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3칸 통신⑤] 아우슈비츠 다룬 ‘흥미의 영역’, 덤덤하지만 스펙터클한

‘2023 칸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오른쪽) <사진=EPA/연합뉴스>

지난 3편에서 개막 5일째인 20일 밤 기준 칸 현지에서 가장 널리 참고 되는 데일리 <스크린> 평단 12인이 평점을 부여한 6편 중 <흥미의 영역>이 4점 만점에 3.2점(12인 중 9인 평가), <건초에 대하여>가 2.9점, <청춘>이 2.8점으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흥미의 영역>은 세 명의 평점이 더해진 결과 평균 2.8점으로 내려갔다. 세 명 중 한 명은 4점을 줬으나 다른 두 명이 0점과 1점을 줬기 때문이다. 영화는 <갈라 크롸제트>의 12인 평단으로부터 3.25의 높은 평점을 받으며, 최선두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 작품은 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사는 한 부유한 독일인 가족의 일상을 추적한다. 그 일상을 젊은 사령관과 그 부인을 중심으로, 섬뜩한 수용소 현실과는 더 이상 대조적일 수 없으리만치 우아하면서도 덤덤한 톤 앤 매너로, 그러면서도 ‘스펙터클하게’ 묘사한다.

그 가족의 집은 정원들로 에워싸여 있다. 부부는 수백만 유태인들이 처참하게 살해되는 현실 따위는 자신들의 삶과는 무관한 양, 대학살의 희생자들에게 훔친 부를 기반으로 밝은 미래를 그리느라 여념이 없다. 여러모로 감독의 대표작 <언더 더 스킨>에 직결된다. 사령관 역을 <하얀 리본>(2009,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주인공 교사였던 크리스티안 프리델이, 부인 역은 <토니 에드만>(2016, 마린 에데)의 여주인공 산드라 휠러가 맡았다.

편의상 3점 이상을 상위, 2점에서 3점 미만을 중위, 2점 미만을 하위권으로 분류하면 후반에 접어든 24일 새벽 현재, 평점이 부여된 13편 가운데 3편이 상위권을 이루고 있다.

핀란드 영화의 대명사인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낙엽들>이 3.1점(두 명의 평점이 빠져 있어 이 역시 변동 가능성이 있다)으로 선두에 자리하고 있고, 토드 헤인즈의 <메이 디셈버>와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추락의 해부학>보다는 이 제목이 더 설득력 있어 바꾸련다)가 3점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지난해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만이 3점을 넘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한 호평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스크린> 역대 최고점인 3.8점을 득했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비하면 그다지 높은 평점들은 아니지만….

감독의 20번째 장편이자 5번째 칸 경쟁작인 <낙엽들>은 더 이상 외로울 수 없을 노동자 계층의 중년 남녀를 축으로 펼쳐지는 희비극적 멜로물이다. 여주인공이 라디오를 틀 때마다 우크라니아 전쟁 관련 뉴스가 들리는 걸 봐서는 지금 현재의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나, 영화의 미장센이나 인물들의 행색은 수십 년 전인 듯한 레트로 풍 느낌을 물씬 풍긴다.휴대폰이 등장하나, 그 기능은 최소한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만 작용한다.

남자의 알코올중독과 의도치 않은 불의의 사고들로 그들의 데이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진 않아도, ‘마침내’ 해피엔딩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감동이 여간 짙은 게 아니다. 디지털 최첨단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적 감성 가득한 영화과 과연, 2002년 <과거가 없는 남자>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감독에게 영예의 황금종려상이 안기게 될지 관심이 급 고조되고 있다.

<메이 디셈버>는 천상 ‘토드 헤인즈 표’ 삼각 멜로 영화다. 23년 연하의 남자와 사는 과거의 60대 여 톱스타(줄리안 무어) 앞에 어느 날, 그 여배우의 삶을 연기하려는 여배우(나탈리 포트만)가 찾아오면서 예상치 않았던 사건들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두 디바의 강렬한 연기가 볼만한데, 두 여걸들에 좀처럼 밀리지 않는 한국계 미국 배우 찰스 멜톤의 존재감이 시쳇말로 장난 아니다. 강약과 완급을 겸비한 그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올 칸의 발견 중 하나로 기억될 성도 싶다. 젊은 시절의 로버트 드 니로가 떠오른다면 과장일까? <벨벳 골드마인>(1998) 감독답게 음악 또한 인상적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터.

<추락의 해부>는 21세기를 대표하는 법정 영화로 간주되기 충분할 정도의 수준급 휴먼 스드라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의문사로 인해 용의자로 몰린 여인의 재판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는 극적 설정도 그렇거니와 영화를 관통하는 히치콕적인 분위기로 인해 <헤어질 결심>과 비교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드라마를 끌어가는 솜씨도 그 걸작 못잖다. 여주인공 산드라 역을 <흥미의 영역>의 잔드라 휠러가 연기했는데, ‘칸의 여왕’을 기대하게 할 만큼의 원숙한 경지를 뽐낸다.

간단하게라도 거론할 만한 영화는 이들만이 아니다. 왕빙의 210여 분(지난번에 200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212분)짜리 다큐멘터리 <청춘>을 비롯해 경쟁작 중 유일한 황금카메라상 도전작 <바넬과 아다마>(영화를 보면 딱 한 차례를 제외하면 ‘아다마’가 아니라 ‘아담’으로 불리지만, 그대로 쓰련다), 여러 면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더 랍스터, 2015>,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2018>)나 <애스터로이드 시티>로 올 칸 경쟁 부문에 함께 하는 웨스 앤더슨과 비교될 법한 예시카 하우스너의 <클럽 제로> 등이다.

‘특별 상영’ 부문에서 선보인 왕빙의 60분짜리 경이로운 중편 다큐 <맨 인 블랙>, 작금의 포르투갈 영화를 대변하는 페드로 코스타의 9분짜리 단편 다큐 <불의 딸들> 등도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그들에 대한 언급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23일 라 시네프 섹션에서 공개된 황예인 감독의 <홀>도 25일 잡혀 있는 서정미 감독의 <이씨 가문의 형제들>까지 보고나서 같이 짚으련다. 송중기의 나들이로 더 큰 화제가 되고 있는 <화란>은 이곳 시각 24일 오전 11시에 공식 첫 선을 보인다.(계속)

칸영화제 상영관에서 전찬일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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