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2 칸 통신④] ‘브로커’ 송강호 남우주연상,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상
스웨덴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에 영예의 황금종려상을 안기면서, 75회 칸영화제가 28일 저녁(현지시간) 12일 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막판까지 올 칸의 최종 승자가 되지 않을까 큰 기대를 모았던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유난히도 호불호가 갈리며 수상권에서 멀어진 것만 같았던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한국영화 <브로커>가 한국 배우 사상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송강호)을 거머쥐었다.
2등상 격인 심사위원 대상은 벨기에가 낳은 신예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와, 프랑스의 베테랑 여성 감독 클레어 드니의 <정오의 별들>에 공동으로 안겼다. 여우주연상은, 이란 계 덴마크 감독 알리 아바시가 바친 이란 여성을 위한 찬가 <홀리 스파이더>에서 열혈 저널리스트 역을 열연한 자르 아미르-에브라히미의 품에 안착했다.
각본상은 스웨덴 태생 타릭 살레의 스웬덴-프랑스-핀란드-덴마크 합작 영화 <천국에서 온 소년>이, 심사위원상은 폴란드의 노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에오>(EO)와 샤를로트 반더메르쉬 & 펠릭스 반 그뢰닝엔의 <여덟 개의 산>이 나란히 차지했다. 장- 피에르 & 뤽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는 75주년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편 문수진 감독의 <각질>이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초대되며 각별한 관심을 끌었던 단편 경쟁 부문 황금종려상은 중국 지아닝 첸의 <물의 속삭임> 몫이었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선보인 데비 슈 감독의 <리턴 투 서울>은 연기 경험이 전무한 주인공 역 박지민의 걸출한 인물 해석과 연기도 그렇거니와 ‘표정의 풍경화’나 ‘꽃잎’, ‘아름다운 강산’, ‘봄비’ 등의 우리 대중음악을 활용한 음악 효과 등이 단연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일궈냈건만, 수상엔 실패했다.
경쟁작 수상 결과만으로 판단하면 올 칸은 유럽 그 중에서도 스웨덴영화와, 한국 포함 아시아영화의 완승, 미국영화의 대참패, 프랑스 및 여성 감독 영화의 체면 유지로 요약된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이하 스크린) 등 칸 현지에서 발행되는 데일리나, 경쟁작 21편을 모두 관람한 필자의 시선으로 판단컨대, 프랑스의 중견 배우 뱅상 랭동을 수장으로 한 2022 칸의 9인 심사위원단의 결정은 절반은 예상대로였고 절반은 의외였다.
<헤어질 결심>부터가 의외인 감이 없지 않다. 스크린 종합 평균 평점에서 3.2점으로 3점을 넘은 유일한 경쟁작이어서만은 아니다. 칸 통신 3탄에서 “적어도 감독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듯, 영화는 알리 아바시(<경계선, 2018>)의 <홀리 스파이더>와 더불어 황금종려상 감으로 손색없었다.
영국 영화 비평계를 대표하는,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가 5점 내지 4점 만점을 주며 열광했듯, <헤어질 결심>은 이야기, 주제, 시·청각 등 영화의 전 층위에서 최고 경지를 구현한 올 칸의 최고작이었다. 장편 극영화 기준 총 11편의 박찬욱 필모그래피나 ‘한류’라는 맥락에서나 타이밍 등에서도 그랬다.
그에 비해 계급 갈등에 대한 통렬하면서도 잔인한 풍자극인 <슬픔의 삼각형>은 흥미로운 문제작이긴 하나, 여로 모로 범작에 지나지 않는다. 스크린 평점도 2.5점이다. 르 몽드 지 평자는 0점을 부여했다. 내 평점도 평균치인 2점이다. 하긴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가 초청됐던 지난 2017년 제70회 칸 영화제 때, 감독에게 첫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더 스퀘어>도 마찬가지였다.
제 아무리 후하게 평하더라도, 범작에 지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당시 심사위원대상작인 걸작 <120 BPM>(로뱅 캉피요)이 황금종려상을 차지해야 한다면서 기자 회견장에서 피켓 시위까지 일어났고, 그 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울먹거렸겠는가.
프랑스 평자 15인으로 구성된 르 필름 프랑세의 경우 <슬픔의 삼각형>의 평점은 1.66점에 불과하다. 4점 만점은 한 명인데 반해 0점은 무려 5명이다. 반면 <헤어질 결심>은 2.43점이고 <브로커>는 2.69점이다. AFP 통신이 ‘깜짝 승자’(a surprise winner)라고 진단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로 모로 지난해 스크린에서 고작 1.6점을 받는데 그쳤음에도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던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과 비교될 만하다.
하지만 영화의 문제의식이나 도전성, 도발성 등에서는 아니다. 선호 여부를 떠나 <티탄>은 그야말로 기념비적 문제작이니 말이다. 이래저래 올 칸 심사위원단의 안목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구설수가 나돌 게 틀림없다. 여하튼 그 덕에 외스툴른드 감독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빌레 아우구스트, 에미르 쿠스트리차, 이마무라 쇼헤이, 다르덴 형제, 미카엘 하네케, 켄 로치 등에 이어 칸 역사상 8번째 황금종려상 2회 수상자 목록에 올랐다.
<클로즈>야 <헤어질 결심>과 함께 유력 황금종려상 후보로 점쳐지기도 했으니, 넘어가자. 2018년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선보인 장편 데뷔작 <걸>로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쥔 바 있는 30대 초반 신예의 두 번째 장편 영화. 13살 두 소년의 드라마틱한 삶과 죽음을 안정감 있게 그렸다.
<정오의 별들>에 눈길을 던지면 그러나, 이번 칸 심사위원들의 안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84년 니카라과 산드니스타 혁명을 배경으로, 그 나라를 탈출하면서 영국의 비즈니스맨과 미국의 저널리스트 사이에 펼쳐지는, 육감적이려고 기를 쓰나 거의 아무런 감흥을 전하지 않는 태작 러브스토리. 스크린에서는 1.9점으로 비교적 ‘양호한’(?) 평가를 받았다. 1.8점으로 최저 평점을 받은 발레리아 브뤼니 테데스키 <포에버 영>과 1.9점의 <브로커>도 있지 않은가. 놀라지 마시라. 한데 르 필름 프랑세 14인으로부터는 0.82점을 얻는데 그쳤다. 7명이나 0점을 날렸다. 내게도 영화는 클레어 드니라는 명장의 명성 이름에 먹칠을 한 최악으로 다가섰다.
어찌나 한심한지, 심사위원단을 넘어 칸 영화제 선정위원단의 선택이 의심스러웠다. 그런 영화가 비단 이 영화만은 아니지만 말이다. 70대 중반의 노장인데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에 대한 배려라 이해하고 싶으나, 해도 해도 너무했다. 올 칸의 최대 패착 중 하나가 프랑스 영화도 그렇고 여성 감독들 영화들의 수준이 ‘바닥’이었다는 사실인데, 걸작 <퍼스트 카우>(2019)의 명장 켈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도 실망스럽긴 매한가지지만 <정오의 별들>은 너무 심했다.
의외이긴 송강호나 자르 아미르-에브라히미의 주연상 수상도 마찬가지다. 연기를 못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배두나 등 좋은 배우들이 워낙 즐비한 터라, <브로커>에서 송의 연기는 예의 강력한 맛과 멋은 없기에 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죄의식은커녕 사명감을 띠고 ‘거리의 여자들’을 16명이나 연쇄적으로 살인하고 잡히고 재판받고 급기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홀리 스파이더>의 남자 주인공 사에드 역의 메흐디 바제스타니를 강력 후보로 점쳤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곰곰이 다시 짚어보면 송의 연기는 <밀양>(2007)에 직결된다. 함께 연기하는 다른 배우들을 더 돋보이게 하고 나아가 살려주는 공생·상생의 연기랄까. 송이 아니었다면, <밀양>에서 전도연이 어떻게 ‘칸의 여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겠는가. <브로커>에서 이지은이 한층 더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면, 그 공의 상당 부분은 송강호(와 강동원)에게 돌아가야 한다. 칸 심사위원단들은 바로 그 미덕을 높이 친 게 아니었을까?
자르 아미르-에브라히미의 연기도 그렇다. 섬세함·정교함 등에서는 탕웨이에 미치진 못해도, 메흐디 바제스타니를 돋보이게 하고 영화를 추동하는 동력은 그녀의 연기와 그녀가 분한 캐릭터에서 연유한다.
75주년이 뭔 대수라고 특별상을 수여했나 싶긴 하나, 거장 형제 감독에 대한 경의려니 치자. 나머지 상들도 받을 게 받았으려니 치자. 유감스러운 것은, 지난해에도 심사위원대상(아쉬가르 파라디의 <어 히어로>와 유호 쿠오스마넨의 <컴파트먼트 넘버. 6>)과 심사위원상(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메모리아>와 나다브 라피드의 <아헤드의 무릎>)을 공동 시상하더니, 올해도 똑같이 재연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가, 그게 말이 되는가! 2023년도 그럴 것인가?
그럼에도 한국영화가 거둔 역사적 성취라는 점에서 올 칸은 그 어느 해보다 기분 좋고 신나는 영화제로 기억·기록될 것이다. 결국 올 칸은 한국영화가 살리고 ‘구원’한 셈이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다시 말해야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