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노래방’, 이문식·배소은·김나미의 재발견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아시아엔> ‘문화비평’ 칼럼니스트] “‘가족의 재탄생!’ 개별 캐릭터의 기막힌 사연을 통해 시대의 징후를 강렬하게 형상화하다. 이문식, 배소은, 김나미 등 ‘재발견’에 값할 열연은 덤.”
지난 15일 개봉된 <중독 노래방>에 대한 필자의 간단 총평이다. 한적할 뿐 아니라 남루하기 짝이 없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게 분명한 지하 노래방에 자기만의 말 못할 비밀을 간직한 막바지 인생들이 모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판타지 영화. 세계 3대 장르 영화제 중 하나인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비롯해 에딘버러국제영화제, 런던아시아영화제, 판타지아국제영화제 등 10여 국제영화제를 통해 이미 그 영화적 수준을 인정받은 문제적 소품이다.
2016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신설된 장편 경쟁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에서 최우수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배소은)을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거머쥐는 쾌거를 거둔 바 있다.
‘가족의 재탄생’은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2006)을 지시하리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을 듯. 한국영화사의 빛나는 문제적 가족 드라마다. 당장 두 영화 간의 10여 년이란 시차에 내포됐을 함의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족이 해체돼 가던 <가족의 탄생> 때는 그래도 떠난 가족이 찾아갈 공간인 집이 존재했다. 유사가족과 새 가족이 탄생하는 곳도 다름 아닌 그 집이라는 공간이다. 그 가족의 해체 이후를 그린 <중독 노래방>의 그들에겐 돌아갈 집조차 부재한다. 그러니 그 사연들이 훨씬 더 기막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니, 가슴 아릴대로 가슴 아리다. 그저 그들만의 사연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어떤 시대적 징후가 감지되는 것도, 무엇보다 그 가슴 저림 때문이다. 대체 그 10년 사이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내친 김에 사연의 주인공들을 소개해보자. 노래방 사장 성욱(이문식 분)은 바깥세상을 등진 채, 모든 걸 노래방에서 해결하는 외톨이이자 ‘야동 중독자’다. 초보 도우미 하숙(배소은)은 단벌 ‘추리닝’에 풀어헤친 긴 머리, 무표정으로 가끔씩 발작적 욕설을 퍼붓기도 하는 튀는 성격의 ‘게임 중독자’요, “노래방이라는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를 오가면서 생활하는 유일한 인물”인 나주(김나미)는 긍정 마인드의 프로 도우미로 ‘머니 중독자’다. 한편 도둑처럼 숨어 살다 성욱에게 들키는 점박이(미스터 팡)는,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 못하는 ‘도벽 중독자’다. 이러니 어찌 ‘중독 노래방’이 아니겠는가.
이들의 사연만이 아니다. 그저 위 네 중심인물들을 포함해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각종 사연을 지켜보는 맛만으로도 영화는 적잖이 ‘자극적’이며 충분히 ‘달콤쌉싸름’하다. 물론 영화는 그 사연들을 나열하는 걸로 승부를 걸진 않는다. 노래방이라는 제한된 공간 내에서 100여분을 끌어가는 극적 호흡도 그렇거니와, 정치한 미장센, 적재적소의 OST 배치 등 영화 미학적 수준이 기대 이상이다. 그 수준 덕분에 자극은 선정으로 새지 않는다. 김상찬 감독이 흥행과 비평 양 면에서 참패를 맛본 <복면달호>(2007) 이후 와신상담이라도 한 것일까.
감독의 연출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지점은 연기 층위에서다. 한때 오달수, 유해진 등과 더불어 한국영화계의 없어서는 안 될 ‘명품조연’이었던 이문식이 <평양성>(2011) 이후 한동안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 ‘소박하지만 유의미하게’ 컴백했다. 기억컨대 그가 이번처럼 깊은 내면 연기를 펼친 적은 없었다. “이문식 그가 연기자로서 재탄생했다”고 평하고 싶은 건 그래서다. 배우로서 그토록 오래 쉰 까닭도 이 영화를 탄생시키기 위한 충전을 위해서였다고 한들, 과언은 아닐 테고. 배소은과 김나미는 어떤가.
이 두 배우들과는 개인적 인연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로서 2012년 제17회 영화제에 김성홍 감독의 <닥터>와 (고)박철수 감독의 <베드>를 갈라 섹션에 초청하면서 맺은 인연이다. 논란의 여지 다분했던 저예산 ‘성애’ 영화들을 부산영화제 같은 세계적 영화제, 그것도 ‘갈라’ 같은 특별한 부문에 초대하면서 야기됐던 크고 작은 ‘말썽들’에도 아랑곳없이, 두 배우의 연기는 큰 주목감이었다는 확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거의 모든 관심이 그들의 연기가 아닌 노출에만 집중됐다 한들 말이다.
그 해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에 초청했던 <창수>(이덕희)의 제작자에게 두 사람을 ‘연결’한 것도 그런 확신에서였다. 그 확신은 빗나가지 않았다. 두 배우는 전작들과는 달리, 별 다른 노출 없이 더 이상은 구현 불가능할 내(면)적 에로틱 연기를 선사했다. ‘재발견’이 과장이 아닐 명연을.
안다. <중독 노래방> 이 영화, 때론 그 속내가 때론 불편하기도 하고, 나아가 불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각적 묘사 등에서 그렇게 노골적이진 않아도.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특히 여성 관객들이 그렇게 반응할 공산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나 불쾌함도 어엿한 미학적 장치라면 어떨까. 목표에 다다르기 위하 부득이한 수단이요, 영화가 안겨주는 미학적·심리적 임팩트가 크기에 맛보게 되는, 과정 내지 통과제의로서 영화적 감흥이라면?
<중독 노래방>은 결코 중독을 예찬하거나 방치하는 그런 유의 싸구려 영화가 아니다. 개인을 넘어 시대의 절망을 강변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영화는 외려, 영화 속 절망적 캐릭터들을 통해 불가능할 것만 같은 희망을 역설하지 않는가. 그 점에서 영화의 결말부는 가슴 아림을 넘어 말로 형용키 힘든 감동을 선사한다. 다시 말하건대, “가족의 재탄생”을 선언하면서!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에 대한 두 전문가의 평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련다.
“시종일관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엄청난 이야기의 톤을 자랑한다. 기묘하면서도 기이한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 이는 마치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굉장히 훌륭한 영화다.”(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그들에게 <바그다드 카페>와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중독 노래방>이 있다. 웃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위안의 손길과 공감의 눈빛을 전해주는 이야기. <중독 노래방>에는 중독 너머에도 존재하는 살아갈만한 힘이 있다”(강유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