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박정민·이성민·(임)윤아 주연, 경북 봉화 양원역 배경 <기적>

영화 기적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중앙대 글로벌예술학부 겸임교수] 9월 16일(목) 오전 첫 상영시간에 맞춰 압구정CGV를 찾았다. 인기 유튜버 라이너와 1년7개월째 고정 출연 중인 팟캐스트 매불쇼 ‘씨네마지옥’에 소개할 신작 관람을 위해서였다.

박정민·이성민·(임)윤아·이수경·정문성 주연·조연의 <기적>이었다. 영화에 대한 평가 이전에 크디 큰 충격을 받았는바, 182석 상영관에 필자 혼자밖에 없어서였다. 조조시간대에다 코로나19 여파라 할지라도, 그간은 최소 몇명은 있었던지라 일생일대의 충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개봉 이틀째인 영화는 11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하고도, 고작 2만2000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누적 관객 수도 6만5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종합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 있다.

변요한·김무열·김희원·박명훈·이주영·조재윤 주·조연의 <보이스>가 1위, 마블 대작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3위에 랭크돼 있는데 도긴개긴이다. 대체 이런 쓸쓸한 광경은 언제 가서야 ‘영화관의 추억’으로 머물게 될까?

그럼에도 <기적>은, 흔치 않은 감성 가득한 감흥을 듬뿍 안겨줬다. 시대적 의미는 말할 것 없고 영화적 재미 또한 작지 않았다. 부동산 광풍에 협잡이 난무하는 세상사에, 일말의 위안과 치유를 맛보았다면 이해할까. 삶이 제아무리 각박하다 한들, 여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기적>은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113-2에 자리한 양원역 모티브에, 일본 JR 훗카이도 로컬라인 세키호쿠 본선에 위치한 카미시라타키 역 이야기-유일한 이용객이었던 여고생이 2016년 졸업하면서 개설 84년 만에 폐쇄하기로 결정됐다-등을 가미해 자유롭게 빚어낸 팩션(Facts+Fictions) 영화다.

영화 <철도원>(1999) 등 ‘일본풍’이 감지되는 것은 그래서일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철도원>의 아류작쯤으로 치부하는 건, 오해를 넘어 난센스다. 양원역을 에워싼 드라마도 그렇거니와, 박정민이 연기한 수학천재 소년 준경 스토리와 그 가족·연애담이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양원역

자료(이하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이번에 비로소 알게 된 양원역은 1988년 4월 1일 임시 승강장으로 개업했다. 2013년 4월 12일 백두대간 협곡열차로 운행 개시했다. 2014년 4월 15일 철도거리표에 영주 기점 65.5km로 고시됐다. 2014년 10월 1일 중부내륙순환열차 운행을 시작했다. 2020년 2월 3일 중부내륙순환열차 운행을 중지하고, 그해 8월 19일 동해산타열차로 운행을 재개했다.

이 간단한 사실만으로는 영화의 제목이 왜 ‘기적’인지 알기란 무리다. 하지만 양원역이 역명부터 대합실, 승강장까지 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한국 최초의 민자역인 데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기차역이라는 등의 추가적 사실을 알게 되면 수긍하지 않을 도리 없다. 보도자료를 빌려 영화의 안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기적 포스터

준경의 목표는,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잘 나가는 직장에 들어가고 하는 등의 출세가 아니다. ‘엉뚱’하게도 소년의 유일한 목표는, “언제 기차가 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도 다른 길이 없어 철로로 오갈 수밖에 없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차역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사연을 꾹꾹 눌러쓴 편지를 청와대에 부치고, 대통령을 직접 만나 부탁하기 위해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에 도전하는 4차원적인 발상과 열정의 소유자”다.

<엑시트>(2019) 못잖은 호연(好演)의 윤아가 분한 라희는 “그런 준경의 비범한 재능을 한눈에 알아채고 적극적으로 이끄는” ‘여친’이다. 그 두 친구-연인의 관계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허를 찌르는 엉뚱함으로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한편 기관사로서의 ‘본분’(?)에만 충실(한 듯)한 아버지(이성민)는, 라희와는 달리 그런 아들이 영 못마땅하다. 반면 그 존재감이 단연 빛나는 이수경이 구현한 보경은 아버지의 진심을 충분히 알면서도, 시종 동생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이들 네 중심 캐릭터들에 제자 준경의 남다른 재능을 일찌감치 인정·격려·지원해주는 스승(정문성)에 이르기까지, 각 인물들이 품은 저마다의 사연들이 한 꺼풀 한 꺼풀 드러나면서 영화는 기대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그 감동의 구축 과정에서 더러 신파로 흐르기도 하나, 그 신파의 효과는 칭찬감이다. 여느 감상적 통곡으로 내닫지 않으면서, 눈가에 눈물을 맺히게 하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신파랄까. 평소 적절한 신파는 대중영화의 필요조건이라는 주장을 펼쳐온 내게는, 최상의 신파로 다가왔다.

소지섭·손예진 주연의 데뷔작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를 미처 보지 않은 터라, 그 이름을 이번에 접하게 된 이장훈 감독의 연출역에 주목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다름 아닌 신파를 처리하는 솜씨 때문이다. 그는 신파의 필요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전혀 부끄러움 없이, 능숙하면서도 당당하게 신파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새삼 역설하지 않으련다. 연기의 맛들이 성격화(Characterization)에 완벽히 부응한다. 생애 최상의 연기까진 아니어도, 그들은 각자의 몫을 100% 해낸다. 특히 플롯으로나 성격화에서나 연기에서나 모든 층위에서 이수경은 ‘발견’에 값한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연출역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지점이다.

2021년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 있는 <모가디슈>(류승완)를 비롯해 <싱크홀>(김지훈), <인질>(필감성), 그리고 명품 연기자 이희준의 노개런티 출연 등으로 크고 작은 화제를 모은 <습도 다소 높음>-에 대해 재미삼아 밝히면 필자도 영화 속 영화의 감독 역할인 이희준의 상대역인 평론가로 출연했다!- 등 최근 한국영화의 면면들이 각별한 주목을 요하고 있다. 그 주목에 이제 <기적>이 포함돼야 한다(면 과장일까). 영화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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