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 폭행사건 불구 아카데미상 흥미진진한 축제로 기억될 듯
제94회 아카데미상, 감동의 음악?가족 드라마 <코다> 최종 승자
<킹 리차드>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일생일대의 쾌거를 일궈냈건만, 시상자로 나서 투병 중인 아내를 둘러싼 질 낮은 농담을 하던 선배?동료 배우 크리스 록의 뺨을 강타하고, 좌석으로 돌아가서는 상스러운 욕설을 퍼부은 할리우드 톱스타 윌 스미스의 폭행 사건이 야기시킨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악의 광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련다.
28일 개최된 제94회 오스카상 레이스의 최종 승자는 션 헤이더 감독의 <코다>였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엄마와 아빠, 오빠 세 식구를 세상과 연결하는 10대 후반의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 루비(에밀리아 존스 분)가 어느 여름날, 노래와 사랑에 빠지면서 꿈을 향해 달리는 감동의 음악?가족 드라마다.
영화는 남우조연상(트로이 코처)과 각색상(션 헤이더)까지, 후보지명된 전 부문에서 수상하는 파란의 주인공이 됐다. 위 불상사로 인해 적잖이 빛바래긴 했어도….
<코다>는 2021 선댄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이며 화제몰이를 시작했다. 미국 드라마 부문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포함해 감독상, 관객상에 최우수 앙상블 심사위원특별상까지 선댄스 사상 최다 수상인 총 4관왕에 올랐다.
<코다>의 비상은 이미 예고됐던 것. 미국의 주요 영화산업 관련 매체 《버라이어티》는 2022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색상 부문 유력후보로 내세웠다. 미국 《인디와이어》에서는 영화에 캐스팅된 실제 농인 배우를 향한 각별한 관심을 피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트로이 코처는 오스카 이전에 미국 배우 조합상을 비롯해 영국 아카데미, 미국 크리틱스 초이스 등을 차지했었다.
<코다>의 으뜸 미덕은, 루비의 세 가족 캐릭터를 실제 농인 배우들이 연기한다는 사실이다. 엄마 역 말리 매트린과 오빠 역 다니엘 듀런트도 마찬가지다. 말리 매트린은 20대 초에 데뷔작인 <작은 신의 아이들>(1986)로 1987년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바 있는 명우다.
트로이 코처의 이번 수상은 농인으로는 역대 두 번째다. 사실적 박진감 가득한 네 배우의 열연은 영화에 기대 이상의 의미와 재미,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에는 관객을 먹먹하게 하는 결정적 순간들도 적잖다. 루비가 버클리 음대 입시 실기 시험장에서, 규정을 위반하고 몰래 입장해 지켜보는 가족을 위해 수화를 수반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나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전쟁 등, 작금의 혼돈과 절망의 시대에 영화가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도 외면하기 힘든 울림을 전한다.
위와 같은 덕목들에도 그러나, <코다>의 기록적 선전은 이변인 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정해진 해피 엔딩을 향해 나아가는, 다분히 도식적인 플롯은 최상급 수준이라 평하긴 주저된다. 영화의 최대 강점인 연기도, 10편의 작품상 후보작 중 최고라고 평할 순 없다. 평균 이상 정도랄까. 당장 농인의 연기란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트로이 코처도 <파워 오브 도그>의 아들 역 코디 스밋-맥피만큼 압도적이진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원작을 기념비적으로 승화시킨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각색을 감안할 때, <코다>의 각색상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 원작을 읽지 못해 다소 조심스럽긴 해도….
영화 보기 50여 년에 영화 스터디 근 40년, 영화 글쓰기 30여년의 전문가로서 판단컨대 <코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범작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더불어 총 10편 가운데 최약체다.
최강작은 www.izm.co.kr에 ‘2021년의 영화 베스트 10’ 중 <해피 아워>(2015)와 공동 1위로 꼽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11개 부문 12개 후보에 오른 제인 캠피온의 <파워 오브 도그>였다. 한데 막판까지 작품상 최유력 후보였던 <파워 오브 도그>는 감독상에 그쳤다. 분위기상 작품상까진 아니어도 각색상이나 감독상 중 하나쯤은 차지했어야 마땅했을 <드라이브 마이 카>도 국제장편영화상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다고 <코다>가 자격이 없다거나 불만스럽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영화가 안겨준 감흥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성싶다. 더욱이 <코다>는 아카데미가 몇 해 전부터 작심하고 표방해온 다양성?포용성이란 나름의 가치에 부응하는 멋진(Cool) 선택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폭력행사로 퇴색되긴 해도 윌 스미스에게 남우주연상을, 니콜 키드먼(<비잉 더 리카르도스>)과 올리비아 콜맨(<로스트 도터>), 크리스틴 스튜어트(<스펜서>) 같은 막강 경쟁자들을 제치고 <타미 페이의 눈>의 제시카 차스테인에게 여우주연상을 수여한 선택에 대해서는 갈채를 보내지 않을 도리 없다. 드니 빌뇌브의 <듄>을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등 6관왕에 등극시킨 선택도 매한가지다.
역대급 대형사고도 그렇거니와 상의 향배에서도 올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내게 그 어느 해보다 더 흥미진진한 축제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드라이브 마이 카>나 <파워 오브 도그>가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그 이유 등 미처 하지 못한 아카데미를 둘러싼 다른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를 봐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