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의 웰빙100세] ‘술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연말, 연시를 맞아 술 마시는 각종 행사가 잦다. 12월이 되면 직장에선 망년회가 이어진다. 한 해를 보내면서 어려웠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새해 각오를 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잊기 위해 과도한 음주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 요즘 각종 모임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배사는 ‘새양말’이다. 즉 2014년 청마띠 해가 가고, 2015년 청양(靑羊)띠 해가 온다는 뜻으로 “‘새’해가 밝아 ‘양’이 오고, ‘말’은 간다”를 외친다.
우리 사회는 술자리가 많아 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형국이다. 수많은 인간관계 형성과 친목도모가 술자리에서 이뤄지고 있어 술자리를 기피하는 것은 그만큼 인맥 형성에 보이지 않는 제약이 가해진다. 따라서 술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술자리는 눈치껏 참석하며,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 제목처럼 자의반 타의반으로 술을 마신다.
드라마 <미생>은 대한민국 샐러리맨들에게 “우리는 미생(未生)이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는 것과 같이 우리도 직장에서 의미 있는 존재다.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도 버티고 모레도 견디고 계속 살아남아 완생(完生)하길 바란다”고 위로한다. 직장생활을 하려면 술은 마실 줄 알아야 하고, 술을 잘 먹는 게 자랑할 만한 일이 되는 게 우리나라 음주문화다.
최근 세 명의 여성 술꾼들이 펼치는 이야기를 다룬 웹툰이 다음을 통해 연재되고 있다. 미깡 작가의 ‘술꾼 도시 처녀들(술도녀)’에는 35세 동갑내기 세 여성 주당(酒黨)이 등장한다. 세 명의 술꾼(출판기획자 정뚱, 프리랜서 작가 꾸미, 웹디자이너 리우)이 펼치는 음주공감 만화다. 이들은 매일 새롭고 맛있는 술과 안주를 즐긴다.
‘술도녀’의 주인공들은 술을 좋아해서 마시며, 술 자체가 맛있고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 중에는 “우리 점점 나이 먹고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렇게 만나 마실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별 게 다 궁금하네. 술잔 들 힘만 있어도 마실 걸”이라고 답하는 장면도 있다. 웹툰 마지막에는 ‘술도녀가 추천하는 오늘의 안주’ 사진이 실리고 있다.
‘술 권하는 사회’는 현진건이 1921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대구 출생으로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12년 일본의 세이조중학(成城中學)에 입학하여 1917년 졸업하였다. 그리고 1918년 중국 상해 호강대학에서 수학하였다.
현진건은 1915년 이상화, 백기만, 이상백 등과 함께 동인지 거화(巨火)를 발간했다.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것을 계기로 동명, 시대일보를 거쳐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1년간 투옥될 때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조선의 작가, 소설가 겸 언론인,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으며, 일제 지배하의 민족의 수난 운명에 대한 객관적인 현실 묘사를 지향한 리얼리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단편소설 20편과 중편 장편소설 7편을 남겼다. 창작과정으로 보아 체험소설, 현실고발소설, 역사소설 등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1920년대 초 체험소설이 중심이 되었던 시기로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등 1인칭 소설로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은 작품들이다. 둘째 단계는 <할머니의 죽음>, <운수좋은 날>, <사립정신병원장>, <고향> 등으로 대체로 3인칭소설로 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당시의 현실을 아이러니 수법에 의하여 고발하고 있다. 셋째 단계는 <적도>, <무영탑> 등 역사장편소설로 민족혼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부부는 결혼 8년 가까이 되지만 남편이 일본 유학을 떠났기에 함께 생활한 날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학수고대하던 남편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남편은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돈을 벌어오기는커녕 집안의 돈을 갖다 쓰며 한량과 다를 바 없이 술만 마셔댔다.? 아내는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남편 역시 무기력한 채 고민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는 “누가 이렇게 당신에게 술을 권하느냐”고 물었다. 아내의 물음에 남편은 “바로 이 사회라는 것이 술을 마시게 한다”고 대답하고서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답답한 마음에 자신을 막고 있는 아내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남편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조선의 최고 지성인으로 많은 꿈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이 소설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지만,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혀 그저 술로 도피할 수밖에 없던 일제 식민지에서 사는 지식인의 아픔과 고뇌, 좌절을 보여준다. 식민지시대를 살던 당시 지식인들에게 술은 낙이자 도피처였다.
이 소설이 쓰인 1920년대 젊은 지식인이나 지금의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OECD 국가 중 최고지만 대학 졸업만으로 좋은 직장에 취업이 가능했던 시절은 이미 옛 이야기다. 요즘은 대학 졸업장에 여러 가지 경력을 덧붙이는 ‘스펙’이 보편화되어 최근에는 ‘취업 9종 세트’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 사회봉사, 심지어 성형수술까지 9가지로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취업을 위한 스펙이 늘면서 대학 3, 4학년 재학생 2명 중 1명은 스펙을 쌓거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휴학을 한다. 그래도 변변한 직장에 취업하기가 어렵다. 이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우리 사회는 해결해 주어야 한다. 이에 고민이 많은 우리나라 대학생의 90% 이상이 한 달에 한번 이상 술을 마시는 ‘월간 음주자’이다.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대낮부터 카페에 앉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인 압생트(Absinthe)를 마시는 남녀를 그린 작품(캔버스에 유채, 92x68cm)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을 1876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표했다. 미술 평론가들은 드가의 작품을 불온하기 짝이 없다고 일제히 비난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켜야 했던 그는 다급히 그림을 런던의 뒤랑-뤼엘 갤러리에 보냈다. 작품은 양복점을 운영하는 헨리 힐에게 팔렸다. 힐에게는 ‘압생트’ 그림의 남녀는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도시 노동자들의 초상으로 비쳤다. 현재 이 그림은 파리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건강측정평가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건강한 삶을 갉아먹는 최대 주범은 ‘술’이다. 음주로 인하여 약 11.1개월, 흡연 때문에 약 9.4개월의 건강수명이 단축된다. 음주는 고혈압(7.1개월 단축), 당뇨병(6.5개월), 비만(5.5개월), 운동부족(5.3개월) 등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과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하루 1-2잔 정도의 적절한 음주는 심혈관 계통에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과음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뿐 아니라 심장병,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간경화, 치매, 암 등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며, 또한 알코올 남용이나 알코올 의존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술이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 중 첫째가 간 손상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에서 지방 합성이 촉진되고 정상적인 에너지 대사가 이뤄지지 않아 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긴다. 초기 단계의 단순 지방간은 술을 끊고 충분한 휴식과 영양을 섭취하면 정상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술을 계속 마시면 20-30% 정도는 알코올성 간염을 유발하며, 또 계속 술을 마시면 10% 정도에서 간경변증으로 진행된다.
간세포가 알코올에 의한 손상에서 회복되기 전에 술이 들어와 간세포를 공격하면 장기적인 손상이 발생하므로 음주는 간혹 폭음하는 것보다 자주 마시는 것이 더 나쁘다. 따라서 술을 적정량 이상 마셨으면, 손상된 간세포가 회복될 수 있도록 2-3일 정도 금주하면서 간휴일(肝休日)을 지켜야 한다.
숙취는 알코올 분해과정에서 몸속에 쌓이는 독성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주원인이며,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두통, 오심, 구토, 과호흡, 빈맥, 저혈압 등을 일으킨다. 숙취해소를 위해 물을 많이 마시고, 휴식과 수면을 충분히 취하는 것이 좋다. 또한 콩나물국, 북어국, 조갯국, 꿀물, 감차, 녹차 등도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
미국 보건당국이 제시하는 적정음주는 하루 2잔 반, 일주일에 4회 이하이며, 이보다 더 마시면 음주로 인한 질병 발생의 우려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적정음주의 기준을 사회적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남자는 하루 2-4잔(1주일 7-14잔), 여자는 1-2잔(1주일 4-8잔) 정도가 적정음주량이라고 볼 수 있다. 술 종류에 어울리는 술잔의 용량은 맥주는 250cc, 소주 50cc, 양주 25cc 등이며 1잔의 알코올 양은 10g 정도로 동일하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가 소비한 알코올은 1인당 1년에 9.16리터로 나타났다. 최근 <조선비즈>가 우리나라 베스트 CEO 30명의 개인 신상정보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평균 나이는 58.7세이며, 주량은 소주 0.8병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는 2010년 5월 제65차 총회에서 전 세계적인 문제인 음주 폐해 감소와 예방을 위한 세계전략을 채택하였다. 음주문제는 다양한 요인이 관련돼 있으므로 알코올 생산, 소비, 관리, 치료 등 여러 분야의 연대 활동을 통한 사회문화적 절주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한보건협회가 음주폐해에 대한 국민 인식을 제고하고 절주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21개 단체와 협약을 맺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알코올 관련 정부, 학계, 시민단체, 공급자 단체, 치료단체 등으로 구성된 ‘파랑새 포럼’을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알코올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강한 음주규칙에는 술을 마실 때는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지 말고 6할 정도만 채워서 마시며,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마시도록 한다. 폭탄주는 피하고, 해장술은 절대 금한다. 물을 자주 마시며, 안주는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도록 한다. 술과 담배는 함께하지 않는다.
과음(過飮)예방 ‘119’ 캠페인은 l가지 술로 1차만 마시고 9시 전에 회식을 끝내고 귀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100세 건강시대를 맞이하여 절주를 생활화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