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침묵 속에 스며드는 참된 소통
타이틀 – 위대한 침묵
???????????(Into Great Silence / Die Große Stille)
감독 – 필리프 그로닝
? ? ? ? ?(2006년 유럽영화상 다큐멘터리상,?2006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제작국가 – 프랑스
개봉 – 2009년
1. 침묵은 삼라만상의 존재양식
돌아가신 법정 스님은 평소 침묵을 ‘영혼의 여과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님은 잠언집에서 ” 나는 말수가 적은 사람한테는 오히려 내가 내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고 싶어진다. 침묵은 자기 정화의 지름길이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불쑥 말해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다. 그렇게 때문에 그 내면은 비어 있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선승은 침묵은 모든 삼라만상의 기본적인 존재양식이라고 설파합니다. 온갖 사바세계 소음으로부터 영혼을 맑게 유지하려면 침묵의 의미를 제대로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해발 1300m 알프스 산맥 프랑스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영화 <위대한 침묵>은 참 귀한 영상자료입니다. 상영시간 2시간 50분 비상업적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필리프 그로닝 감독은 영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4년 수도원에 촬영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이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15년 뒤인 1999년 수도원으로부터 촬영 허락을 받아 2002년부터 1년 6개월간 수도원의 사계절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편집 후반작업에 시간이 걸려 2006년 독일에서 첫 개봉을 했습니다.
수도사의 침묵을 지켜보는 영화의 앵글은 단순하게 움직입니다. 인위적인 조명, 작위적인 효과음, 극적인 음악은 완전히 배제됩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묵언수행 일상을 바로 곁 어깨너머의 시선으로 채취합니다.
살기 좋아졌다는 현대에서 역설적으로 더 살아가기 힘겨운 현대인.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시대가 과연 올 수 있을까. 영화는 인간 존재양식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기에 종교 영화의 틀을 넘습니다.
관객은 침묵 수련을 행하는 수도사의 일거수일투족에 감정이입하면서 침묵의 소중함을 절감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침묵의 미덕을 망각하고 살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2. 길을 걸으며 신에게 다가간다.
얼굴만 드러낸 수도사복 로브를 입고 각자 주어진 노동을 합니다. 종을 치는 수사, 검박하게 음식을 요리하는 수사, 장작을 패는 수사, 시계태엽을 감는 수사, 옷 짓는 수사, 머리 깎아주는 수사, 청소하는 수사, 고양이 먹이 주는 수사, 미사 집전하는 수사. 독서, 묵상, 미사, 찬미의 공동체적 일상을 쉼 없이 반복합니다. 그 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신에게 다가갑니다.
그로닝 감독은 장면 전환 몇몇 순간에 성경구절들을 반복해서 내보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주님께서 나를 이끄셨기에 지금 내가 여기 있나이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책장 넘기는 소리, 밥 먹는 소리, 밭 가꾸는 소리, 기도하는 음성, 빗소리, 천둥소리, 시냇물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가 유장한 수도원의 시간대를 차곡차곡 여며줍니다.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번지며 수도사의 방에 볕이 듭니다. 햇빛조차 침묵의 톤으로 수도원에 살며시 스며드는 듯합니다. 숨죽인 관객도 수도원 수행자가 된 듯 빨려 들어갑니다.
3. 비워진 상태라야 공명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자는 명분으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소리를 냅니다. 휴대폰은 아예 신체 일부의 필수기관처럼 찰싹 붙어있습니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문자를 주고받습니다. 24시간 ON 상태인 매스미디어는 무한대의 동영상과 사운드를 쏘아댑니다.
도시인의 일상은 소리로 채워져 있고 소리에 포섭당하는 형국. 첨단 디지털 기기들은 온갖 신호로 깜빡거립니다. 아파트 도로 골목길 쇼핑센터 극장 회의실 사무실 식당 지하철 언제 어디서나 소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천만 도시인이 서식하는 도시는 침묵을 잃어버리고 소음에 갇힌 공간입니다.
이젠 차라리 도시의 소리가 익숙해져 오히려 그 소리 덩어리가 사라지면 어찌할 줄 모르고 불안해집니다. 소리에 중독된 삶. 많은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만 항상 소통의 허기를 느낍니다.
진정한 소통은 자신과의 소통이 먼저가 아닐까. 자신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 바로 침묵 속에 자신을 놓아두고 비워놓는 일입니다. 영화 <위대한 침묵>은 참된 소통의 기본이 침묵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뭔가로 가득 채워진 악기는 맑은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텅 비워진 상태라야 맑게 공명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마무리될 무렵, 흰 눈썹의 앞 못 보는 노수도사가 낙랑하게 말합니다. “나는 맹인이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맹인이기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었고, 하나님께 가까워진 만큼 행복하였습니다.”
침묵을 몰랐던 관객들이 침묵을 배우고 객석에서 일어섭니다. 침묵을 잠시 엿보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