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칸 영화제 결산②] ‘거장’ 하네케 대신 ‘변방’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손 들어준 칸

세 번째 황금종려상 후보로 점쳐졌던 미하엘 하네케 <사진=신화사/뉴시스>

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하네케, 기대 못 미친 범작으로 무관에 그쳐

[아시아엔= 전찬일 영화 평론가/아시아엔 ‘문화비평’ 전문위원] 미하엘 하네케가 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 3회 수상자가 될 것이냐 여부는 올 칸의 으뜸 관전 포인트이기도 했다. 과도한 기대 탓만은 아닐 터, 베일을 벗은 <해피 엔드>는 노장의 명성을 금 가게하기 모자람 없는, 지나치게 밋밋하고 심심한 범작이었다.

유럽의 어느 가족의 일그러진, 하지만 평범할 대로 평범한 초상화. 같이 지내면서도 무관심할 대로 무관심한 가족 3대 이야기를 스마트폰 이미지 등을 동원해 나름 감각적으로 그렸으나, 신선은커녕 인상적이지도 않다. 충격을 의도했을 법한 결말부도 예상되고도 남아, 외려 도식적이란 느낌을 안겨준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마저도 눈길을 끌지 못했겠는가.

황금종려상을 안은 두 문제작 <하얀 리본>(2009)과 <아무르>(2012)는 고사하고 그 동안 봐왔던 1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전작들 그 어느 것도 이와 같은 실망감을 (내게) 안겨준 적은 없었다. 물론 하네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나, 명성이 허망해졌다. 심사위원대상을 품긴 했어도 지난해 실망할 대로 실망했던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은 그에 비하면 수작이었다. 다소의 과장을 더하면 지난 20회를 거치며 칸에서 봤던 최소 500편 이상의 영화를 통틀어서도 가장 큰 실망을 맛 본 영화라고 한다면 이해할까. 그만큼 졸작이어서라기보다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의미에서다.

칸 데일리 반응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스크린으로부터 2.2점의 무난한 평가를 받았으나 르 필름 프랑세에서는 1.33점으로 <주피터스 문>(1.13점)에 이어 19편 중 18위에, 상대적으로 후한 갈라 크롸제트에서는 1.72점으로 1.5점의 <그 후>에 이어 18위에 마크됐다. 지난해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생애 두 번째 칸 황금종려상을 안은 80대의 노장 켄 로치와는 대조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하네케보다 2년 연하인 70대 초반의 자크 드와이용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다. 1996년 <뽀네트>의 여주인공 뽀네트 역의 5살 소녀 빅투아 티비졸에게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안기는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 대표작 <머릿속의 손가락들>(Les doigts dans la tête, 1974)을 비롯해 칸 경쟁 부문 첫 초청작 <뻔뻔스러운 여자아이>(La drôlesse, 1979), 전 부인이기도 했던 제인 버킨 주연의 두 번째 칸 초청작 <여해적>(La pirate, 1984) 등을 통해 일찌감치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누려온, 지독히 프랑스적인 명장인 그다.

그 노 명장은 33년 만에 칸 경쟁에 입성했거늘, 선배 하네케처럼 무관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두 연인 간의 파괴적 사랑싸움을 그린 전작 <러브 배틀>(2013)의 시대극 버전이라 할 <로댕>으로 말이다. 로댕은 바로 그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다. 영화는 25살 아래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과의 애증 어린 관계를 중심으로, 40대 초 전성기 적 로댕의 예술과 삶을 육체적·물질적으로 묘사하는데 집중한다. 로댕이 조각 작품을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그 육체성, 그 물질성을 즐길 수만 있다면 영화는 흥미로울 터. 허나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내러티브에 천착한다면 실망할 공산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스크린에서 1.0점의 최하위 평점을 받는, 수상 실패보다 더 큰 수모를 당했다. 반면 르 필름 프랑세에서는 1.9로 중간 정도의 평점을 받았다.

황금종려상 발표 직후 환호하고 있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사진=AP/뉴시스>

반면 2017 칸에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스웨덴 출신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 수상은 어떤 의미로 바라봐야 할까? 이전에도 스웨덴 감독들의 수상은 몇차례 있었으나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제50회를 맞이한 칸이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최고상을 안은 적 없는 잉마르 베리만(<제7의 봉인, 1957> <산딸기, 1957> <페르소나, 1966> <외침과 속삭임, 1972> <화니와 알렉산더, 1982>)에게 황금종려상 명예상을 수여하긴 했으나 말 그대로 명예상(!)이니 논외로 치자.

베리만 이전 스웨덴을 대표했던 연극감독이자 영화감독인 스벤 에릭 알프 셰베리(Sven Erik Alf Sjöberg, 1903∼1980)가 제1회 때인 1946년 칸 최고상인 그랑프리(Grand Prix du Festival)를 받았다고는 하나, 이탈리아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나 영국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 등 다른 10개국 10편과 함께 받은 것이라 큰 의미를 부여하긴 무리니 역시 논외로 하자.

알프 셰베리가 1951년, 자연주의 연극의 거두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줄리 양>으로 비토리오 데 시카의 <밀라노의 기적>과 그랑프리(Grand Prix du Festival)를 공동수상한 이래 66년 만에 스웨덴 출품작인 <더 스퀘어>에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것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개인적 명예를 넘어 이른바 ‘내셔널 시네마’의 외연 확대란 측면에서도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칸의 또 다른 변모다. 제 아무리 ‘트랜스’가 강조되는 초연결 시대라 할지라도 내셔널 시네마는 여전히 핫이슈이기에 내리는 진단이다.

지난 30년 간 이웃나라 덴마크가 세 차례―1988년 <정복자 펠레>(빌레 아우구스트)와 1992년 <최선의 의도>(빌레 아우구스트), 2000년 <어둠 속의 댄서>(라스 폰 트리에)―나 세계 최고 영화제의 정상을 오를 때 부러움의 시선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스웨덴으로서는 국가적 경사를 맞이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듯. 과장이라고? 천만의 말씀. 다시 말하건대 미디어 노출 등의 측면에서 칸은 올림픽과 월드컵에 이른 세계 3대 이벤트라고 하지 않는가.

인기 TV 시리즈 <탑 오브 더 레이크: 차이나 걸>과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를 70회 기념 이벤트로 공식 초청했다는 것도 칸의 어떤 변화를 예고한다. <피아노>(1993)와 <와일드 앳 하트>(1990)으로 이미 황금종려상을 가져간 바 있는 제인 캠피언과 데이비드 린치를 모양새 있게 부를 구실로 그랬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세계 최고 영화제인 칸이 스크린용 영화와 TV(용) 영화 간의 경계가 와해되고 있는 현실을 인정·수용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영화라는 종의 외연 확장을 꾀하면서 말이다.

멕시코 신진 거장과 VR의 ‘특별한 만남’

<육체와 모래>(Carne Y Arena)라는 7분짜리 VR(Virtual Reality) ‘설치’(Installation) 체험을 영화제의 프로그램으로 공식화한 것도 신기술 소개에 선두적 역할을 하겠다는 칸의 변화이자 다짐으로 읽힌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 된 <육체와 모래>는 멕시코와 미국 국경 지대를 넘나드는 이주자들이 사막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과정을 가상현실로 체험케 하는 설치 영화다.

개인적으로 더 주목하고 싶은 건 VR 그 자체가 아니라 그 VR 영화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장편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2000)부터 <21 그램>(2003) <바벨>(2006) <비우티풀>(2010) 그리고 2015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에 빛나는 <버드맨>과 2016년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주연상(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3관왕에 오른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 이르는 수·걸작을 빚어낸, 멕시코 출신의 현존 최고 명장이다. 그 사실은 ‘VR의 미래’도 결국은 단순 VR 체험을 넘어 재능과 명성 있는 아티스트 및 크리에이터가 창조해내는 콘텐츠에 달려 있다는 명제를 함축한다.

이쯤 되면 70회를 기린 올 칸은 그 어느 해 못잖은 유의미한 성과를 이뤘다고 평해도 되지 않을까? 위 변화들이 지속적일지 일회성으로 끝날지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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