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3칸 통신④] 정유미·이선균 주연 유재선 감독 <잠> ‘비평가주간 경쟁부문’ 초청

21일 오후 5시(현지시각) 비평가주간 상영관인 미라마르 극장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는 유재선 감독(왼쪽)과 정유미, 이선균 <사진 전찬일>

칸 통신 2탄에서 예고했듯 21일 총 7편의 한국영화 중 제일 먼저,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타운> 이후 8년만에 칸 비공식 병행 섹션 비평가주간 경쟁 부문-7편에 지나지 않는다!-에 초청된 정유미 이선균 주연 유재선 감독의 <잠>이 세계 첫 선을 보였다.

수면 중 이해 못할 이상행동을 보이는 남편 현수와 임신한 아내 수진이 그 ‘비밀’을 극복?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드라마를, 심심치 않게 배치된 유머를 곁들인 촘촘한 긴장감으로 극화한 스릴러성 공포물이다.

영화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어!”라는, 수진이 시도 때도 없이 읊조리고 외치는 일종의 가훈 같은 신념을 극화한 러브스토리기도 하다. 수진 그 자체인 정유미도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진행된 한국 저널리스트들과의 회견에서, 무엇보다 “스릴러라는 외피를 두른 러브스토리”라는 감독의 말이 영화에 ‘함께’ 하기로 결심하게 한 결정적 동기였다고 밝혔다.

주지하다시피 국내에서는 목하 ‘위기론’이 영화계를 뒤덮고 있다. 하지만 K-무비를 포함한 K-콘텐츠를 향한 해외에서의 관심?애정은 여전히 열띤 것이 사실이다. 그 현실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오후 5시의 공식 상영은 말할 것 없고 오전 11시와 밤 10시 15분의 일반 상영까지 모두 입장 티켓이 매진될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그 열기는 경쟁작이 아니라 폐막작-한국영화 사상 최초였다-으로 지난해 초대된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 못잖았다. 22일 잡혀 있는 세 차례 상영도 마찬가지였다. 봉준호 감독이 <옥자>(2017)의 연출부 출신 감독의 주목할 만한 장편 데뷔작에 대해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 영화다. 가장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예측 불가능한 커플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나는 관객들이 아무런 정보 없이 스크린 앞에서 이 영화와 마주하기를 바란다”(https://www.spotvnews.co.kr 인용)는 극찬을 했다는데, 그 극찬이 ‘봉테일’ 그만의 것이 아닌 셈이다.

평가컨대 그 극찬은 무엇보다 성격화(Characterization), 달리 말해 인물 해석?소화를 더할 나위 없이 실감 넘치게 구현한 정유미 이선균의 열연에서 연유한다. 홍상수의 단편 <첩첩산중>(2009)을 비롯해 정유미에게 2011년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등을 안긴 <옥희의 영화>(2010)와, 2013년 1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등을 안긴 <우리 선희>까지 세 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두 배우는 그야말로 최상의 ‘케미’를 뽐낸다.

빈말이 아니라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맛이 영화의 으뜸 재미다. 그들은 생활 연기 같은 편안함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폭발성을 동시에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극 중 현수가 냉장고를 열어 생고기와 날생선 등을 꺼내 먹는 장면은, 박찬욱의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가 생문어를 씹어먹는 장면에 비길 만한 섬뜩한 전율을 안겨준다. 그러고 보니 홍의정 감독의 걸작 <소리도 없이>의 음악을 담당했던 장혁진 & 장용진 형제가 이번에도 ‘멋진’(Cool) 음악을 빚어냈다.

특히 영화 드라마의 최후를 결정짓는 결말부에서의 정유미의 표정 연기는, 그의 연기력을 충분히 알고 인정해온 필자도 놀라게 하리만치 경이적?압도적 인상을 각인시킨다. 뿐만 아니다. 정유미 캐릭터나 연기는 올 칸의 최대 화두 중 하나인 ‘여성(성)’에 완벽히 부응하는, 특별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그 존재감은 2016년 비경쟁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대된 연상호의 <부산행>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차원이다. 경쟁작들인 라마타 툴라예 씨의 <바넬과 아다마>에서의 바넬?카디 마네나, 카림 아이누즈의 <선동가>(FIREBRAND)에서의 영국 헨리 8세의 6번째이자 마지막 왕비였던 여왕 캐서린 파?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에 비견될 만하다.

유재선 감독 <잠>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상영 이후 만난 몇몇 영화 관계자들의 <잠>을 향한 평가는, 봉준호의 극찬과는 크고 작은 대비를 이룬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 소속으로 미국 코리아타임스의 하은선 기자는 ‘브릴리언트’(Brilliant)라며 엄지손가락을 올렸으나,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지부 회원으로 올 칸을 찾아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황영미는 “깔끔하다”는 간결한 칭찬을 하는데 그쳤다.

워낙 큰 호평이 돌았던지라, “기대에 미치진 못 한다”라는 평가도 없지 않은 것. 하지만 ‘평균 이하’라거나 ‘후지다’라는 평가는 접하진 못했다.

나 역시 ‘일찍이 품어왔던 큰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친다’는 쪽이다. 평점으로 치면 4점 만점에 3점에서 2점 사이랄까. 무엇보다 개신교 신자인 내게는 영화에서 동원한 무속신앙에 대한 작가?감독의 해석?묘사가, 희화화?비판도 아니고 통찰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모호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 느낌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을 보며, 작가이자 감독 이창동의 기독교와 용서에 대한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실내극적 설정에서 전개되는 플롯 탓에 그 전개가, 긴장감이 가득하면서도 더러는 밋밋한 맛이 드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감독의 전제 연출력에는 합격점을 주기 모자람 없다. 서구 일변도의 ‘퇴마사(Exorcist) 모티브’를 임신한 여성에게 적용한 시도나, 시종 기폭 없이 나아가는 안정감 있는 극 전개, 이미 상찬한 연기 및 음악 연출 등은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하기 충분해서다.

<잠>은 24일 공식 섹션 주목할만한시선에서 첫 선을 보이는 김창훈의 <화란>과 더불어 황금카메라상에 도전한다. 공식, 비공식 가리지 않고 칸에 초청된 모든 신인 감독의 첫 번째 영화 중 가장 우수한 1편에 수여되는 최우수 신인감독상이다. 한국영화는 아직 이 상을 차지한 적이 없기에, 가능성 여부를 떠나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지사일 테다.

예정된 22일 새벽 12시 반에서 30분쯤은 지나 상영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초청작 <탈출: PROJECT SILENCE>도 성황리에 첫 선을 보였다. 감독 김태곤, 주연 배우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 그리고 제작자 김용화 등이 칸 특유의 열렬한 호응에 감격 어린 태도로 화답했다.

중반에 접어들며 2023칸의 열기는 더욱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칸 현재 데일리들의 평가들도 그 어느 해보다 흥미진진한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그들에 대해서는 다음 통신에 상세히 전하련다.(계속)

2023칸의 포스터를 장식한 세기의 대배우 카트린 드뇌브 앞에서 필자 전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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