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소심남의 ‘마음속 장애’ 극복기
타 이 틀: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감????독: 톰 후퍼
출????연: 콜린 퍼스(앨버트 왕자 / 조지 6세)
제프리 러쉬(라이오넬 로그)
제작국가: 영국
1. 두 형제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영국 왕 조지 5세에겐 두 아들이 있습니다. 활달한 장남 에드워드 8세(윈저공)와 과묵한 차남 조지 6세(앨버트 왕자)는 성격이 대조적입니다. 왕위를 계승할 형은 여행을 즐깁니다. 떠들썩한 파티를 열거나 비행기를 직접 몰고 주유천하합니다. 지금은 미국 출신 이혼녀이자 유부녀 심슨부인에 빠져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버티’란 애칭을 가진 차남 조지 6세는 언어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말문이 막히거나 심하게 더듬습니다. 치명적인 말더듬 증상 때문에 입을 다물고 삽니다. 그래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습니다. 그가 원하는 삶이란 토끼 같은 두 딸,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왕궁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아내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언어장애를 꼭 고쳐보고자 애를 씁니다. 실력 있다는 엘리트 의사들이 나서지만 효과는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찾아갑니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출장치료 의뢰를 하지만 라이오넬은 원칙을 내세우며 환자를 데려오라 요구합니다. 이제 귀한 신분 왕자와 평민 치료사가 대면합니다. 라이오넬의 치료법은 독특합니다. 그는 먼저 치료사 – 환자와의 관계를 벗어나 서로 친구가 되자고 합니다. 왕자에게 “버티”라고 부르며 자신도 “라이오넬”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라이오넬은 제일 먼저 버티에게 말더듬 증상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억압적 환경에서 생긴 후천적 질환임을 확인시켜줍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버티도 자존심을 버리고 라이오넬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갑니다.
2. 왕족과 평민, 두 남자의 우정
로열패밀리로서 지켜야할 격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왼손잡이였지만 오른손잡이 훈련을 해야 했고, 안짱다리를 고치기 위해 억지로 허벅지에 보철을 대고 엉거주춤 걸어야 했습니다. 부모의 따뜻한 품속은 멀었고 간사한 유모에 의해 젖마저 충분히 먹지 못했습니다. 어린 왕자는 이때부터 말을 더듬었고 주위의 근심에 더욱 악화됩니다. 엄격한 부친의 질책과 잘 나가는 형에 대한 콤플렉스가 겹쳐 더욱 말을 더듬습니다. 버티는 평민인 라이오넬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를 하나씩 꺼내 보입니다. 라이오넬에게 말문을 연 조지 6세는 깊은 숨을 내쉽니다.
왕자의 말더듬 증상을 고치려는 라이오넬도 성공한 사람은 아닙니다. 호주 출신이라고 냉대 받고 변변한 학위도 없는 무면허 치료사입니다. 연극무대에 서고자 오디션에 끊임없이 도전하지만 항상 탈락하는 중년 가장이자 두 아들의 아빠입니다. 이후 말더듬이 왕자의 치료과정을 받쳐주는 동력은 정교한 치료기법이 아니라 왕족과 평민, 두 남자의 우정입니다.
왕 조지 5세가 서거합니다. 형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총각 왕은 왕실 규정상 이혼녀와 결혼할 수 없습니다. 1936년 형은 즉위한 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하고 맙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뒷받침과 도움 없이는 국왕으로서의 중책을 수행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퇴임 연설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됩니다.
왕이 되기를 싫어했던 동생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울먹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부름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동생 조지 6세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이제 왕실과 영국 국민은 왕의 입을 주시합니다. 그가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을까. 국민을 향한 연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3. 친구에게 말하듯 친구에게 읽어주듯
‘소심남’ 조지 6세는 용기있는 왕으로 거듭납니다. 진정한 친구 라이오넬이 항상 왕의 뒤를 따릅니다. 라이오넬은 왕에게 대중연설도 ‘친구에게 말하기’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에게 진실로 말할 수 있다면 그 마음으로 수백, 수천만 대중에게도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히틀러가 전 유럽을 전쟁의 광풍 속으로 몰고갑니다. 연합국의 중심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참전 결정을 내립니다. 조지 6세가 참전 선포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BBC라디오는 전 세계로 ‘왕의 연설’을 생중계합니다. 온 인류가 조지 6세의 연설을 경청합니다. 라이오넬은 바짝 긴장한 조지 6세를 차분히 리드합니다. 마이크 앞에선 왕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지휘’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이때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알레그레토가 배경음악으로 장중하게 깔리며 울컥하게 합니다.
왕은 나치가 런던을 공습해도 버킹검궁을 사수했고 폭격으로 큰 피해를 당한 국민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왕은 나중에 라이오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며 그들의 우정을 계속 가꿔갑니다. 실화이기에 감동은 배가됩니다. 영국 왕실을 찬찬하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조지 6세는 현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입니다. 스토리텔링 메시지가 강한 영국 영화의 깔끔한 미덕이 물씬합니다.
상처 없는 존재, 약점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자기 삶 안에서 버벅댑니다. 읽는 것 서툴고 남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은 영원히 어렵습니다. 타인에게 말하기 말걸기는 영원한 숙제입니다. 모두 마음 속에 장애를 갖고 삽니다. 다만 극복해보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왕으로 살았던 한 남자의 장애 극복 실화입니다. 그에겐 인생 끝까지 교감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살면서 친구에게 말하듯 이야기하고, 친구에게 읽어주듯 세상에 나아가라고 다독여줍니다.
콜린 퍼스(조지 6세 역), 제프리 러쉬(라이오넬 로그 역)의 연기는 더 이상 빈틈이 없을 만큼 정교한 팀워크를 보여줍니다. 연기의 최고 달인들입니다. <킹스 스피치>는 2011년 올해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4개 부문을 휩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