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신뢰퍼즐] 정주영이 ‘소’ 몰고가듯 삼성이 ‘컴퓨터’ 보낸다면?
아시아기자협회 포럼 “신뢰는 ‘이념’ 아닌 ‘관계’로 풀어야”
평화와 신뢰는 어떤 관계일까? 아시아 평화와 대북정책, 그리고 언론의 역할을 논의하는 언론재단포럼이 지난 11월20일 서울 종로구 중소기업 옴부즈만회의실에서 열렸다. 아시아기자협회(AJA)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이번 포럼에서는 <아시아엔(The AsiaN)>과 <매거진 N> 필진을 중심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평화와 아시아 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현정부의 통일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평가와 함께 ‘신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문학과 영화 등 문화예술 속에서 설명해보는 흥미로운 발표도 진행됐다. 또 아시아 각국에 있는 아시아기자협회 회원들이 남북평화와 동아시아, 세계평화에 대한 의미 있는 의견들을 제시했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각국의 셈법이 오가는 격랑속에서 과연 언론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포럼 축사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아시아 각국이 진정한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 나가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지지와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아시아 언론인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토론 내용을 참석자별로 정리했다.
강성유전자 ‘중일’에 대처하는 ‘발상의 전환’ 필요
이중(연변과학기술대학교 명예총장):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DNA는 다분히 가학성, 침략성, 우월성, 강대국 의식에 충만해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강성유전자를 가진 중국과 일본이 한국과 합심해 유럽공동체에 버금가는 동북아평화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논리적으로는 지금이 최적 시기일 수 있지만 감성적으로는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한국을 ‘오랜 종’으로 보아온 그들의 역사의식 유전자에 변화의 조짐이 보여야만 한다. 한반도 자체 위상이 두 나라의 오랜 DNA 변화에 강한 영향을 줄 지 의문이다.
이런 현실 극복방안으로 국민의 강한 ‘통일의지’와 정부의 능동적인 ‘통일외교’가 필요하다. 중화문화권이라는 문화코드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서구문명 편식을 극복해야 두 세력권에 대한 우의를 보장할 수 있다. 중일 양국의 세계경영 노하우 못지 않은 통일경영 프로그램이 가동돼야 동북아시아 협력체제 구축에 대한 우리의 역할이 가시화될 것이다.
보수 정부가 앞서 나가는 ‘균형’
김용길(동아일보 편집국 차장):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균형은 자동차의 네 바퀴처럼 강경과 유화, 압박과 협상, 안보와 교류협력, 남북협력과 국제공조 등을 긴밀히 조율해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즉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면 지지와 협력을 보내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이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의 일부분이다.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국의 정책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영국 <텔리그래프>는 “박근혜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 사이에서 ‘신뢰정책’이라는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알파고 시나씨(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 남북관계 대결과 협력구도는 통일이 될 때까지 되풀이 될 것이다. 사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이더라도 그간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 보수 진영인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악수한다면 한국에서 이를 말릴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이 정권에서 남북대화가 이뤄진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경제위기도 국제사회로서는 투자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중동 사태는 북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러시아나 중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지지하는 데는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국은 지역단위 행위자 수준을 넘어 국제무대 역할자로서 북한과의 대화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신뢰도 불신도 순환” 문학과 영화 속 ‘신뢰’
박현찬(작가, 스토리로직 대표):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대표적인 고전으로 ‘죄수의 딜레마’가 있다. 상대방을 신뢰하면 나에게도 유리하지만 상대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나 역시 상대를 신뢰할 수 없다. 불신의 악순환이다. ‘공유지의 비극’도 있다. 주인 없는 어장을 놓고 너도나도 욕심을 부리면 결국 모두의 이익을 파괴하는 순간이 온다. 신뢰는 생존과 직결된다. ‘형제투금(兄弟投金)’이라는 설화는 사양함으로써 얻는다는 논어의 ‘양이득지(讓以得之)’를 얘기한다. 신뢰 받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상대에게 신뢰 받을 수 있는 능력, 즉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능력부터 갖추도록 노력하라. 신뢰의 선순환은 지금 나로부터, 우리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전찬일(영화평론가): 2013년 선보인 한국의 ‘분단영화’들은 신뢰 문제와 관련한 시사점을 던진다. <베를린>(류승완), <은밀하고 위대하게>(장철수), <동창생>(박홍수) 등에 등장하는 북한 캐릭터들은 늘 믿었던 조국과 주변인에게 ‘배신’ 당한다. 대안이나 가능성으로서 신뢰를 다룬 영화들도 있다. <JSA공동경비구역>(박찬욱), <의형제>(장훈)를 보면 ‘남과 북, 누가 우월한가’가 아니라 ‘관계’와 ‘신뢰’의 문제를 다룬다. 대결구도가 아니라 캐릭터의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념이 못하는 부분이다. 즉 공적 신뢰에서 사적 신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가 시대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도구이자 태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경제로 관계개선, 통합으로 경제성장
쿠반 타발디예프(Kuban Taabaldiev, 키르기스스탄, 국영통신사 KABAR 디렉터): 중앙아시아 개발도상국 중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카자흐스탄은 북한 핵문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카자흐스탄은 독창적인 정책과 자원 덕분에 빠르게 경제를 발전시켰고 지난 30년 간 가장 발전한 30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평화와 안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한반도 역시 평화가 발전을 가속시킬 것이다. 국제사회는 지속적으로 북한 상황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북한 리더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협상만이 관계를 성숙하게 만들 것이고, 한반도 통일은 커다란 경제적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아이반 림(Ivan Lim, 싱가포르,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한반도 문제를 가족으로 비유해보면 남북은 불행한 상황으로 분리된 쌍둥이다.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둘 다 가족의 전통을 이끌어나가겠다고 주장한다. 미얀마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래가 불확실한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교류·협력이다. 정주영 회장이 소 500마리를 평양으로 몰고 간 것처럼 IT 시대에 삼성이 컴퓨터 5000대를 북한에 전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의 문화를 교류할 수 있다면 적응시간은 오래 필요하지 않다.
증오와 불신 뺀 ‘남북 언론규범’ 만들자
나지르 아이자즈(Nasir Aijaz, 파키스탄, PPI 편집국장): 파키스탄과 인도는 1947년 건국 이후 평화와 신뢰구축을 놓고 대립해 왔다. 증오와 불신이 가득했던 두 나라 언론은 1950년 뉴델리에서 만나 화해했지만 잘못된 관습을 되풀이했다. 1991년 이번에는 콜롬보에서 남아시아언론연합(SAMA)이 창립됐다.
두 나라 관계는 개선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양국 문화교류는 더욱 활발해졌다. 남북도 언론포럼을 통해 연결고리를 만들고 증오와 불신의 단어들을 억제하는 행동규범을 만든다면 좋겠다. 언론 교류가 끊긴 상황에서 남북 국민들은 서로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언론은 부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신뢰를 구축하고 공존을 환기시키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시라프 달리(Ashraf Dali, 이집트, <알 아라비> 매거진 편집장): 지난 2세기 이슬람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이 아닌 잘못된 무슬림이었다. 살인자를 성전의 전사로 여긴 그들의 무기는 미디어를 통해 테러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타르 <알자지라 TV>는 오사마 빈 라덴 인터뷰를 비롯한 많은 테러리스트들의 메시지를 전 세계로 전한 바 있다.
한반도 문제를 보는 데 유럽의 사례를 새겨야 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유럽은 이제 유럽연합을 설립해 전쟁의 망령을 떨쳐버렸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사람이 되라고 충고하기 보다 스스로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 북한의 의도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먼저 이쪽에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를 비추는 언론의 역할이 크다. 분단의 장벽을 없애는 것은 언론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내부의 적’을 없애는 것이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