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의 웰빙100세] 최고 양극화시대에 웰빙을 외치는 나라
‘웰빙지수’. 우리말로 ‘참살이’라고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하는 웰빙(Well-being)의 사전적 의미는 ‘복지ㆍ안녕ㆍ행복’이다. 이에 ‘웰빙’은 물질적인 풍요에 치우치는 첨단화된 산업사회에서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고 조화로운 결합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나 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웰빙은 다양한 개념을 포괄하여 자의적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물질적 가치나 명예보다는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는 삶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다.
웰빙의 유래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20세기 대표적인 청년문화의 하나로 형성된 히피문화에서 연관성을 찾기도 한다. 흔히 히피족을 생활이 문란하고 불결한 하위문화 생활자들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반전운동을 통해 평화를 갈구한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문화혁명은 히피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대들이 주도했다. 히피족은 1970년대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인 여피(YuppieㆍYoung Urban Professional)족으로 변신했고, 1980년대에는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가 직장생활을 하는 딩크(DINKㆍDual Income, No Kids)족이 되었으며, 1990년대에는 부르주아의 물질적 풍요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상류 계급인 보보스(Bobos), 그리고 2000년대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웰빙(Well-being)족으로 변모했다.
1980년대 유럽에서 패스트푸드에 반대하여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 고액 연봉과 편리한 도시생활을 마다하고 한적한 시골로 낙향하여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다운시프트(downshifts)족도 웰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또한 환경친화적ㆍ생태학적ㆍ에너지 효율적 제품을 선호하는 로하스(LOHASㆍLifestyle of Health & Sustainability)족을 언급하기도 한다. ‘로하스’는 2000년 미국 내추럴마케팅 연구소가 발표한 ‘건강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개념으로 친환경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하는 중산층의 움직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부터 이른바 ‘웰빙 열풍’이 불기 시작하여 ‘웰빙족’이 생겼다. 이들은 식생활에서 육류 대신 생선을 선호하고 유기농산물을 선택하여 소비한다. 또한 단전호흡, 요가 등 명상요법과 여행, 등산, 독서 등의 취미생활을 통하여 심신의 건강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 웰빙이란 단어는 익숙하게 깊이 파고 들어와 있으므로 웰빙음식, 웰빙가전, 웰빙패션, 웰빙주택 등 ‘웰빙’이라는 단어를 넣어야만 수요가 느는 시대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보건컨설팅업체 헬스웨이스(Healthways)와 공동으로 지난해 135개국에서 15세 이상 남녀 13만3천명을 대상으로 전화와 면접조사 방식으로 집계한 ‘세계웰빙지수 순위’를 9월16일 발표했다. ‘웰빙지수’는 삶의 목표, 사회관계, 경제 상황, 건강, 공동체의 안전ㆍ자부심 등 5개 항목 중 3개 이상에서 삶의 질 만족도가 강하고 지속적인 상태를 뜻하는 ‘번영중(thriving)’이라고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로 평가했다. ‘세계웰빙 지수’ 조사 결과 ‘톱10’을 중남미 6개국(파나마, 코스타리카, 브라질, 우루과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이 휩쓸었다. 이는 중남미의 낙천적인 문화 덕분에 상위권에 포진한 것으로 보인다. Top 10 순위와 만족도(%)를 살펴보면 파나마(61%), 코스타리카(44%), 덴마크(40%), 오스트리아(39%), 브라질(39%), 우루과이(37%), 엘살바도르(37%), 스웨덴(36%), 과테말라(34%), 캐나다(34%) 순이다. 우리나라는 75위(만족도 14%)였으며, 미국 12위, 독일 29위, 일본 64위, 중국 90위를 기록했다. 한편 135위 꼴찌는 시리아로 밝혀졌다. 1위 국가인 파나마(인구 약355만9천명)의 만족도(웰빙지수)는 61%로 나타났다. 즉 파나마 국민은 삶의 목표(66%), 사회관계(68%), 공동체 안전ㆍ자부심(58%), 건강(63%) 등 ‘경제상황’을 제외한 나머지 4개 항목에서 만족한다는 응답률이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한편 한국인은 5개 항목으로 시행된 여론 조사에서 3개 항목 이상에서 만족한다고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이에 한국인이 체감하는 만족도는 대만(18%ㆍ55위), 일본(15%)은 물론 말레이시아(24%ㆍ36위), 필리핀(24%ㆍ40위), 태국(22%ㆍ44위), 인도(15%ㆍ71위)보다도 낮았다. 보고서는 한국인의 84%는 삶의 목표 실현에서 ‘힘겹다’ 또는 ‘고통스럽다’라고 답했으며, 사회관계 또한 고전 중(47%)이라는 답변이 긍정적 답변(22%)의 두 배를 넘었다. 공동체 안전ㆍ자부심과 건강 항목에서도 고전 중이라는 응답이 각각 63%, 65%로 나타났다. 특히 45세 이상 중년 한국인 응답자 중 절반은 어느 항목에도 ‘만족한다’는 답을 하지 않았으며, 경제 상황 만족도(28%)도 45세 이하(43%)보다 크게 낮았다. 조사기관인 갤럽은 한국이 OECD 가입국 중 인구 고령화가 가장 일찍 진행되어 노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늘었으며, 정부의 노년층 부양책의 효과에 대해 젊은 층과 중ㆍ장년층의 견해가 서로 달랐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산업화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민주화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탈피한 국가이지만, OECD 회원국가 중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고 자살률은 가장 높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 정치에 대한 불신도 크며, 지역 및 이념 갈등에 더해 계층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즉, 성장 일변도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욕구들이 분출되고 있으므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복지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우리나라 경제기획원 조사에서 국민 60%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답했으며, 이듬해 1989년에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비율이 75%로 높아졌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ㆍgross national income)은 약 5천달러 수준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95년에 1만달러를 넘었고, 지금은 2만6천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중산층이라고 생각한 국민은 1996년에 42%로 줄었고, 2013년에는 20.2%로 급감했다. 이유는 객관적 지표에서 중산층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자신을 서민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2013년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평균 자산 10억원, 연봉 7천만원 이상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구 평균 자산은 2억6203만원, 자산 10억원 이상 가구는 4.2%에 불과하다. 연봉 7천만원 이상은 6.5%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나라 상위 4~6%에 해당하는 이들만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이에 우리 국민 대부분이 비현실적으로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갖고 자학하는 셈이다. 이를 ‘풍요의 역설’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현대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할지라도 사람들은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자주 회의를 느끼게 되어 물질 만능주의는 오히려 정신의 공허함을 가져다준다.
현대인들은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게 되면서 ‘부유한 것’과 ‘행복한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성공과 참되고 행복한 삶의 원천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3년 세계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27위에 머물렀다. 한국인의 행복감은 자신이 어느 계층에 속한다고 느끼는지가 객관적 위치보다 더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같은 소득이라도 하위 계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더 불행하다고 느낀다.
우리나라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적어지고 있는 만큼 한국인의 행복 총량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미국 브래들리대학에서 2005년 전 세계 53개국 1만7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개인의 자부심’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44위에 그쳤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감정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모멸감을 해소시켜야 인간의 존엄이 가능해진다. 이에 계층 균열과 양극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이 모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