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2 칸 통신⑤] “올해 칸은 ‘품위’의 한국영화가 살렸다”

지난 네 번째 칸 통신에서 필자는 “한국영화가 거둔 역사적 성취라는 점에서 올 칸은 그 어느 해보다 기분 좋고 신나는 영화제로 기억·기록될 것이다. 결국 올 칸은 한국영화가 살리고 ‘구원’한 셈이다”라고 평했다. 그뿐 아니라 그 총평을 여기저기에 말하고 쓰고 있는 중이다. 예상컨대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그러지 않을까, 싶다.

당장 과도한 ‘국뽕’ 아니냐는 따위의 반문 내지 핀잔 등이 나올 법도 하다. ‘급’이나 ‘류’를 말할 수조차 없는 이 나라 정치 분야의 낙후성은 논외로 하자. 워낙 자국 역사?문화를 조롱?폄하하도록 교육받고 길들어진 터라, 아마 전 세계에서 유일할 수도 있을 그런 자기비하적 ‘용어’를 들이대는 게 관습이 되다시피 했으나, 진심이다.

2022 칸영화제를 한국영화가 살렸다, 는 다분히 선정적으로 비칠 수도 있을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가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한국영화역사의 기념비적 쾌거를 이뤄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브로커>에 출연한 송강호는 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주 제작국이나 감독의 출신 국가를 기준으로 치면 7개 본상을 차지한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두 나라가 더 있다. 스웨덴과, 미처 별도로 짚지 않았으나 벨기에다. 황금종려상의 <슬픔의 삼각형>(루벤 외스틀룬드)과 각본상의 <천국에서 온 소년>(타릭 살레)이 스웨덴영화다.

폴란드의 노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에오>(EO)와 공동으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여덟 개의 산>은 첫 번째 제작국은 이탈리아, 벨기에는 두 번째로 나온다. 한데 그 감독들인 샤를로트 반더메르쉬 & 펠릭스 반 그뢰닝엔은 벨기에 출신이다. 클레어 드니의 <정오의 별들>과 나란히 심사위원대상을 안은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도 벨기에 영화다. 75주년 특별상을 수상한 장-피에르 &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의 <토리와 로키타>까지 고려하면, 그 영화 소국이 이번 칸에서 거둔 성취는 단연 큰 주목을 요한다. 그동안 그 나라 영화의 대명사였던 다르넨 형제를 넘어, 젊은 피들이 세계 무대에 더욱 높이 부상한 것이다.

더욱 강조하고픈 상기 주장의 이유는, 한국영화들이 서구 중심의 인류 사회가 간과해온 삶의 소중한 메시지?가치들을, 그것도 수준급 스타일?완성도로 극화해 제시했다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나 잊고 살기 십상인 ‘품위’를 형사 캐릭터를 통해 역설한 <헤어질 결심>에 대해서는, 세 번째 칸 통신에서 이미 상술했으니 넘어가자. 그 품위는 <헌트>에서도, <다음 소희> 등에서도 발견된다.

헌트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해 펼쳐지는 이정재 감독의 첩보 액션 드라마 <헌트>에서, 안기부(현 국정원) 고위직 간부 박평호(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충돌해 끝내 사투를 벌이지만, 그들 캐릭터에서 일말의 품위가 감지된다.

<다음 소희>

<다음 소희>에서 콜센터 인턴인 고3 여주인공 소희(김시은)가 감행하는 자살도, 실은 인간존재로서 최소의 품위를 지키고픈 그녀만의 극단적 선택으로 다가선다. 또 다른 주인공인 형사 유진(배두나)은 그 선택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쓴다. 여고생이 죽었는데도 그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는 현실을 향해 유진은 울분을 터뜨린다. 학교는 물론이고 회사, 교육청 등에 찾아가 소리 지르고 주먹을 휘두른다. 윗선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타살 정황이 전혀 없는 사건을 정말 열심히 수사한다. 작위적으로 비칠 수도 있겠으나, 감독은 강변한다.

“그런 인물이 존재하는 게 작은 희망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겠지만 그런 인물이 어딘가에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괜찮은 게 아닌가”, 싶어서다. 다른 지면에서 말했듯, “그 점에서 유진은 <헤어질 결심>의 ‘품위’ 있는 형사 해준(박해일)의 여성 버전이다. 소희는 그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서래(탕웨이)의 소녀 버전이고…. 흥미롭게도 소희와 서래의 최종 선택은 상통한다.”

등장인물들의 성격화(Characterization)부터 연기의 톤 앤 매너, 엔딩 크레디트까지 고작 네다섯 차례밖에, 그것도 짧게 쓰인 미니멀리즘적 음악 효과 등 영화는 지나치다 싶으리만치 건조한 연출로 달리는데, 그 선택도 적중했다. 더러는 설명조로 전개되기도 하고, 때로는 일말의 유머가 활용됐더라면 싶기도 하나, 그것은 영화의 두 주인공 소희와 유진에게 일정 정도의 품위를 깃들게 하고픈 감독의 바람으로 읽히는 탓이다.

그토록 암울한 이야기를 펼치면서 재기발랄한 감각적 연출을 한다면, 그 얼마나 거짓스럽겠는가. 영화를 초청한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 아바 카에가, “충격적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작품. 능수능란한 각본과 연출력으로 만들어진 이 놀라운 작품은 배우들의 매력적인 진실함을 보여준다”며 극찬하고, 미국의 업계지 《할리우드 리포터》가 “칸의 숨은 보석”으로 영화를 소개한 것 등도, 다른 그 무엇보다 연출의 건조한 절제력에 감명받아서 아니겠는가.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브로커>는 또 어떤가.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의도치 않은 관계에 얽히고설키게 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예기치 않은 특별한 여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 송강호와 강동원 이지은(아이유)이 연기한 인물들은, 1천만이건 8백만이건 돈이 필요해 아이를 입양시키려고 원치 않는 여정을 함께 펼치나, 그 여정을 통해 마침내 돈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그들을 추적하는 두 형사 캐릭터들(배두나와 이주영)도 마찬가지다. 그 얼마나 놀라운 품위인가. 그리고 품위는 배려, 공존, 상생 등의 또 다른 이름 아니겠는가.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혹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요 환상적이라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싶다. 하나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이 있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브로커’라고, 아이를 몰래 버리는 엄마라고 죄다 지독한 악당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당장 성동일, 하지원, 김희원, 박소이 주연의 <담보>(2020, 강대규) 같은 우리 영화도 있지 않은가. 사실 필자는 2018년 71회 칸에서 칸 정상에 올랐던 <어느 가족> 정도를 제외하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썩 좋아하진 않았다.

담백하다 못해 심심하기까지 한 연출도 그렇거니와, 연출작들에서 통해 드러나는 그의 세계관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안정된 연출력을 뽐내왔고, 그의 인간관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브로커>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 가족>의 질펀한 육체성이 결여된 게 아쉽긴 해도….

그렇기에 필자는 두 영화 다 상을 안을 것이라 예상했다. <헤어질 결심>의 경우 ‘미장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감독상은 따놓은 당상이었고, 황금종려상까지 기대했다. 모든 면에서 그럴 만한 걸작이기에, 올 칸의 최대 실책이라고 여기고 있다. 공식 상영 직후 국내외 평자들을 중심으로 호불호가 크게 갈렸으나, <브로커>도 심사위원상 정도는 쥘 수 있으리라 예측했다. 결과는 황금종려상이 아니라면 가장 큰 의미를 띨 남우주연상으로 귀결됐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브로커>가 마치 수상권에서 멀어진 것처럼 국내 보도가 적잖이 나왔던 주된 이유는 감독을 향한 기대감이 워낙 컸던 데다, 일간 가디언에서 <헤어질 결심>에 5점 만점을 주며 극찬했던 영국 대표 비평가 피터 브래드쇼가 2점을 부여하며 퍼부었던 혹평 때문이었을 공산이 크다. 그 또한 감독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쯤은 굳이 강조할 필요 없으리라.

하긴 입양 모티브가 새삼스러울 건 없다. 우리에겐 식상한 감마저 있다. 극적 갈등도 약한 편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분산돼, 몰입?집중의 맛이 옅은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악 효과가 ‘꽝’이다. 특히 초반의 피아노 솔로 음악은 영화 따로 음악 따로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기생충>(2019 봉준호)의 정재일의 음악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조영욱의 <헤어질 결심>과 대조적이어도 너무 대조적이다.
단편 애니메이션 <각질>(문수진)은 미처 보지 못했으니, 다음 기회에 논하련다.

영화를 관람한 이후 줄곧, ‘2022 칸의 발견’으로 머물고 있는 딱 한 편의 영화는 <리턴 투 서울>이다. 첫 장편 다큐멘터리 <달콤한 잠>을 2011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섹션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했고 이듬해 베를린영화제 포럼에 초청됐으며, 두 번째 장편 <다이아몬드 아일랜드>로는 2016년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에서 선보인 캄보디아계 프랑스 감독 데비 슈(데이비 추)가 연출해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선보인 프랑스영화다.

연기 경험이 전무하다는 설치 미술가 박지민을 비롯해 오광록과 김선영, 허진 등 관록의 한국 배우들과, 신동한 등 한국의 젊은 인재들이 조감독 등 스태프로 참여해 빚어냈는데, ‘영화 한류’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돼야 할 귀한 결실을 일궈냈다.
다른 지면의 리뷰를 일부 옮겨보자.

<리턴 투 서울>은 어릴 적,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친부모에 의해 버려지고 입양된 25세 프랑스 여성 프레디가 조국을 방문했다가, 의도치 않게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면서 성장?성숙해가는 8년간의 과정을 담았다. 농익은 프로들과 아마추어 배우들의 실감 연기들이 이 진정성 가득한 저예산 독립 영화에 보고 듣는 재미를 더한다. “지역적 정감 가득한 오광록의 사투리 연기, 흔히 ‘콩글리쉬’를 일컬어지는 김선영의 브로큰 잉글리쉬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박지민은 연기 초짜이건만, 그 프로페셔널리티가 근사하다. “특히 2년과 5년, 1년 세 단계의 영화 속 시기들을 ‘표정의 변화’로 보여주는데 압권이다. ‘얼굴의 풍경화’라는 필자의 진단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가 어찌나 ‘한국적’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지간한 한국 감독을 능가한다. 여로모로 <미나리>(2021)의 정이삭을 연상시킨다. 특히 ‘꽃잎’부터 ‘아름다운 강산’, ‘봄비’ 등 신중현의 인기곡들을 활용한 음악 효과는 <헤어질 결심>에서 정훈희(와 송창식)가 부르는 이봉조 작곡의 주제곡 ‘안개’와 직결된다. 마치 상의한 것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인다.

박찬욱과 데비 슈는 20년가량의 나이 차가 나거만, 어떻게 그런 동세대성이 생긴 건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2011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홍대앞 음악바에서 그 노래들을 듣고 빠지게 됐단다. 한국의 오래된 노래들은 영혼을 건드린단다.

이쯤 되면 ”한국영화가 2022년 칸을 구원했다“는 필자의 진단이 과장만은 아니지 않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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