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아카데미의 ‘다양성‧포용성’‧‧‧’파워 오브 도그’ 그리고 ‘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

다양성‧포용성 측면에서 역사적인 한해로 기록될 듯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최상급 수준의 스타일로 구현

당사자의 공식 사과에도 아랑곳없이 윌 스미스의 크리스 록 폭행‧욕설 사건으로 인한 여파가 연일 증폭되고 있다. 그가 예고 없이 볼 키스를 한 방송 리포터를 손등으로 때렸다는 10년 전 뉴스도 소환됐다. 비판의 화살은 아카데미위원회로까지 향하고 있다. 윌 스미스가 톱스타 중 톱스타인지라 주최 측이 현장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윌이 트럼프에 비유되는 지경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사건이 어떻게 귀결되든, 윌 스미스 개인을 넘어 아카데미상은 치명적 상흔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2022 아카데미상은, 언제부터인가 핵심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그 다양성‧포용성 측면에서 가히 역사적인 한해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농인 가족을 축으로 펼쳐지는 음악 드라마 <코다>에 영예의 작품상까지 안겨주면서, 장애 세계를 향한 세간의 관심을 새삼 환기시켰다.

연기상에 시선을 던지면, 그 함의는 더욱 크고 깊어진다. 주지하다시피 오스카 사상 두 번째로 농인 배우에게 남우조연상(<코다>의 트로이 코처)을 안겨주었다. 남우주연상(<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과 여우조연상(<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나 디보스)도 백인 아닌 흑인 배우들의 품에 안겼다. 여우주연상을 안은 제시카 차스테인(<타미 페이의 눈>)이 외려 예외가 된 모양새다.

가령 <미나리>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지난해에는 남우조연상은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흑인 배우 다니엘 칼루야 차지였으나,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현존 최강 백인 연기자들로 평할 수 있을 안소니 홉킨스(<더 파더>)와 프랜시스 맥도먼드(<노매드랜드>)였다.

‘<기생충>의 해’였던 2020년에는 네 부문 모두 백인 배우들 차지였다. 남녀 주‧조연 순으로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 <주디>의 르네 젤위거,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의 브래드 피트, 그리고 <결혼 이야기>의 로라 던이었다. 이쯤 되면 오스카는 더 이상 백인들과 비장애인만의 잔치라고 투덜댈 수 없게 됐다. 그 얼마나 다양하고 포용적인가. 앞으로도 올해처럼 그럴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지언정 말이다.

파워 오브 도그

지난 원고에서 예고했듯 이제 <파워 오브 도그>와 <드라이브 마이 카> 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자.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서 11개 부문 12개 후보에서 감독상 하나밖에 받지 못했어도, <파워 오브 도그>는 2021년과 2022년의 영화임에 틀림없다. <기생충>이 2019년과 2020년의 영화였듯이. 그 증거는 무엇보다 수상 및 노미네이션 수에서 드러난다. 3월 30일 기준으로 영화는 258개 상을 거둬들였고, 304개 상에 후보지명돼 있다. <기생충>이 308개와 271개이니 그 못잖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상 숫자가 증가하리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 없을 테다. 실제로 9일 전 기록과 비교해 9개 상이 후보에서 수상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파워 오브 도그>를 향한 이 별난 열광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그 무엇보다 평단 및 저널리즘 특유의 어떤 지적 풍토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말할 것 없고 예술 일반, 나아가 우리네 삶 자체에서 보이는 것(기표)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그 못지않게 보이지 않은 것(기의, 구조)도 중요하며, 때론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파워 오브 도그>와 <드라이브 마이 카>는 공히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최상급 수준의 기표‧스타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한 흔치 않은 걸작들이다.

그에 반해 <코다>는, 적잖이 감동적이긴 하나 보이는 게 거의 전부인 범작(이라는 것이 내 총평이)이다. 앞선 원고에서 이번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 10편 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더불어 최약체라고 평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로 한정하자. 소위 전문가들은 해석에 열려 있는 텍스트를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비단 할리우드만이 아니라 대개 주류 영화들에 그들이 시쿤둥해하는 건 그래서다. 대중음악 전문 사이트 ‘이즘’ www.izm.co.kr ‘2021년의 영화 베스트 10’에서 6위로 선정한 <파워 오브 도그>는 1925년 광활한 미국의 몬태나 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로맨스 곁들인 서부극이자 미스터리물이다.

파워 오브 도그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마초’ 필(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묘한 매력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경외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는 내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형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수차례에 걸친 구애 끝에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그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를 가족으로 맞이한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에 분노한 필은 로즈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그 이후 펼쳐지는 영화의 플롯은 그야말로 예측 불허다. 몇 차례의 반전들이 영화 보기의 재미‧의미를 배가시킨다. 영화의 복합성‧입체성에 감탄하지 않을 길 없다. 개별 인물들의 성격화(Characterization)는 말할 것 없고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도 최상급이다. 오죽하면 남우조연상으로 두 명의 배우가 공동으로 후보지명됐겠는가. 나 역시 <코다>의 트로이 코처의 열연에 감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상의 주인공은 <파워 오브 도그>의 아들 역 코디 스밋-맥피 품에 안겼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남우주연상도 윌 스미스만 아니라면, 컴버배치가 품었어야 했을 테고….

<파워 오브 도그>가 서구 고유의 장르인 서부극이라는 것이나, 서양이 주로 기독교 사회라는 현실도 영화를 향한 열광의 주된 요인들이다. 영화는 멋진 총격 시퀀스가 나오는 정통 서부극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관류하는 서부극적 미장센은 영화 관람의 맛을 만끽시켜준다.

넷플릭스 화면으로야 그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순 없겠으나, 큰 스크린에서 뿜어나오는 영화의 아우라는 마치 영화가 재탄생하는 듯한 쾌감을 듬뿍 선사한다. 널리 소개됐다시피 ‘개의 힘’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성경 시편 22장 20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The Power of the Dogs)에서 구하소서.”

클리셰적으로 해석하면 개의 세력이 선이 아닌 세상의 악의 힘이리라는 것은 굳이 강변할 필요 없을 듯. 그렇게 보면 영화는 필과 조지가 그 악한 세력으로부터 ‘구원’되는 일종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는 돈 때문에 자신과 결혼한 여인을 향한 순애보를 통해서, 동성애자 필은 자신에게서 동생을 빼앗아 간다고 경계하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시간이 흐르며 삶의, 특히 사랑의 다른 가능성에 흔들리는 변화를 통해서다.

성장은 ‘마마보이’임이 분명한 주인공 소년에게서도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를 위한 복수극을 통해서다. 그럼으로써 소년은 두 형제가 탈피한 ‘개의 힘’에 굴복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 얼마나 극적인 반전인가. 한편 로즈에 초점을 맞추면 영화는 일찌감치 여읜 남편 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살아가야만 하는, 기구한 처지의 여인의 생존담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만큼 해석에 활짝 열려 있으며, 네 중심인물은 우리네 존재의 축약도적 캐릭터들인 셈이다. 이 정도면 <파워 오브 도그>가 왜 뛰어난 문제작인지 이해되지 않을까. 혹 안 된다면 그것은 이 필자의 부족한 필력 탓일 터.

이젠 <드라이브 마이 카> 차례다. 대체 그것은 어떤 영화기에 이렇게들 난리일까. 실은 <드라이브 마이 카>만이 아니다. 다소 길더라도, 관련해 이즘에 적었던 것을 옮겨보자. “하마구치 영화들에서 중시되는 것은, 캐릭터와 캐릭터를 이어주는 어떤 ‘사이’요, 그 사이의 채움을 통해 드러나는 개별 캐릭터들의 어떤 존재감들이다. 캐릭터가 인간 자체로 바뀌어도 무방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장, 단편 불문 그의 영화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비교의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제고시켜준다. 그에게 영화는 철저히 우리네 인류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여느 영화광들처럼 그 반대가 아니라….

그 점에서 하마구치는 천상 휴머니스트다. 어느 모로는 작금의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시대, 달리 말해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적 고전주의자랄까. 그렇지 않다면, 스승 구로사와 기요시도 그렇거니와 프랑스 누벨바그의 돌연변이적 주자 에릭 로메르나 심심치 않게 그와 비교되곤 하는 홍상수, 그리고 선배 봉준호를 향해 어찌 그렇게 대놓고 크고 작은 오마주를 바칠 수 있겠는가. 난 정말이지 하마구치의 그 겸손한 자신감과, 자신감 어린 겸허함을 사랑한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별다른 액션도 없이 주고받는 인물들의 대사가 얼마나 역동적일 수 있는지 감탄하곤 한다. 그 어떤 액션 영화도 그렇게 다이나믹하지 않다. 뿐만 아니다. 그의 영화들은 소위 ‘예술영화’의 범주에 들어가야 마땅하나, 여느 예술영화들과는 달리 난해하긴커녕 접근 불가한 요소들이 거의 없다. 그 지점에서 그는 장 뤽 고다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 서구의 대표적 작가 감독들은 물론이거니와 여로 모로 비교될 법한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과도 판이하게 다른 자기만의 독자적 영화 세계를 구축해내는 데 성공했다. 고작 4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나는 확신한다. 머잖아 세계 영화사는 하마루치 류스케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게 될 거라고. 헛소리라고? 과장이라고? 그렇게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나부터 그 작업을 향해 나아갈 참이다.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말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해피 아워>, 이 두 역사적 걸작은 비단 2021년만이 아니라, 21세기 나아가 올해로 127년을 맞이한 공식 세계 영화역사의 손꼽히는 으뜸 문제작들로 평가돼 마땅하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우연과 상상>도 마찬가지고…….”

이미 말했듯, 이래저래 2022년 아카데미는 흥미 만점의 사건으로 머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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