욱 감독, 박해일 배우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박찬욱 감독은 “사랑만큼 중요하고, 인간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경험은 드물다”면서,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로맨스”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판단컨대 그 소개는 진심일 공산이 크다. ‘품위’를 지키려는 형사와, 그 품위에 치명적으로 끌려 그 남자를 분명 사랑하건만 그 남자를 지키려고 ‘헤어질 결심’을 하는 한 외국 여자 사이의 로맨스라, 매혹적이지 않은가?

<버닝> 포스터

필자는 서너 시간도 잠을 자지 못했건만, 다음 날 오전 8시 반 뤼미에르대극장을 찾아가 영화를 다시 봤다. 칸을 스물한 번 찾은 필자로서의 거의 없었던 영화체험이었다. 그리고는 영화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한 동안 필자는 <헤어질 결심>에 빠져 허우적거릴 지도 모르겠다. 국내 개봉에 맞춰 또 보고 또 보면서. 영화관에서만 다섯 번을 관람한 <버닝> 때 그랬던 것처럼. 그 동안 필자는 총 11편의 박찬욱 장편극영화 연출작 중 최고작은 <복수는 나의 것>(2002)이라고 말해왔다. 이제 내 선택은 바뀌지 않을까, 싶다, <헤어질 결심>으로.

<헤어질 결심>이 <기생충>의 길을 걷게 될지 <버닝>의 길을 걷게 될지는 며칠 지나봐야 한다. 수상 결과에 상관없이, 영화는 내게 알리 아바시(<경계선, 2018>)의 <홀리 스파이더>와 함께 올 칸의 황금종려상 감이다. 적어도 감독상을 기대하고 있다. 며칠 후면 올 칸도 12일 간의 대장정을 마치는데, 이래저래 흥미로운 영화제로 기억될 게 틀림없다. 으레 그랬듯…….(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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