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칸 영화제 결산①] 니콜 키드먼 ‘70회기념상’ 수상, 칸에 부는 변화의 바람
올해의 화제작은 어디에···예년 비해 출품작 평점 저조
[아시아엔= 전찬일 영화 평론가/아시아엔 ‘문화비평’ 전문위원] 보안검색(Security)과 ‘넷플릭스 어페어’가 5월 28일(현지 시각)일 막을 내린 제70회 칸영화제를 지배했다는 것은 앞서 칸 현지르포 4편에서 상술한 바 있다. 경쟁 부문에 한정해 총평을 해보면, 그에 부응이라도 하듯 폐막 당일까지 2017 칸을 후끈 달굴만한 올해의 화제작은 끝내 출현하지 않았다. 지난해의 <토니 에드만>(독일, 마렌 아데 감독)와 같은 작품이 올해는 부재했던 것.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재미와 의미를 겸비한 감동의 부녀 드라마 <토니 에드만>은 2016년 영화제 초반 등장하며 두 대표적 칸 데일리인 스크린 인터내셔널과 르 필름 프랑세로부터 각각 3.7점과 3점이라는 기록적 종합 평점을 받았었다. 올해엔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120 비츠 퍼 미닛>(프랑스, 로뱅 캉피요)이 르 필름 프랑세로부터 <토니 에드만>에 근접하는 2.93의 최고 평점을, 갈라 크롸제트로부터는 3.7점이라는 압도적 평점을 끌어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칸에서 가장 널리 참고·인용되는 스크린으로부터 2.5점밖에 받지 못하면서 2017년의 <토니 에드만>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르 필름 프랑세나 갈라 크롸제트와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긴 하나 스크린을 기준 삼으면, 올 칸의 경쟁작 19편의 평균 평점은 2.22점 가량이다. 지난해 21편의 평균 2.38에 다소 못 미친다. 3점 이상도 <러브리스>(3.2점, 러시아,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와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3.2점, 영국, 린 램지) 2편에 지나지 않는다. 2016년에는 <토니 에드만>을 필두로 <페터슨>(3.5점, 미국, 짐 자무쉬), <엘르>(3.1점, 프랑스, 폴 버호벤), <바칼로레아>(3.0점,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주), 그리고 <시에라네바다>(3.0점, 루마니아, 크리스트 푸이유) 5편이 평점 3점 이상이었다. 최고 평점도 작년에 비해 현저히 낮다.
속내로 더 들어가 보면 사정은 한층 더 열악하다. 지난해엔 숀 펜의 <더 라스트 페이스>가 0.2점으로 사상 최악의 평가를 받기는 했어도, 1점대를 받은 영화는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인 <단지 세상의 끝>(1.4점, 캐나다, 자비에 돌란) 1편에 불과했다. 올해는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와 공동으로 각본상을 안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킬링 오브 어 세이크리드 디어>(1.9점, 그리스)를 위시해, 여우주연상(다이앤 크루거)을 차지한 파티 아킨 감독의 <인 더 페이드>(1.5점, 독일),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의 <주피터스 문>(1.6점, 헝가리),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히카리>(1.6점, 일본), 자크 드와이용 감독의 <로댕>(1.0점, 프랑스)까지 5편이나 된다.
“평준화 됐다”느니 “최악의 해였다”느니 따위의 총평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래저래 2017 칸은 총체적 실패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세계 최대 위용을 자랑하는 영화제로서 칸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조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수상 결과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올 칸의 의미는 그 어느 해보다 더 크고 깊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젠더 측면. 필름메이커들의 양적 비중에서 고작 7프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여성의 존재감이 단연 부각·부상했다. 19편의 경쟁작 가운데 여성 감독이 3명이었고, 2명이 7개의 본상 중 3개를 품었다. 감독상의 소피아 코폴라(<매혹당한 사람들>), 남우주연상(호아킨 피닉스)과 각본상의 린 램지(<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가 그 주인공이다. 제시카 체스테인부터 마렌 아데, 아녜스 자우이, 판빙빙에 이르는 4명의 여성 심사위원들도 그렇지만 여성적인, 너무나도 여성적인 영화 세계를 펼쳐온 심사위원장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단연 주목할 만한 성취다.
지난해엔 <토니 에드만>의 마렌 아데부터 <아메리칸 허니>의 안드레아 아놀드, <프롬 더 랜드 오브 더 문>의 니콜 가르시아까지 올해와 매한가지로 3명이 초청됐음에도, 수상은 심사위원상의 안드레아 아놀드 1명에 그쳤었다.
이보다 더 유의미하게 다가서는 성취는 다름 아닌 니콜 키드먼의 ‘70회 기념상’ 수상이다. 올해 키드먼은 4편이나 되는 공식 초청작에서 빛났다. 두 경쟁작 <매혹당한 사람들>, <더 킬링 오브 어 세이크리드 디어>와 두 비경쟁작 <하우 투 토크 투 걸스 앳 파티스>(존 캐머런 미첼),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 훌루(hulu)의 인기 TV 시리즈 <탑 오브 더 레이크: 차이나 걸>(제인 캠피언 & 아리엘 클라이만)이었다. ‘원 톱’이 아니어서인지 <인 더 페이드>의 다이앤 크루거처럼 압도적이진 않아도, 그 존재감은 가히 눈부셨고 당당했다. ‘2017 칸의 디바’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70회 맞은 칸, 여신 향해 미소 짓다
키드먼이 칸 클래식 부문에 초대되기도 한 걸작 <용서받지 못한 자>(1992)와 함께 칸을 방문해 마스터클래스까지 선사한 세계 영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역대 황금종려상 2회 수상 감독 8인 중 1인으로 또 한 편의 경쟁작 <해피 엔드>의 감독 미하엘 하네케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70회 기념상을 거머쥔 건 ‘역사적’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위업이었다. 참고삼아 밝히면 역대 황금종려상 2회 수상 8인은 스웨덴의 알프 셰베리를 필두로 미국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덴마크 빌레 아우구스트, 유고슬라비아 에미르 쿠스트리차,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 벨기에 장 피에르 & 뤼크 다르덴 형제, 켄 로치, 그리고 미하엘 하네케다.
2017 칸이 두 거장 중 한 명이 아니라 세계 정상의 스타 여배우에게 70회를 기리는 상을 안겼다는 사실은,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도 역설했던 칸의 ‘어떤 변화’를 감지케 한다. 세상의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여성 영화인들에게 한결 더 많은 기회·여지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천명. 그 의지는 세대 측면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스트우드나 하네케 같은 70∼80대의 노장보다는 여타 40∼50대의 중견들에게 더 큰 관심·애정을 기울이겠다는 선언이랄까. 전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선정이나 수상 결과가 그랬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