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3칸 통신③] 고레에다 감독의 16번째 장편영화 <괴물>을 주목한 까닭

개막 5일째인 20일 밤 현재, 칸 현지에서 가장 널리 참고 되는 데일리 <스크린> 12인 평단 평점이 주어진 영화는 총 6편이다. <흥미의 영역>이 4점 만점에 3.2점(12명 중 9명이 평점을 부여했다), <건초에 대하여>가 2.9점, <청춘>이 2.8점으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22번째 칸을 찾으면서도 까칠하고 인색하기로 악명 높은 칸 데일리 평단이 초반에 이렇게 후한 평점을 준 것을 목격한 적이 별로 없기에, 개인적으로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다. <괴물>이 2.3점, <귀환>이 2점으로 중간권을, 프랑스 감독이면서 영어로 찍어 미국영화로 진출한 장-스테판 소베르의 <검은 파리들>이 1.3점으로 하위권을 이루고 있다. 6편 중 4편만 챙긴 필자의 평가와는 적잖이 다른데, 재미 삼아 밝히면 내 평점은 <괴물> 4점 만점, <청춘> 3점, <검은 파리들>과 <흥미의 영역> 각 2점씩이다.

칸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장편 영화인 <괴물>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16번째 장편 영화인 <괴물>은 30년 구력의 비평가인 내게 그를 재평가하게 한 역작이다. 동의 여부를 떠나 <어떤 가족>보다 더 좋게 봤다면 이해할까. 일본 드라마 계를 대표하는 유명 각본가로,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世界の中心で、愛をさけぶ)의 공동 작가이기도 한 사카모토 유지가 시나리오를, 지난 3월 유명을 달리해 <괴물>이 헌정된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았다.

영화는 아들(쿠로카와 소야 분)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어머니(안도 사쿠라)가 아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학교를 찾아가 탐문‧추적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충격적 진실’을 그린다. 어머니를 축으로 시작한 영화는, 사건이 흐르면서 그 중심축이 아들의 가해자인 줄 알았던 담임선생(나가야마 에이타)으로 이동하면서 한 차례의 반전이 이뤄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16번째 장편 영화인 <괴물>의 한 장면

<괴물>은 우선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이나, 마즈 미켈슨에게 2012년 칸 남우주연상을 안긴 토마스 빈터베르크 감독의 <더 헌트>처럼 ‘진리의 상대성’을 극화한 영화로 다가선다. 영화와 관련해 ‘라쇼몽 효과’가 운운되는 것은 그래서다. 위에서 봤듯 영화에 대한평점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도 그래서일 공산이 크다. 신선한 맛이 강렬하진 않다고 할까. 하지만 영화는 또 한 차례의 반전을 시도하면서, 고레에다가 이 영화를 통해 진정 역설하고 싶었을 지점으로 나아간다. 오디션을 통해 ‘직감’으로 결정했다는 두 소년의 이야기로.

<괴물>은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을 가리키며 ‘탈-진실’로 옮겨지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를 넘어, 어른들과는 다를 수밖에 소년들만의 어떤 가능성‧미래를 밀도‧농도 짙은 디테일로 구축‧묘사한다. 그 디테일이 가히 ‘봉테일’의 그것을 능가한다.

류이치의 음악과 유지의 각본력이 고레에다의 연출력과 완벽히 결합돼, 기대 이상의 시너지가 뿜어 나온다. 때론 감상적 휴머니즘에 머물곤 했던 그간의 고레에다와는 적잖이 다른 경지다. 결국 영화는 ‘괴물’이 되지 않고는 작금의 탈진실의 시대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경청하지 않을 수 없을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최상의 스토리텔링, 즉 플롯과 최상의 미장센‧연기‧성격화‧사운드 효과 그리고 경직될 대로 경직된 일본을 포함한 현대 사회를 향한 비판과 조롱, 그리고 승화까지 곁들여. 이 영화에서 고레에다 나름의 ‘은밀한’ 정치사회적 문제의식이 감지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 특유의 과잉반응이라고 핀잔을 들어도 하는 수 없다. 판단컨대 올 칸의 으뜸 수확 중 하나는 <괴물>을 세계에서 처음 관람한 관객 중 한 명이 됐다는 바로 그 사실일 수 있겠다, 싶다. 진심이다. 더욱이 명색이 평론가이면서도 그간은 명성만 들어왔지 눈으로는 미처 확인하지 않았던 ‘왕빙의 세계’를 세계 최고의 영화제 현장에서 직접 챙겼으니, 수확은 배가된다. 그 이야기들은 다음에 계속하기로 하자.(계속)

20일 저녁 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성황리에 열린 ‘K-무비’ 파티에서 <괴물>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전찬일 필자(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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