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의 웰빙100세] 자살, 프레디 모임, 그리고 ‘러브 클래스’
창조주는 인간에게 삶은 허락하셨지만 죽음을 피할 능력은 주지 않았으므로 이 세상에서 생명을 받은 사람은 죽음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가 사람의 일생이며 또한 ‘공수래 공수거’다.
미국의 여류시인 카를 베이커(1878-1960)는 시 ‘Let Me Grow Lovely’ 첫 구절에서 “Let me grow lovely, growing old–” 즉 “아름답게 늙게 해주오”라고 읊었다.
대자연의 법칙은 따뜻한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그리고 찬 바람이 불고 눈이 오는 겨울이 오듯 모든 생명은 태어나 성장하며, 그리고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이에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 따라서 ‘죽음 준비교육(Death Education)’은 동시에 보다 잘 살기 위한 ‘삶의 준비교육(Life Education)’이기도 하다.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인간은 죽음의 존재이며, 이 세상에서 생을 받은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계속 걸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죽음을 미리 체험할 수가 없으므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하고 자각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이데거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으며, 마르부르크대학과 프라이브르크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2500년 전에 플라톤이 물었던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그의 대표작은 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이며, 후설의 현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딜타이의 해석학 등의 영향 하에 실존론적 철학을 수립하였다.
28세 젊은 나이에 타계한 윤동주(1917-1945)는 1934년 12월 처녀 시 ‘삶과 죽음’에서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아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 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이라고 읊었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살다간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 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고민한 철인(哲人)이었다. 그는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어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1945년 2월 16일 사망하였다. 윤동주 시비가 1968년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으며,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1990년 8월15일 추서되었다.
1948년 1월 간행된 윤동주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어 있는 ‘서시’는 시인의 생애와 시의 전모를 잘 암시해 주는 작품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바람에 스치운다” 이 작품에서 ‘죽은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대목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 시는 공간적 측면에서 천상과 지상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갈등 관계에서 보면 지상의 현실 세계에서 괴로워하는 현실적 자아와 천상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를 소망하는 본질적 자아가 분리,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계적 석학 레오 버스카글리아(1924-1998)가 지은 ‘나뭇잎 프레디’는 삶과 죽음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며, 생을 마감하는 모든 것에게 보내는 따뜻한 송사다. 이 책은 어떻게 삶의 행복을 찾고 사랑하는 관계를 창조해 나가는지에 관한 통찰력 넘치는 작품으로 1982년 출판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프레디’(Freddie)라는 이름의 나뭇잎이다. 늦은 봄에 큰 나뭇가지에서 태어난 단풍잎 프레디는 먼저 태어나서 싱싱하게 자라서 큰 잎이 된 다니엘의 친구가 된다. 다니엘은 프레디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준다. 즉, 나무의 뿌리가 땅속에 있어 보이지 않지만 사방으로 뻗어 있어 나무가 넘어지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는 것, 달과 태양과 별이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돌고 있다는 것과 그래서 계절이 바뀐다는 것 등을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프레디는 봄의 산들바람 속에서 춤 추기도 하고, 여름 햇볕을 쬐며 나른하게 졸기도 하였다. 여름 지나고 가을도 늦어지면서 찬바람 불기 시작하고 서리가 내리더니 잎새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었다. 잎새들이 하나 둘씩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프레디는 무서워했다.
다니엘이 프레디에게 세상만사는 다 변화한다는 것, 죽음도 그 변화의 하나라는 것 등을 말해준다. 다니엘은 죽음이 무섭다고 말하는 프레디에게 봄에서 여름으로 변할 때, 여름에서 가을로 변할 때, 무서웠느냐고, 그리고 죽음도 그러한 변화의 하나라는 것을 설명한다. 프레디는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서 빗물과 합하여 다른 나뭇잎을 키우는 에너지가 됨으로써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을 배운다. 즉 삶과 죽음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베우게 된다.
<나뭇잎 프레디>의 원서 제목은 <Fall of Freddie the Leaf: A Story of Life for All Ages>다. 이 책을 읽은 세계 여러 나라 독자들이 ‘프레디 모임’, ‘프레디에서 배운 것들’ 등 수많은 모임을 결성하였으며, 일본에서는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권하고 싶은 최고의 도서로 선정되었다.
저자 버스카글리아는 미국 LA 이민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후 공립학교 교사를 거쳐 모교에서 교육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자가 자살하는 사건을 계기로 19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접고 ‘러브 클래스’라는 사회교육 세미나를 열어, 미국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와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를 계기로 ‘닥터 러브’라는 애칭을 얻으며 자기 달성과 진정한 사랑에 관해 전도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졌다. 저서로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사랑의 교실> <사랑의 철학> <나를 찾기 위하여> 등이 있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무서워한다. 죽음이 무섭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죽음 공포에는 대개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즉, 육체적ㆍ정신적ㆍ사회적 고통에 대한 공포, 죽음에는 동반자가 없기 때문에 혼자 죽음의 길을 걷는다는 고독에 대한 공포, 미지의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 자기 인생이 불완전한 상태로 끝나는 데 대한 우려, 그리고 부담감이다. 자신의 존재가 가족이나 사회에 부담이 된다고 너무 걱정하면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사를 제외하고는 어떻게 죽느냐 하는 선택은 할 수 있다. 이에 동물적 죽음이 아니라 존엄사로 표현되는 인간적 존엄에 찬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
죽음 준비 교육에서 건전한 유머 감각을 가질 것, 영원한 생명에의 희망을 가질 것, 유언장이나 자기의 비문을 미리 써놓을 것 등을 강조한다. 또한 자신의 장례, 묘지, 장기 또는 시신 기증 등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궁극적인 열쇠가 된다.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이 현세 삶의 끝일지언정 그것이 만사를 무(無)로 돌리는 종말이라고 보지 않는다. 인간은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나므로 인생 여정에 사랑을 꼭 가져가야 한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망자와 직간접으로 사랑의 관계를 가졌기에 슬픈 것이다. 이에 죽음은 사랑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생각하고, 선택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신의 죽음을 죽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색하여 죽음의 공포심을 불식하고,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모색하여야 한다.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화해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