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신뢰퍼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그 초라한 성적표

북한이 거절할 수 없는 ‘파격’ 제안하라

대한민국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5년 동안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해 왔다.

이승만 정부의 통일정책은 ‘북진통일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4·19혁명 이후 장면 정부는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구호에서 드러나듯 감상적 통일지상주의에 급급했다. 박정희 정권은 60년대 군인정권답게 ‘승공통일론’을 견지했지만 장기집권을 위한 친위쿠데타를 앞두고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과 1972년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10월 유신 이후인 1973년에는 6·23 평화통일선언을 계기로 남북대화 및 평화공존노선으로 선회했다.

전두환 정권은 1982년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통일보다는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태우 정부는 최초의 본격적 통일방안이라 할 수 있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4년에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이란 이름은 버렸지만 ‘포용정책’을 승계해 화해·협력교류를 계속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이른바 ‘비핵·개방·3000구상’이란 방안을 내놓았지만 북한으로부터 ‘적대정책’이란 비난을 받았고 야당도 ‘대북 강경정책’이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대북관계는 채찍과 당근을 모두 구사해야 한다고 전제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현실성 없는 협력제안을 내놓고 대화를 시종 외면했으면서 막상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직접적 군사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취약점을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원론적 대북정책이지, 진정한 의미의 통일방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통일부에 따르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남북간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며 △남북간 신뢰에 기초하여 교류·협력을 진행하고 △국민적 공감대와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정책 실효성을 높인다는 내용이다.

북 핵포기 전제하는 한 진전 어려워

이명박 정부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지원하겠다고 공허한 약속을 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단계로 들어설 경우 순차적으로 북한을 적극 돕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 포기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핵 해결 의지가 확인되고 양자 또는 다자간 합의가 이뤄지면 신뢰프로세스가 곧 가동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명박 정부의 강경자세를 다소 누그러뜨리고 유연성을 발휘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개성공단 재개협상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논의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원칙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국민들이 평가하고 지지도가 상승하자 대북정책은 경성 원칙론의 한길을 걸어왔다. 어떤 남북관계 진전도 북한의 기존 합의 준수 없이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할 뿐 아니라 근래에는 북한의 태도 변화 없는 6자회담 재개에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미국과 중국 등에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강경노선으로 회귀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노태우 정부가 발표했던 7·7선언에서 한 발짝 후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남북한 문호개방과 상호왕래, 교차승인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7·7선언은 북한의 상응한 조치를 기다리지 않고 선제조치를 취하며 남북관계 개선에서 자로 재듯 ‘저쪽 한걸음에 이쪽 한걸음’식으로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물론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불가침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선언까지 이뤄졌던 1990년대 초반과 2010년대 지금은 여건이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3차에 걸친 핵실험으로 북한 핵개발이 완성단계에 진입한 것이 최대 변수라 할 수 있다.

1990년 9월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이 한·소 수교방침을 통보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은 이에 반발하면서 핵무기를 독자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 핵문제는 동북아 현안이자 남북관계의 주요 변수가 돼왔다. 문제는 6자회담과 유엔 제재결의를 포함해 어떤 외부 압력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 협력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합의가 양쪽 당사자의 합의사항 미이행과 위반으로 인해 2003년 결국 폐기된 것은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할 경우 협상은커녕 일단 합의가 이뤄진 내용도 뒤집힐 수 있음을 보여줬다.

외교정책은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최대한 실익을 추구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명분외교를 넘어 감정외교를 펴는 듯한 인상을 준다. 4강 외교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지나친 명분론으로 일본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이 그 한 예다. 대북정책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듣기는 좋으나 모호한 ‘제목’을 내세워 원칙론과 명분주의만 고수해왔다. 지금은 한국이 대북정책과 통일구상에서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해 동북아 정세를 주도해야 할 때다. 예컨대 DMZ 평화공원 같은 발상은 현실적 이익이 별로 없는 선전용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도 ‘아시안 패러독스’를 증폭시키는 데 박근혜 정부가 비타협적 자세로 한몫 하는 한 구두선에 그칠 것이 뻔하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사이의 영토분쟁에도 중재자로 나설 수 있을 만큼 자신감과 객관적 위상, 공정성을 가져야 한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중국과의 친분만을 강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두루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도록 처신하고 행동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도저히 거절하기 힘든’ 새롭고 파격적인 일괄타결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잠정적으로 인정하고 일정 한도 내에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해주는 것도 포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대가로 우리가 무엇을 얻어낼 것이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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