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신뢰퍼즐] ‘신뢰’ 한 단어 놓고 해석 다른 남과 북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북한반응은?
최근 남북관계는 여전히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북한 입장을 북한 매체를 통해 살펴보면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공산당 기관지 2013년 11월4일자 기사를 보면 “남조선 당국이 ‘대북정책’으로 들고 나온 ‘신뢰프로세스’는 동족에 대한 적대적 관점과 체제대결 기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며 ‘신뢰프로세스’는 기본방점이 ‘북의 선 변화’이며 종착점은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의한 통일’이라고 비방하고 있다. 또한 이는 북에 대한 ‘압박’과 ‘유인’의 ‘두 길 전략’이며 북한체제를 피할 수 없는 기로에 몰아가려는 술책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즉 북한 매체가 보기에 남한의 ‘신뢰 과정’은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의 간판을 내걸고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해 체제통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다음날인 11월5일자 <로동신문>에는 ‘외세의존의 더러운 악습을 버려야 한다’는 제목으로 남북관계가 파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원인이 ‘신뢰프로세스’라는 대결정책을 들고 나와 외세와 공조를 강화하면서 군사적 도발에 매달리는 남한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남북이 같은 단어를 놓고 해석이 다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11월5일자 기사에 “동족은 적대시하면서 외세와의 ‘동맹’ 강화에 발광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외세의존정책의 집중적 발로이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최근 한국 정부가 이뤄놓은 주변국들과의 외교적 성과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집안문제를 집안끼리 해결 않고…”
북한 언론이 이토록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비난을 쏟아 붓는 의도는 무엇일가?
무엇보다 그 동안 중국을 비롯한 한국의 외교적 성과로 국제적 환경이 외부적으로 북한체제에 압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 상황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영토’ 문제로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시기 북한은 대외적으로 인접국 상호간 ‘불협화음’을 역으로 활용하는 변수를 많이 써왔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외교적 협력은 북한에게 큰 외부적 압박감이 됐을 것이다. 즉 ‘신뢰프로세스’의 우회적 변수를 북한 언론은 ‘외세의존’이라고 비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 언론은 한국 언론의 기사들을 인용하면서 객관적 분석을 정당화하는가 하면 한국정부를 비난하기 위해 주민들의 선전교양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북한 매체의 비평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외세의존설이다. “집안문제를 집안끼리 해결하지 않고” 외인들에게 의존하려 한다는 것을 아래와 같이 보여주고 있다.
“대국들의 짬에 끼워 숨 가삐 돌아가는 괴뢰당국자들이 얼마나 보기 민망스러웠으면 남조선 언론들이 ‘줄타기 외교로 진땀을 빼고 있다’고 평하였겠는가. 남조선언론들이 괴뢰당국의 그 무슨 ‘외교정책’이라는데 대해 집권초기에 벌써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되지 않겠는지 의심스럽다고 야유, 조소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로동신문> 11월 5일자)
결국 외세에 의존하다가는 ‘신뢰’를 구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은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밝은 데선 어두운 곳 잘 안 보여”
한편 북한 언론은 한국의 자유언론과는 달리 철저히 노동당 통제 하에 기사의 철자 하나까지도 관제돼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즉 북한 언론을 통해 나오는 기사는 북한당국의 승인 없이는 나올 수 없다. 이에 비해 자유민주주의국가인 한국 언론의 역할과 효과는 무한대의 힘과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한국 언론의 역할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남과 북을 음양으로 비교한다면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이 잘 보여도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을 제대로 볼 수 없다”라는 표현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 국가과학원에 있을 때 외신들이 북핵에 대해 기사 쓰는 것을 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쓴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성냥개비로 북한을 본다면 북한이 피해갈 틈이 생긴다. 즉 어두운 북한을 어떤 조명으로 비춰보는가에 따라 견해와 인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언론도 색깔론이 존재한다. 2008년 북한에서 한국으로 온 뒤 들은 얘기가 “한국에는 오른쪽과 왼쪽이 있는데, 탈북자 편을 들어주는 것은 오른쪽이다”라는 말이었다. 또 종편 방송에 출연했을 때도 “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 하는 사전 코멘트가 있었다. 남북 간 신뢰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 언론의 역할은 작지 않다고 본다. 한국 언론의 올바른 대북관, 다시 말해 북한 언론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은 한반도 ‘신뢰’를 조성하기 위한 중요 척도가 될 것이다.
예컨대 북한 <로동신문> 사설이나 논설에 대한 분석판단은 북한 정권의 정책적 의도와 방향을 엿볼 수 있다. 북한의 언론은 당의 꼭두각시라거나 언론을 이용한다는 변수들이 있긴 하지만 <로동신문>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북한을 무시하는 관점으로는 북한이 보이지 않는다.
북에서는 언론매체를 ‘총성 없는 위력한 무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모두 안 된다. 북한 언론이 던지는 기사에 대한 한국 언론의 반응은 때에 따라 남북관계에서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어두운 북한의 내재적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한 언론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은 한국 언론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