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Minari’와 청도 ‘미나리’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미나리는 피를 맑게 해 주는 식품으로 옛날부터 귀히 여겨 궁중에 진상하였다. 특히 경북 청도군 청도읍 남산과 화악산 계곡을 따라 이루어진 한재마을의 ‘한재미나리’가 유명하다.
1980년대 조성된 ‘미나리단지’에는 150여 농가에서 미나리를 재배한다. 필자는 1946년 부친이 청도전매서(淸道專賣署)에 근무할 당시 청도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년 동안 공부한 후 왜관(倭館)으로, 그리고 4학년 때 대구(大邱)중앙국민학교로 전학했다. 그리고 5학년 때인 1950년 북한의 6·25전쟁이 발발했다.
필자는 아내와 함께 지난 3월 3일 개봉한 정이삭 감독의 영화 를 상암동 메가박스에서 관람했다. 제78회 골든글로브상(Golden Globe Awards)을 수상한 <미나리>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개봉 엿새 만에 30만 관객을 모았다. 이 상은 1943년 설립된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에서 수여하며, 그 영향력이 아카데미상(Academy Awards)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이라고 불린다. 시상식은 세계 120여개국에 방영되어 약 2억5천만명이 시청했다.
미나리(water-dropwort, 수근水芹)는 물을 뜻하는 옛말 ‘미’와 나물을 뜻하는 ‘나리’가 합쳐진 말이며, ‘물에서 자라는 나물’이라는 뜻이다. 1527년 국어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처음 ‘미나리’로 표기된 후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미나리는 하천이나 계곡 변두리, 논과 같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여러 해 동안 자란다. 동북아시아에서 미나리를 채소와 약으로 이용한 역사는 아주 오래다. 잎과 줄기의 독특한 향기 때문에 봄철 입맛을 돋우는데 좋다.
미나리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다년초(多年草)이며, 줄기는 길게 진흙 속에 뻗고 높이는 80cm 이상이다. 전 세계에 2천6백여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강활, 어수리, 시호, 전호 등 80여 종이 분포되어 있다. 미나리는 줄기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거나, 꽃에서 나온 씨앗을 하천 물을 이용해 멀리 퍼뜨리는 방법으로 번식한다. 줄기 끝에 무더기로 난 잎에는 톱니가 있으며, 아주 작은 하얀 꽃이 6-7월에 피며, 씨는 가벼워 물에 뜬다.
미나리는 비타민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입맛을 잃었을 때 미나리회나 미나리강회를 먹으면 식욕을 되찾는데 효과가 있다. 다른 채소에서 맛보지 못하는 독특한 향미가 있어 김치 담글 때 곁들여 쓰기도 한다. 미나리는 수분이 많기 때문에 변통(便通)을 촉진하며, 식물성 섬유가 창자의 내벽을 자극해서 장(腸)운동을 촉진한다.
미나리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는 식물이며, 생명력이 강한 이유는 흡수력 때문이다. 오염이 심한 하천에는 카드뮴(cadmium), 크롬, 납 등 유해 중금속이 있고, 인이나 질소 등 영양염류가 있다. 보통 식물은 주변에 중금속이나 영양염류농도가 짙어지면 중독되거나 수분을 잃고 죽는다. 그러나 미나리는 식물체 내에 중금속이나 영양염류를 흡수할 수 있는 단백질 구조가 있어 대부분 미나리 뿌리에 저장돼 주변 환경은 깨끗해진다. 이에 미나리는 오염된 하천을 맑게 해주는 정화식물로 이용된다.
필자 아내는 가끔 시장에서 미나리를 구입하여 미나리무침, 미나리전, 미나리강회 등을 요리하여 밥상에 올린다. ‘미나리강회’는 잘게 썬 편육이나 돼지고기와 파대가리에다 실고추와 실백(實柏, 잣)을 얹어서 데친 미나리 줄기로 감아 만든다. 필자는 미나리 요리 중에서 식당에서 복어(鰒魚, puffer) 매운탕에 넣어 주는 생미나리를 끓여 복어와 함께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청도 한재미나리는 속이 통통하게 차고 식감이 연해서 생으로 먹기에도 제격이다. 한재미나리 줄기 하나를 손으로 돌돌 말아서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과 쌈장을 올려 한입 먹으면 삼겹살의 고소한 맛과 향긋한 미나리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 이에 미나리단지에는 삼겹살 식당이 많다. 한재미나리는 7월부터 9월까지 파종 시기를 빼고는 1년 내내 생산되므로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찾기에는 봄이 제일 좋다. 미나리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피로해소, 해독작용, 혈압강하, 빈혈개선, 피부미용 등에 효과가 있다.
미나리 손질은 먼저 줄기의 억센 부분을 2cm 정도 잘라내고, 시들한 잎은 떼어낸 후 물에 식초 1큰술을 넣고 10-20분 정도 담가둔다. 그리고 깨끗한 물에 미나리를 1-2회 흔들어 씻은 후 흐르는 물에 헹궈 준다. 미나리에는 이물질과 벌레(거머리 등)가 있을 수 있으므로 세척에 유의하여야 한다. 깨끗이 씻은 미나리는 용도(무침, 볶음, 미나리강회 등)에 알맞게 썰어서 사용한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 이야기를 담았으며, 낯선 곳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잔잔한 드라마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Lee Isaac Chung)이 감독한 ‘미나리’는 미국자본으로 만들었지만 한국어 대사가 80%에 이른다. <미나리>가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장상과 관객상부터 최근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까지 미국 내 각종 시상식에서 89관왕을 차지했다.
4월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몇몇 트로피를 가져갈 다크호스로 <미나리>가 꼽히고 있다. 미국 5대 신문 중 하나이며, 서부지역 최대 신문인 <LA타임스>(Los Angeles Times)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라고 평했다. 영화가 주목받으면서 제목 <미나리>도 화제가 됐다. 외국기자들한테 “미나리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받고 정이삭 감독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채소를 뜻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는 ‘무뉴랑가보’로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고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후보에 오른 정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이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 는 1994년 종족간의 끔직한 대학살로 고통받는 르완다(Rwanda)를 배경으로 펼치는 두 친구(무뉴랑가보와 상그와)의 이야기이다.
영화 <미나리>가 영국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영국영화텔레비전예술아카데미(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 시상식에서 6개 부문(외국어영화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윤여정), 남우조연상(앨런 김), 오리지널 각본상, 캐스팅상) 후보에 올랐다. 특히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연기상 후보에 올라 화제다. BAFTA는 4월 11일 런던 로열앨버트홀에서 무관중으로 개최되는 ‘2021 제74회 BAFTA 시상식’에 앞서 3월 9일 50개 후보작을 발표했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인 배우(한예리, 윤여정)가 출연하는 가족영화이다. 가족은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 어머니 모니카(한예리), 할머니 순자(윤여정), 아들 데이빗(앨런 김), 딸 앤(노엘 조)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면서 남편은 틈틈이 우물을 파고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심어 농장을 가꾼다.
심장이 약한 막내아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한데 이를 메워줄 해결사로 친정 엄마 순자(윤여정)가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과 ‘미나리씨’를 싸들고 미국에 도착하자 가정에 활기가 돈다. 순자가 가져온 미나리씨는 개울가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생명력과 적응력의 상징이다.
영화는 부부(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 제이콥이 구입한 농장의 전주인은 사업 실패로 자살하며, 모니카는 교회를 통해 이웃을 사귄다.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할머니(순자)의 실화(失火)로 농산물 창고가 불타 넋을 잃고 집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외할머니의 앞길을 막아선 어린 손자와 손녀(데이빗과 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갈등과 치유의 관계로 연결돼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제이콥이 아들 데이빗과 함께 냇가 미나리밭을 찾아간다. 즉 농장에 꼭 필요한 충분한 물을 할머니 순자가 미나리를 심은 장소의 바로 옆 냇물에서 찾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화에서 수맥(水脈) 전문가가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지하수를 찾는 데 사용하는 Y자(字)형 살아있는 부드러운 나뭇가지(소망을 들어주는 가지, Wunschelrute)를 이용하지만 지하수를 찾지 못한다.
정이삭 감독은 최근 미국 공영라디오(NPR)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외할머니를 회상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실제 외할머니의 삶은 6.25전쟁으로 할아버지가 죽고 어린 딸(정 감독의 어머니)을 키워야만 했다.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외할머니는 한국의 모든 재산을 팔아 미국으로 왔으며, 세상을 뜰 때도 뇌졸중으로 고통 받았다. 정 감독은 “이 영화에서 내가 오직 바랐던 것은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일부라도 포착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할머니 사랑’은 대중문화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서사이지만, 최근에는 국경을 넘어선 ‘한국 할머니’(K-halmoni)는 영어는 잘 못해도 가족들이 필요하다면 한국 음식을 싸들고 바다를 건너고, 바쁜 부모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며 삶의 지혜를 전한다.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번성한다는 은유도 되지만, 할머니의 지혜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에 ‘To All Our Grandmas’(모든 우리의 할머니들께)라는 헌정 문구를 남겼다.
영화 제작사는 배우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경영하는 플랜B(Plan B Entertainment)이다. 촬영 기간 내내 같은 숙소에서 지낸 출연 배우들은 가족처럼 모여 수다를 떨고, 영화에 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한다. 미나리가 미들버그영화제에서 배우조합상인 앙상블상을 수상했을 때, 배우들은 “우리가 받아도 마땅한 상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윤여정(1947년생)은 조그맣게 시작한 영화가 너무 큰 반응이 있어서 어리둥절하다면서 출연진 다섯 명이 식구처럼 행복하게 작업한 영화였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 나이인 정이삭(1978년생) 감독이 가장 역할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우리를 잘 끌어줬기에 ‘감독을 위해서라도 영화를 잘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끝냈더니 많은 상을 타게 되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전미비평가위원회 등에서 연기상 통산 32관왕을 달성했다.
막내아들 역할로 출연한 앤런 김(8세)은 3월 8일 미국 방송영화비평가협회에서 주관하는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Critics’ Choice Awards)에서 아역 배우상을 받았다.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온라인 중계로 열린 시상식에서 “제게 투표해주신 비평가분들과 우리 가족, 정이삭 감독님, 그리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에게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영상으로 말하다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미나리>는 그의 영화 데뷔작이다. MINARI, Wonder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