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편집력시대](16) 스펙시대 가고 ‘新신언서판 시대’

[아시아엔=김용길 칼럼니스트] 현대자동차는 해마다 잡페어(취업박람회)를 개최하는데 모의 면접인 ‘5분 자기PR’ 프로그램을 마련해 박람회 현장에서 열정과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5분 동안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본인을 홍보하는 ‘자기PR’은 지원자의 창의성을 주목하는 과정이다. 면접관의 평가에 따라 우수자에게는 신입 공채 지원 때 서류전형이 면제된다. 현대차 담당자는 “한 분야에 광적이라고 할 정도로 몰두한 인재들을 찾는 것이 자기PR의 도입 배경”이라며 “자동차 산업에서 기대되는 다양성과 창의성, 그리고 참신함과 독특함이 평가 받는다”고 말했다. 여대 4학년생이 여자축구부 동아리 주장으로 활약해 팀을 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리더십을 앞세워 입사에 성공했고 학점은 낮았지만 카레이서 경력을 인정받은 대학졸업생도 이런 과정을 거쳐 치열한 관문을 뚫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13년부터 기존 입사 지원서를 폐지하는 대신 직무능력중시 지원서를 채택했다. 여기에 가족사항 지원동기·성장과정 등 직무연관성이 떨어지는 항목을 전면 삭제했다. 판에 박힌 자기소개서가 아닌 인턴 근무 경험 등 직무수행과 관련된 활동경력을 적도록 구성했다.

SK그룹은 끼와 열정, 도전 정신만을 입사의 조건으로 내건 ‘바이킹(Viking) 챌린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원자들의 학력을 포함한 외국어 점수 등의 스펙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SK는 자신의 분야에서 넘치는 끼와 열정을 가지고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바이킹형’ 인재로 명명하고 이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전국 6개 주요도시를 순회하면서 개인 오디션 형태로 예선을 치르고, 예선 통과자들을 상대로 합숙 과정을 통해 미션을 수행하게 한 뒤 합격자를 선발한다.

당신의 ‘마이 스토리 편집력’을 드러내라

국민은행은 신입 행원을 선발할 때부터 업무 수행 능력보다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하는 채용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를 위해 입사 지원서에 자격증 현황, 공모전 수상 경력, 동아리 활동, 인턴 경험, 해외연수·교환학생 경력 적는 난을 없앴다. 대신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 분야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통찰력·상상력·창의력 등을 향상시킨 경험을 쓰라’는 항목을 신설했다. 또 은행은 지원자가 읽은 인문 분야 도서 10권의 책 목록을 입사 지원서에 쓰도록 하고, 면접 때 지원자들끼리 책 내용을 갖고 토론한다.

효성그룹은 응시자들을 5명 정도 소그룹으로 나눠 집단토론을 실시한다. 이때 돌발성 질문을 던진다. ‘서울에서 하루에 팔리는 짜장면 수는 몇 그릇일까?’ ‘한강물의 총 무게는 얼마나 될까?’ 주어진 시간 안에 응시자들은 토론을 통해 답을 찾아가야 한다. 물론 짜장면이 몇 그릇이나 팔리는지, 한강물이 몇 톤이나 나가는 지 아는 사람은 없다. 효성은 정답 대신 답을 구하는 과정 즉 팀워크나 소통능력, 획기적 발상 등을 테스트한다. 우문(愚問)이지만 현답(賢答)을 내놓는 팀과 개인에게 우수한 점수를 준다.

우리금융그룹은 신입사원 채용 시 학력과 상관없이 블라인드 면접 방식으로 채용한다. 지원자의 출신 대학이나 전공 등 일체의 이력사항을 모르는 상태로 면접을 진행한다. KT는 대졸신입사원 선발 시 ‘달인 채용’을 밝혔다. 달인 채용은 마케팅, 소프트웨어 개발, 보안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거나 우수한 역량을 보유한 경우, 학벌이나 어학 점수에 관계없이 선발하는 방식이다.

성장과 확장이 급선무이던 개발연대 시대를 달려온 국내 대기업들의 채용 방식은 구태의연했었다. 대졸 신입사원을 뽑을 때 1차 서류전형에서 대학서열에 따라 절반 정도 추려내고 2차 필기시험에서는 점수서열에 따라 일정 소수로 추려내었다. 면접에서 너무 튀는 사람을 걸러 내고 최종 임원 면접에서 재차 확인하는 절차였다. 이런 채용방식이 산업화 50년 만에 바뀌면서 열정형 – 통섭형 인재가 떠오르고 있다.

이제 인재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과 악조건을 뚫고 성취해내는 사람이다. 즉 상황을 꿰뚫어 볼 줄 알고 자신의 현재 포지션을 파악해 약점과 강점을 엮어내 문제를 돌파해나가는 역량의 편집력이 각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판에 박힌 스펙과 자기소개를 집어치워라. 사회 첫발을 내딛는 면접 무대. 당신의 ‘마이 스토리 편집력’을 드러낼 때 필요한 3가지 전략을 소개한다.

1. 제 속에는 소설책 한 권이 숨겨져 있습니다.

기업은 학벌중심 고학력 고스펙을 갖춘 신입사원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다. 화려한 스펙 신입사원이 조직 적응력이 부족해 얼마 안 돼 퇴사하는 경우를 끔찍이 싫어한다. 해외 어학연수를 마쳐 영어도 잘하고 ‘어릴 때부터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했고 집안에서 수십 년째 현대브랜드 차만 탔다’는 빈약한 스토리로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뽑아주지 않는다. 스펙을 위한 봉사활동 수상경력은 무질서한 겉핥기로 보일뿐이다.

자신을 몰입하게 하는 ‘한 우물’을 집중 탐구하라. 작은 경험 큰 경험 감동적 경험을 이어 붙여 한편의 스토리로 집대성하라. 정답은 없다. 제대로 된 스펙 하나를 이루기까지 고난과 노력을 표현하라. 스펙은 이력 한 줄이지만 스토리는 비전과 미래 가능성을 드러내준다. 무결점 성공 스펙은 면접관에게 금방 잊혀 지지만 실패에도 불구하고 도전했던 스토리는 기억된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차별화된 발상을 실현시키려고 도모했던 것들을 ‘마이 스토리’로 편집해놓아야 한다.

단 마이 스토리를 꾸밀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드러내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세상은 모든 것이 한정되어 있다. 우선순위를 정하라. 기준에 따라 먼저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나중 결론으로 끝맺을 이야기가 있다. 매긴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또박또박 서술하는 능력. 이 스토리 편집력이야말로 당신을 빛나게 할 것이다.

2. 담대한 긍정의 시각을 드러내라

1991년, 일본의 최대 사과산지로 유명한 아오모리현(靑森縣)에 유난히도 계속된 강한 태풍으로 인해 수확시기도 아닌데 과수가 다 떨어지게 되었다.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된 농부들은 떨어진 사과들을 보며 모두 한숨만 토했다. 사과의 90%가 낙과가 되었으니 모두 절망에 빠지고 걱정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때 한 청년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사과 10%가 남아 있습니다. 이 사과를 동경의 수험생들에게 내다 팝시다. 어떤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라고 말입니다.” 그 해 ‘합격사과’라고 이름을 붙인 이 사과는 불티나게 팔리게 되었고 아오모리현은 다른 해 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90%의 부정적인 상황에도 10%의 긍정적 요소가 있다.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자학하는 마음이 불운을 불러온다. “왜 나는 운이 따르지 않을까”하는 불안함이 불운으로 이끄는 작은 사건을 초래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게 되고 운명 또한 피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즉 긍정하면 긍정의 운명이 따르고 매사를 부정하기만 하면 불운의 손아귀가 뻗어온다. 나는 많은 행운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이 시련은 오히려 내가 행운아라는 증거이다. 이렇게 낙관하는 자신감 앞에서 어떤 악연과 악전고투가 기승을 부릴까. 어쩌면 긍정의 힘보다 강한 운은 없다. 초등 입학 때 6년 후 졸업 걱정 안하는 것처럼 미래를 넌지시 믿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면 된다.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유난히 낮은 이유가 뭘까. 타인과의 비교의식도 과잉 작동되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현재를 희생하는 삶을 살도록 훈련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평판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 대학에 입학하면 번듯한 대기업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직장 잡고 결혼하면 집 마련과 자식교육을 위해, 중년이 되면 자녀결혼과 불안한 노후준비를 위해, 막상 노년엔 여유와 행복에 느긋해하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의 인생정리에 노심초사 전전긍긍해야하는 처지에 갇히게 된다. 행복을 미래에만 기대하고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오늘을 긍정하고 현재를 잡아채는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아라’는 뜻의 라틴어) 정신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필요가 있다.

3. 新신언서판 시대가 왔다

중국 당나라 태종이 기득권세력을 억누르고 신진 관료를 등용키 위해 과거제도를 첫 도입했는데 그때 급제기준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인간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인데 요즘 인성평가 채용시대에도 유효하다. 신(身)은 첫 인상이다. 부드러운 미소, 밝은 표정, 은은한 눈빛은 ‘얼굴로 보여주는 이력서’나 다름없다. 신분 좋은 고관자제에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풍모와 품격이 모자라면 결격사유가 된다.

언(言)은 표현력이다.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자신감 없이 중언부언하면 평가받기 어렵다. 제대로 된 발성과 또렷한 말씨는 리더십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서(書)란 그 사람의 지식과 지혜 수준을 가늠하는 것으로 문(文)이라고도 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인문적 교양을 품고 있는지를 글씨와 문장력으로 시험하였다. 판(判)은 상황판단 능력을 말한다. 경중완급 전후좌우를 잘 살펴 치우치지 않게 결론 내리는 편집력이다. 이는 현상에 적절한 제목을 붙이고 일목요연하게 기술하는 지로 판정하였다.

신언서판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단기 속성 학원에서 도움 받을 수도 없다. 당신은 아름다운 시를 두어 편 암송하고 있는가. 마이크를 잡고 현란한 랩송을 하는 것보다 낭랑한 목소리로 삶을 직관하는 애송시를 낭송해보라. 심사위원 앞에서 2시간짜리 감동 영화를 예화로 들면서 단 5문장으로 압축해 자신의 설득력을 배가시켜보라. 결코 쉽지 않다. 짧은 기간에 몇 십 권의 책을 읽었다고 지혜가 쑥쑥 자라지 않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두고두고 쌓아온 인격적 내공이 신언서판으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이다. 뜻을 세우고 자세를 갖추고 제대로 표현하라. 길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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