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잿빛 교정을 ‘파스텔 희망’으로 바꾼 화음

타이틀 : 코러스 (Les Choristes, Chorists)
감독 :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출연 : 제라르 쥐노, 프랑수아 벨레앙, 장-바티스트 모니에
제작국가 : 프랑스
한국 개봉 : 2005. 03.03

합창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

대화의 힘, 노래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하나된 마음으로 함께 노래 부르는 합창의 감동을 깨닫게 합니다. 프랑스영화 <코러스>는 교육이란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기술을 구사하는 테크닉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교실에서 필요한 것은 최첨단 기자재나 기법이 아니라 학생들을 공정하게 대하며 숨겨진 재능을 이끌어내는 선생님의 사랑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피에르 모항쥬는 며칠 전 모친상을 치렀습니다. 그에게 페피노란 남자가 찾아옵니다. 유년시절 모항쥬와 함께 자랐던 퐁드레탕 보육원의 막내였습니다. 페피노는 “마티유 선생님을 기억하냐”고 물으며 빛바랜 단체사진 한 장과 낡은 일기장을 건넵니다.

지금은 유명 음악가가 되었지만 어린 모항쥬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준 스승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고아 페피노를 거두어 아버지처럼 돌봐준 클레몽 마티유 선생님. 이제 영화의 발걸음은 마티유 선생님이 남긴 일기장 속으로 들어갑니다. 플래시 백(Flash back) 기법으로 마티유 선생님이 초라한 시골 기숙학교 ‘퐁드레탕’에 부임하는 장면으로 이동합니다.

“여러 직장을 전전한 끝에 결국은 막다른 곳까지 오게 됐다.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최저 기숙학교.
최저란 말이 나랑 너무도 잘 맞는다.”

2차 대전 직후, 프랑스 마르세이유 한 보육원에 임시 음악교사 마티유가 도착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부모를 잃거나 가족들과 헤어져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과 대면합니다. 그는 실패한 작곡가로서 초라한 자신을 절감하며 일기장에 한 땀 한 땀 ‘퐁드레탕 시절’을 적어갑니다. 마티유는 음악인생을 꿈꾸었지만 인정받지 못한 작곡가. 그의 낡은 가방 속엔 아직도 못 다 이룬 미완성의 악보가 있습니다.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거친 아이들. “액시옹(작용)에는 리액시옹(반작용)” 구호를 외치며 일벌백계로 학생을 다스리는 교장. 그는 교도소장처럼 군림합니다. 무기력한 교사들. 엄격한 교장에 굴종하며 그를 떠받들며 삽니다. 명령과 체벌만 있는 교실. 마티유 선생님에게 학교는 절망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지루한 수업이 아니면 독방감금 같은 무자비한 체벌로만 인식됩니다. 아이들은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에게 침묵과 냉소로만 반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연히 들려온 아이들의 노래 소리. 마티유를 ‘배불뚝이 대머리 꼰대’라고 비꼬는 노래입니다. 흥얼대는 애들을 찾아가 더 크게 불러보라고 합니다. 뭔가를 발견한 듯한 마티유 선생님의 얼굴엔 화색이 돕니다. 천방지축 날뛰기만 한 아이들에게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선생님은 오래 전 접었던 작곡의 꿈을 다시 펼쳐듭니다.

마티유는 애들 모두에게 노래를 청하고 목소리를 가늠한 다음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합창 파트를 지정해줍니다. 이제 삭막한 교실에서 소년합창단의 어설픈 노래가 흐릅니다. 아이들에게 노래가 생기고 마티유에게는 접어 두었던 꿈이 되살아나는 순간입니다.

교실은 희망을 배우는 곳

노래가 아이들의 마음에 온기와 꿈을 불어 넣어 줍니다. 소프라노를 맡은 반항아 모항쥬의 숨겨진 미성이 발견됩니다.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며 동료 교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항쥬가 사실은 천사의 마음을 가진 여린 소년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애들의 눈높이에서 다독이며 격려해준 마티유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모항쥬의 뒤틀린 반항심은 악순환 궤도를 달리는 폭주기관차로 변했을 겁니다. 마티유는 상처받아 일그러진 아이들의 영혼에서 맑은 동심을 이끌어내려 노력합니다.

노래를 배우면서 아이들의 표정이 환하게 변해갑니다. 수학 선생님도 마티유 음악 수업에 동참해 오르간 반주를 해줍니다. 영화는 어깨에 힘주지 않고 무게 잡지 않습니다. 몇몇 상투적인 음악영화처럼 합창대회나 음악콩쿠르에 출전, 드라마틱한 우승을 하게 되는 줄거리가 나오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앞길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합창단이 자리를 잡아가자 파리에 있는 학교재단에서 큰 관심을 보입니다. 드디어 학교에서 공연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출세만 노리는 교장은 합창단 존재를 모두 자신의 공로로 돌립니다. 교장이 승진 로비를 위해 파리로 출장을 떠난 사이, 보육원 기숙사에 방화사건이 일어납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마티유의 야외수업 덕분에 화를 면합니다. 교장은 학생들이 무사한 것보다 화재로 인해 승진 탈락된 것에 격분, 마티유를 해고합니다. 아이들이 집단 반항할까봐 마티유가 아이들과 작별인사 나누는 것도 막습니다.

아무도 배웅 나오지 않은 교정을 쓸쓸히 나서는 마티유. 그때 마티유의 머리 위로 아이들이 날린 수십 개의 종이비행기가 휘날립니다. 종이비행기에는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애들 이름들이 알알이 박혀있습니다.

“난 아이들이 명령을 어기고 뛰쳐나와 인사를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의 지혜는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서 만났지만 우리가 헤어진 곳은 희망의 이름이었다.”

물건을 훔치고 담배를 피우는 사고뭉치 소년들. 학교라기보다는 난장판 합숙소 같았던 공간. 처음 아이들은 구제불능 수준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마티유 선생님은 함께 부를 수 있는 합창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합창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악기입니다. 인간의 목소리로 빚어내는 화음은 서로 하나 될 수 있는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합창단은 각 파트의 구성원 모두가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다운 하모니를 피워냅니다.

합창단은 하나의 문화가 되고 사회가 됩니다. 아이들은 그 사회를 빛내는 구성원이 되고 무럭무럭 성장해갑니다. 가을이 되면 초록 이파리가 갈색으로 물들어 가듯 합창의 힘에 감화된 아이들은 마티유 선생님이 심어놓은 사랑의 힘을 믿고 세계를 향해 걸어갑니다. 교실에서 폭력은 교육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교실을 살리는 것은 인격과 인격의 합창입니다.

* * * <코러스>는? 1945년 영화 ‘나이팅게일의 새장’을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신예 파라티에 감독은 “영화가 직접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변화시킬 수 있는 동기는 부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영화 제작의도를 밝힙니다. 프랑스에서만 개봉 연도 900만 명이 봤을 정도로 흥행 대성공을 이룹니다.? OST 음반도 150만장이상 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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