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조민호 감독의 ‘항거:유관순 이야기’, 고아성의 재탄생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에서 현서로 뚜렷한 영화적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고아성은 어쩌면 이 역할을 구현하기 위해 배우가 된 것은 아닐까.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획돼 선보인 <항거: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를 보는 내내, 이 원고를 쓰는 지금도 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물음이다.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3평도 채 되지 않는 당시 서대문 감옥 즉 서대문형무소 8호실 안, 비록 몸은 아니었을지언정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 열사와, 그녀의 동지들이던 서른 명에 달했던 8호실 여성들의 1년간의 실화성 팩션(Faction) 드라마다.

고아성은 그 낱말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 그대로 유관순의 현현(顯現)이다. 그 내면에서만이 아니라 그 외면에서조차도. 두 여인의 외모가 닮은꼴이란 의미는 아니다. 고아성 그녀만의 어떤 내적 연기로 인해 그 외적 차이 따위쯤은 보란 듯 증발‧지양되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다. 고아성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어느 지점에서는 마치 유관순을 목격하는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을 일으켰던 까닭은.

고아성의 연기가 시쳇말로 “죽인다”거나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전도연이나 송강호의 흔한 열연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성격화(Characterization)요 인물해석이다. 유관순 속으로 들어가 실감 넘치게 그녀를 살되, 그 역사적 캐릭터를 소화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잊지 않는 소위 변증법적 연기랄까.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체현하면서 동시에 시종 극중 배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연기 하면 으레 최상의 경지로 간주‧평가되곤 하는 스타니슬라브 식 메소드 연기를 펼쳐 보이면서도, 그와는 대조적인 브레히트 식 서사적 연기를 결합시켜 변증법적 융‧통합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그녀는 압도적이다. 가히 “고아성의 재탄생”이라 평할 만하다.

고백컨대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별 다른 기대를 품지는 않았었다. 우선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이 영화와 연결되지 않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살렸다는 ‘양아치 영화’ <정글쥬스>(2002)로 장편 데뷔를 했고, 이후 <강적>(2006)과 <10억>(2009) 정도의 범작, 아니 태작을 연출했던 게 고작(?)인 감독이, 안중근과 더불어 한국독립운동사의 으뜸 인물을, 그것도 10억원 가량의 (상대적) 저예산으로 극화한다니, 어찌 신뢰가 가겠는가.

거기에 서세원 감독 유오성 주연의 <도마 안중근>의 악몽이 더해졌다. 그 졸작의 참패를 재연하는 게 아닐까 등의 우려와 염려가 밀려들었다. 그런 필자를 움직인 건 유관순 고아성의 몇몇 인터뷰들이었다. 일련의 짙은 ‘진심’들! 평론가로서의 의무감도 작용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더욱이 오는 4월 말 대전시민포럼에서 “미결의 역사, 지연된 시도…”란 제목으로 “2000년대 이후 ‘일제 식민기 영화들’에 대한 단상”를 피력해야 하지 않은가.

워낙 기대를 갖지 않아서였을까, 영화는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에 필적할 문제적 수작 소품으로 손색 없었다. 내 편견은 ‘박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편견들이 부끄러웠다. 반성해야만 했다. 이 원고는 일정 정도 그 반성의 결과물인 셈이다.

영화의 장점, 단점을 상술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말만은 해야겠다. “어느 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방문해 유관순의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슬프지만 당당함을 담고 있는 눈빛에 뜨거운 울림을 느낀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는데, ‘어두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자유와 해방을 향한 꿈을 굽히지 않았던’ 유관순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었던 조민호 감독과 제작진은 역사적 사실과 자문 등을 통해 사실에 입각한 실제적 인물 유관순을 정직하게 스크린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는데, 다름 아닌 그 ‘정직함’이 전해진다고.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그런 부류의 영화들이 자칫 빠져들기 십상인 이러저런 경향들을 비켜나가는데 성공한다. 어느 정도는 교훈적이되, 계몽적으로 새지 않는다. 일말의 감상성을 엿보이되, 최루로 치닫지 않는다. 선동적일 법도 하건만, 그런 법이 거의 없다. 크고 작은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득이 택하지 않을 수 없을 선정성의 길을 걷지도 않는다. 심지어 백현진과 짝을 이룬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 등이 음악을 연출했건만, 음악 효과로 관객의 감상을 배가시키거나 조종조차 않는다. 이러니 어찌 정직하다, 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화는 개봉 2주차를 맞으며 100만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래저래 <동주>와 닮았다. 50만명쯤에서 손익분기점을 넘었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몰랐던,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유관순의 1년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내며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모습과 용기를 통해 잃어버렸던 당당한 눈빛과 희망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조민호 감독의 바람은 이미 100% 실현됐다. 영화의 그 정직함을 확인해보지 않겠는가?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