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 리뷰①] “나는 왜 영화 <탄생>에 허우적거리고 있을까”

영화 탄생

개봉(11월 30일) 하루 전인 VIP 시사에서 첫 관람 이후 보름 이상을 필자는, 박흥식 감독(<역전의 명수, 2005>, <경의선, 2007>), <두 번째 스물, 2016>)의 네 번째 장편 영화 <탄생>으로 인해 허우적거리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치명적으로 매혹당해’(Fatally Attracted)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고 할까.

영화는 조선의 첫 번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46)가 세례를 받은 1836년부터 병오박해로 1946년 순교할 때까지의 10년을, 김 안드레아와 그와 함께 했던 일군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치는 전기성 휴먼드라마다.

<탄생>은 최우선적으로는 종교 영화다. 지난 2020년 선보인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 이야기’ <저 산 너머>(최종태 감독)의 투자사 ㈜아이디앤플래닝그룹(회장 남상원)이 133억원에 달한다는 총제작비를 조달해 투자하고, 감독의 부인이기도 한 박곡지 편집감독이 대표를 맡고 있는 민영화사가 가톨릭문화원ALMA ART와 공동으로 제작한 천주교 관련 영화다.

따라서 14일 기준 27만여명의 관람객 중 적잖은 수가 그 종교 관계자일 법도 하다. 투하된 제작비를 감안하면 이미 ‘흥행 참패’요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겠으나, 이 나라에서 종교 영화라는 규정이 얼마나 큰 상업적 약점인지를 고려하면 마냥 저조한 성적만도 아니다. 순제 22억에 총제 4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빚어낸, 대한민국 현대 천주교사, 아니 일반 역사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거인 (고)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전기물이 10만여명에 그쳤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더 그렇다.

그럼에도 내러티브는 말할 것 없고 시·청각 등 영화의 전 층위에서 여간해선 흠잡기 쉽지 않은 <탄생>이 구축한 미학적·예술적 수준에 눈길을 주면, 영화의 흥행세가 지나치게 미약한 것이 아닌가 싶은,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종교성 짙은 소재가 결국 결정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종교 영화로서 <탄생>이 안겨준 의미와 재미, 감동, 교훈 등이 내게는 가히 ‘기념비적’으로 다가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극찬성 평가는 물론, 필자가 김대건이란 한국사의 실존 인물이나 그가 살았던 시대 등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평론가 특유의 립서비스가 아니라 <탄생>은, 중학교 시절 이래 50년 가까이를 크리스천으로 살아온 한 인간을 ‘재탄생’시키고 있는 중이다. 단적으로 그동안 지녀온 천주교를 향한 크고 작은 (부정적) 편견들을 일거에 깨부수며, 그 ‘구식 기독교’(?)를 새롭게 바라보고 사유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다. 더 나아가 종교 일반의 기능·역할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짚어보게끔 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관을 찾아 두번이나 더 관람하고 어떤 채널에서든 몇번이고 더 볼 마음을 먹고 있는 것도 그렇거니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정본 전기’라는 《김대건, 조선의 첫 사제》(이충렬 지음, 김영사, 2022-06-20)를 구입해 읽고 있고,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찬스무비’ <탄생> 편 1부(https://www.youtube.com/watch?v=5ebm-NNwoZ0&feature=youtu.be)에서 함께 출연했던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질문에 감독이 ‘강추’했던 한 권의 저서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서양과 조선의 만남》(박천홍 지음, 현실문화, 2008.7.21)도 주문해 읽고 있는 것 등도, 그 재탄생의 증거들이다.

영화 탄생

문득 오십수년 간을 영화와 더불어 살아온 필자에게 <탄생>처럼 인생의 전환점적 각성·배움의 계기로 승화된 종교 영화가 있었던가, 자문해본다. 단언컨대 없다. 몇 해 전 선보인 천주교 영화의 대표적 걸작 <두 교황>(2019,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도, 198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등에 빛나는 로버트 드 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 롤랑 조페 감독의 그 유명한 <미션>도,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가 1966년 출간된 엔도 슈사쿠의 베스트셀러 동명 원작 《침묵》(김윤성 옮김, 바오로딸, 2017년 2월 25일 3판 22쇄)을 토대로 영화화한 ‘17세기, 실종된 스승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인 일본으로 목숨을 걸고 떠난 2명의 선교사의 이야기를 담은 대서사 실화 드라마’ <사일런스>(2016)도, 종교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필자를 거듭나게 하진 않았다.

실은 종교 영화만이 아니다. 1980년대 초반 프랑스문화원에서 조우한 이래 40년 가까이를 내 ‘인생 영화’ 정상 자리를 고수해온 장 르누아르 감독의 <게임의 규칙>(1939)을 비롯해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1954),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이안의 <와호장룡>(2000), 김기영의 <하녀>(1960) 등 필자의 ‘세계 영화 10선’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인간 전찬일을 거듭나게 한 적은 없다.

이창동의 <버닝>(2018), 봉준호의 <기생충>(2019), 홍의정의 <소리도 없이>(2020),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최근 이 30년 차 영화평론가에게 치명적 매혹·충격을 선사한 일련의 한국산 걸작들도 매한가지다. 그들은 내게 평생 함께 살아갈 영화 동료들로 굳건히 자리하고는 있으나, 내 삶을 재탄생시킨 것은 아니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탄생>의 영화적 수준이 상기 수·걸작들을 능가·상회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토록 그 영화에 사로잡힌 내게도 어떤 지점들은 흡족하진 않다. 무엇보다 ‘인간 김대건’의 흐트러진 모습도 다소는 담겼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일찍이 소설가 김훈이 《칼의 노래》(2001)에서, 감독 김한민이 <명량>(2014)과 <한산: 용의 출현>(2022)에서 ‘인간 이순신’의 그런 모습을 담으려고 애썼듯. 감독에게도 밝혔듯, 허구적 캐릭터인 즈린·김선(송지연)과 김대건 사이의 멜로라인도 좀 더 짙게 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랬더라면 신실한 천주교인들 중에는, 성인을 지나치게 세속화시켰다고 난리법석을 떨 이들도 없진 않겠지만 말이다. 온갖 공을 들여 구현했을 폭풍우 속 해상 시퀀스들 중에서도, 절체절명의 위기 국면에 놓인 돛단배 장면들이 주는 일말의 어색함은, 못내 걸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흠들도 <탄생>의 숱한 덕목들을 위협하거나 훼손시킬 정도는 아니다.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 미덕은, 천주교를 대하는 영화의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시선이다. 들쑥날쑥 개신교도라는 작가 겸 감독은 그 전통 기독교를 마구잡이로 판단·재단하지 않는다. 적잖은 천주교 관련 영화들과는 달리, 때론 교조적으로 흐르곤 했던 그 보수적 종교의 음지를 들춰내려는 시도에는 아예 눈길을 던지지 않는다. 그 종교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게 아니냐는 등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겠으나, 일정한 거리를 견지하면서도 존중감을 잃는 법이 없는 것.

외국 배우들 포함 족히 30∼40명은 될 캐릭터 및 출연진들도 마찬가지다. 김대건 역의 윤시윤만이 아니다. 그에겐 아버지 같은 인물이었으나 운명적 동지로서 함께 순교의 길을 걷는 현석남 역의 윤경호, 양적 비중은 크지 않으나 질적 차원에서는 얼얼한 임팩트를 안겨주는 수석 역관 유진길 역의 안성기, 한때 서학으로 일컬어졌던 천주교의 평등성을 축약적으로 제시하는 조신철 역의 이문식, 그야말로 더 이상 진실할 수 없을 열혈 신도인 김방지거 역의 하경, 김대건이 사제의 길을 걷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정하상 역의 김강우, 이성을 넘어 진정으로 김대건을 흠모했던 여인 김선 역의 송지연, 조정에서 파견됐건만 그 누구보다 김대건을 이해했던 역관 이상적 역의 성혁, 김대건의 영혼의 동료 최양업과 최방제 역의 이호원과 임현수, 그리고 1839년의 기해박해로 모방 신부와 샤스탱 신부, 앵베르 주교 등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김대건의 아버지 김제준 역의 최무성과 순교하는 아들보다 더 오래 살아가야만 했던 비운의 어머니 고우르슬라 역의 백지원 등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을 정도다. 그들에게서는 예외 없이 천주에게서 연유한 어떤 아우라, 즉 영성이 배어나와 말로 형용키 쉽지 않은 울림을 맛볼 수 있다.

감독도 바라듯, 그러나 <탄생>은 종교 영화라는 울타리에 갇혀서는 안 되는 문제작이다. 그 확장성이야 말로 영화 <탄생>의 단연 주목해야 할 소중한 덕목이다. 영화는 종교 영화를 넘어 한국사와 아시아사, 세계사로 나아가는 문제적 역사 영화요 해양 영화로, 개인적으로 가장 큰 방점을 찍고 싶은 휴먼 드라마로 확장된다.(계속)

 

One comment

  1. 선생님 안녕하세요~ 엊그제 본 탄생에 저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내일 큰 상영관에서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글 중간에 읽으면서 혹시 선생님께서 쓴 기사가 아닐까 싶었는데 너무 반갑습니다! 천주교에 문외한인 저도 영화를 보고 제 자신이 재탄생 하는 기분이에요 어린이 동화책부터 찾아서 김대건 신부에 대한 이야기 읽고 있습니다 좋은 인물과 좋은 영화를 만나서 행복했어요 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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