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2024칸영화제④] 김량의 ‘영화 청년, 동호’와 임유리의 ‘메아리’

<영화 청년, 동호>의 한 장면

<영화 청년, 동호>,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위원장의 인간적 면모 관통하는 웰-메이드 ‘창작 다큐멘터리’

스물여섯 임유리 감독의 <메아리>, 수상엔 실패했어도 흔치 않은 감독의 도전‧비전 주목감

다소 늦어지긴 했어도, <베테랑2>와 더불어 올해 칸에 공식 초청된 두 편의 한국영화를 짚어보자. <영화 청년, 동호>는 김동호(87)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사장에 관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다. 부산의 <국제신문>이 제작했다. <경계에서 꿈꾸는 집>(2013)과 <영원한 거주자>(2015), <바다로 가자>(2020)에 이은 김량의 네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그동안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국경‧실향 등의 큰 이슈에 전착해온 감독은 이번엔 한국영화계의 거인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유럽에서는 흔한 ‘창작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빌려서 말이다.

영화는 59세라는 이르지 않은 나이에 1996년 9월 출범하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전격 거듭나기까지와, 그 이후 2010년 동고동락했던 BIFF를 공식적으로 떠날 때까지의 이력을 비교적 상세하면서도 담담하게 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1993.03~1995.03) 시절 있었던, 닐 조던 감독의 <크라잉 게임>(1992)과 세르게이 M. 에이젠시테인 감독의 <전함포템킨>(1925)의 심의 관련 대목이다.

당시 공윤의 규정을 위반하고 잠깐이나마 성기 노출을 전격 허용함으로써 영화의 극적 완성도를 훼손시키지 않게 하고,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찬미하는 영화라는 이유 등으로 수입이 금지됐던 세계영화사 최대 문제작 중 하나를 재심의해 통과시킨 것이다. 배우 쥴리에트 비노쉬와 (고)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등이 함께 했던 흥쾌한 퇴임 파티 광경도 인상적이긴 마찬가지다.

당연히 적잖은 인터뷰이들이 김동호와의 인연·기억·추억을 드러낸다. 임권택, 이창동, 정지영,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의 감독들, 박정자, 예지원, 조인성 등의 배우들, 티에리 프레모 칸 집행위원장 등 영화제 관계자들이다. 그들이 어떤 말을 들려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소회들을 맹목적 영웅화나 과장이라고 평할 순 없다. 그의 업적을 향해 크고 작은 찬사들이 쏟아지긴 해도,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외려 그 반대인 감이 없지 않다.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김동호의 인간적 면모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 스틸컷. <국제신문> 제공

인터뷰이들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이는 티에리 프레모다. 김동호의 남달랐던 덕목으로 그 특유의 ‘개방적 협력’(Open Collaboration)을 들고, 제2의 김동호에 대한 바람을 피력한 것. 티에리의 바람이 과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여하튼 그는 우리네 한국 영화인들에게 일종의 과제를 던진 셈이다.

영화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특정 인터뷰이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한다거나, 한 명쯤은 평론가의 인터뷰도 포함시켰더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지만 넘어가자. 2010년 이후 그가 걸었던 행보에 대해서도 좀더 비중 있게 다뤘더라면 등의 바람도 있지만, 그러려니 치자. 이 다큐의 가장 큰 아쉬움은 이용관 전 BIFF 이사장‧위원장의 인터뷰가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양준 전 위원장과 (고)김지석 전 부위원장 더불어 오늘날의 김동호를 가능케 한 결정적 주역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불명예스럽게 BIFF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용관 그는 김동호와 함께 ‘BIFF 간판’ 아니었던가. ‘리틀 김동호’라 한들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BIFF에 몸담았던 관계자로서 필자는 그 누구보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알기에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쯤은 안다. 하지만 제작‧창작측 아닌 수용‧비평적 입장에서 판단할 때, 이용관의 부재는 이 다큐의 치명적 문제점이라 평하지 않을 도리 없다. 그럼에도 다큐로서 <영화 청년, 동호>의 영화(사)적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번 초청으로 한국 영화계가 배출한 김동호가 세계 최고 영화제가 공인하는 ‘고전’ 반열에 올랐다는 것과, 프랑스에서 수학‧거주하며 파리사회과학고등원 박사학위까지 딴 감독이 칸영화제에 첫 초청을 받았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감독이 필자에게 보내온 작의를 전하며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영화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개념으로 시작했고요, 주인공의 본능적인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국영화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인터뷰 내용에 중점을 두었고, 그분의 편안하면서도 소박한 이미지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에서는 텍스트, 대화, 서사도 중요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영화적인 요소를 강조했어요. 즉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편집으로 시간성을 강조했고, 여러 공간의 장면과 장면이 만들어내는 공간적인 에너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음악이 이러한 시간성과 공간성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고심했고, 결론적으로는 관객들이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한 후 따뜻한 느낌, 좋은 에너지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완성했습니다.”

필자는 이 작의에 거의 전적으로 수긍하지만, 동의 여부는 여러분의 몫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임유리 감독의 영화 ‘메아리’ 촬영 당시 모습. /CJ문화재단

그렇다면 학생 단편영화 경쟁 세션 라 시네프에서 선보인 <메아리>는 어땠을까.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 임유리 감독(26)의 영화는, CJ문화재단의 신인 단편영화 감독 지원 사업 ‘스토리업’의 2022년 선정작이다. 전 세계에서 출품된 2,263편 중 126대 1의 경쟁을 뚫고 최종적으로 18편 안에 입성했다. 조선시대를 무대로, 술에 취한 일군의 난봉꾼 청년들에게 쫓기는 여주인공이 몇 해 전 옆 마을 영감에게 시집간 옆집 언니를 금지된 숲에서 만나면서, 숨겨진 진실이 밝혀진다.

사전 정보 거의 없이 <메아리>와 조우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무엇보다 그 시대적 배경이었다. 시대물을 빚어내는 건 기성 감독에게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겠거늘, 대학 재학생이 도전했으니 남다른 주목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번 칸의 선택에 일종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이국풍(Exoticism)이 일정 정도 작용했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 두 요인은 아시아 영화가 서구에 의해 발견‧인정될 때 주효하게 작동되고 있는 주요 기제들인 탓이다.

졸업작품도 아니고 재학 중 연출한 단편 치고는 작지 않은 예산인 2700만원-사비가 제법 투하됐으리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터-이 뒷받침됐겠지만, 수준급 프로덕션 밸류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은 그러나 주인공 옥연 역 정은선 등의 연기 해석 등 여러 지점에서 시대물이라는 영화의 정체성 따위엔 연연해하지 않는다. 외려 현대적 느낌을 듬뿍 담았다. 프로 냄새 물씬 풍기는 두 여주인공들에 비해 청년들 연기에서 치기 어린 아마추어성이 뿜어나오는 것도, 감독의 의도적 연출일 공산이 크다.

‘메아리’ 스틸 컷

그것은 <메아리>가 작금의 페미니즘적 지향‧목표를 겨냥했으리라는 의도를 함축‧시사한다. 의도적 불일치요 시대착오랄까. 그런 감독의 선택은 영화의 완성도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텐데, 3등까지의 수상으로 비상하지 못한 결정적 연유이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 솔직한 판단이다.

20분여의 단편 치고는 지나치게 극적 호흡이 느리다는 느낌이 든 것도 아쉬웠다. 영화의 사건 못잖게 인물의 심리에도 방점을 찍으려 해 빚어진 결과였겠으나, 으레 단편에 기대되기 마련인 임팩트가 부족해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감독의 흔치 않은 도전‧비전에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순 없을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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