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봉준호 이어 세계영화사 새장 열였다
[아시아엔=전찬일 크리튜버,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재미교포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이 연출한 미국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이, 결국 제93회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로써 그 여걸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에 이어 오스카 역사는 물론 한국, 아니 아시아 및 세계 영화역사의 새장을 활짝 열어젖혔다. ‘70대 중반’의 ‘아시아 여성’에 ‘주연 아닌 조연’이란 몇 중의 허들을 극복하며 일궈낸 성과니, 어찌 그렇게 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전 그 부문 유일한 수상자는 우메키 미요시였다. 1958년 <사요나라>로 그 상을 안았을 때 그녀는 29세였다. 감독은 조슈아 로건. <피크닉>(1955), <버스정류장>(1956), <남태평양>(1958) 등으로 국내 올드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명장이다. 남자 주인공은 더 이상 부연이 필요 없을 세계 영화사 최고·최대 스타-배우 말론 브란도였다. 더욱이 1950년대는 일본(예술)영화가 세계 영화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시기였다. 두 수상에 담긴 함의에는 이렇듯 큰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윤여정의 성취는 더욱 빛난다.
널리 보도되고 있다시피 촌철살인의 어록, 엄밀히는 일종의 ‘장외 연기’ 내지 ‘태도’(Attitude) 또한 총 38개에 달하는 트로피 못잖은 화제를 일으켜왔다. 이번 역사적 쾌거 직후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함께 한 기자회견(이하 한국일보 권영은, “오스카 탔다고 김여정 되겠나…살던대로 살 것” 참고·인용)서도 그랬다.
그녀는 진심으로, <힐빌리의 노래>에서 열연한 1947년생 동갑내기 배우 글렌 클로즈가 영예를 안기를 바랐다, 고 했다. 2000년도인가 영국에서 그가 출연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관람하며, 당시 나이에 하기 힘든 것을 하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서였단다. 지난해 봉준호가 선배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수상의 영광을 바쳤던 장면과 겹치는, 가히 “윤며들다”다운 소감이었다.
솔직·당당한 언변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재치 만점이었다. “내가 오래 살았다. 좋은 친구들과 수다도 잘 떤다. 수다에서 입담이 나왔나 보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냐는 질문에는, 그녀 아니면 불가능할 제안으로 응수했다. ‘최고’라는 말이 싫다면서, 최고나 1등 대신에 ‘최중’이라고 하면 안 되겠냐고 반문한 것. 그 의도로 파악할 때 최중은 가장 중요하다는 最重이 아니라 最中으로 사전에도 없는 조어였다. 그녀는 강변했다.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냐면서, “동양 사람들에게 아카데미 벽이 너무 높아 트럼프 월보다 더 높은 벽이 됐다”고,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자”고,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된다”고, “최고의 순간인지는 모르겠다”고….
가장 큰 눈길을 간 것은 이 대목이었다. “내가 잘 한 게 아니고, 대본을 잘 쓴 것이다. 할머니와 부모가 희생하는 건 보편적인 이야기다. 그게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런 소재를 감독이 진심으로 썼으니까.” 그녀는 덧붙였다. “영화는 감독이다. 감독이 굉장히 중요하다. 예순 넘어서 알았다.” 그녀는 거장 김기영 감독을 20대 초반에 만났다. 스크린 데뷔작이자 출세작 <화녀>(1971)와, 그 성공에 힘입어 만들어진 <충녀>(1972)를 통해서였다. “정말 죄송한 건 그분께 감사하기 시작한 건 예순이 돼서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그전엔 몰랐다. 다들 그를 천재라고 했지만 나한테는 너무 힘든 사람이었고, 싫었다. 지금까지도 후회하는 일이다. 정이삭 감독은 우리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데 현장에서 누구도 모욕주지 않고, 모두를 존중하면서 컨트롤하더라. 그에게서 희망을 봤다. 43세 먹은 애한테 존경한다고 했다. 그를 만난 것도 배우를 오래 해서다. 김 감독에게 못한 것을 지금 정 감독이 다 받는 것 같다.”
이쯤 되면 거의 현자요 철학자의 경지다. 윤여정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거두고 있는 역대급 결실이 많은 이들과의 ‘협력’(Collaboration)의, 비록 작품상·감독상·각본상 등에서는 불발됐으나 무엇보다 정이삭 감독의 수준급 각본력·연출력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봉준호에게도 그랬듯, 나는 역설하련다. 윤여정에게 진정 배워야 할 것은, 무엇보다 그 가치관이요 애티튜드일 것이라고.
일찍이 온라인 사이트 이즘(www.izm.co.kr)의 연재 ‘전찬일의 영화수다’ “왜 <미나리>인가!”에서 밝혔듯, <미나리>의 주목할 만한 덕목은 크게 세 가지쯤에서 발견된다. 먼저 감독의 자전적 가족 이야기를, 안정적이면서도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력으로 극화했다는 점이다. 플롯을 이민 가족으로서 으레 겪을 수밖에 없을, 인종차별 같은 외부 요인보다는 주로 가족 내 갈등으로 구축한 선택은 단연 주목을 요한다. 그 중에서도 사건의 클라이맥스를 윤여정이 연기한 할머니 순자의 불가항력적 실수로 처리한 것은 영화의 최대 미덕이다. 물론 그 가족을 넘어, 미국이라는 더 큰 사회문화적 맥락(Context)을 충분히 담지 않았다고, 크고 작은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회·평등이 일정 정도 가능은 하지만 지독한 차별과 모순의 나라이기도 한 미국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그렸다고 할까.
두 번째 덕목은 부연이 필요 없을 연기와 성격화(Characterization)에서 연유한다. 윤여정을 비롯해 봉준호의 <옥자>(2017)와 이창동의 <버닝>(2018) 등을 통해 그 연기력을 공인받은, 제이콥 역 스티븐 연, 오스카 후보 지명은 안 됐어도 생애의 연기를 선보인 모니카 역 한예리,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했건만 한국어 연기도 곧잘 해낸 앨런 김과 노엘 조 등이 구현한 앙상블 연기는, 과장이 아니라 <기생충>에 비견되기 부족함 없다.
윤여정 연기를 향한 온갖 찬사들은 그러나, 연기(력) 그 자체보다는 캐릭터 요인에 기인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내 주장이다). “당장 할머니이면서도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쳐 함께 치고, 상소리들이 두루 섞인 거친 입담을 과시하며, 천연덕스럽게 요리를 못한다면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엉뚱(?)하게 미나리의 질긴 근성을 설파하는 등의 순자부터가 얼마나 ‘별난’ 캐릭터인가. 그야말로 역대급 캐릭터의 완승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나리>가 자신의 연기 최고작이 아니라는 것을 윤여정 본인이 잊지 않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녀는 필자가 초등학교 4년 적 청량리에 있던 동일극장에서 관람한 ‘청불영화’ <화녀>에서 이미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으며, <꽃피는 봄이 오면>(류장하, 2004), <죽여주는 여자>(이재용, 2016) 등에서 최상의 연기력을 선보인 ‘연기의 달인’이다. 한데도 그녀는 좀처럼 우쭐대지 않고 겸허해하며, 어색해하기조차 한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연기를 넘어 후배 배우들이 힘껏 배우고 벤치마킹해야 할 그 무엇 아닐까?
다시 강변컨대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미나리>의 (영화)역사적 덕목은,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강압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네 한국인들의 이민 역사?현실, 다시 말해 무려 750만명에 달한다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해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는 데서 나는 찾고 있다. 영화적 수준에서는 다소 못 미칠지언정, <미나리>의 영화사적 의미가 <기생충>을 능가한다고 평하는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