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시를 읽는 사람도 시인입니다


타이틀 – 일 포스티노 (Il Postino /? The Postman)
감독 – 마이클 래드포드 (Michael Radford)
출연 – 필립 느와레 (Philippe Noiret, 네루다 역)
???????? 마시모 트로이시 (Massimo Troisi, 마리오 역)
제작국가 – 이탈리아
개봉 – 1996년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나는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누가 말을 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닌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네
밤의 가지에서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외로운 귀로에서
그곳에서 얼굴 없이 사는 나를 건드렸네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 중에서??
1. 시인이 되고 싶은 노총각 마리오

남미 칠레의 위대한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 열아홉의 나이로 문단에 나와 40여 권의 시집, 3500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의 조국 칠레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학팬을 지닌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좌파와 우파, 청년과 노인, 남자와 여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칠레정부의 프랑스대사로 재직 중인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온 세계 청춘 남녀가 애송하는 연애시의 전형으로 손꼽힙니다. 저항시와 연애시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천재 시인 네루다가 한국인들에게 가깝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덕분입니다.

정치적 탄압의 대상이 된 네루다가 1952년 이탈리아로 망명길에 오릅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나폴리 근처의 작은 섬에 거처를 알선합니다. (여기까지가 실화입니다) 지중해 코발트빛 파도가 철썩거리는 어촌 마을에 대시인이 도착하면서 영화스토리는 시작됩니다. 2년간 섬 마을에 머물면서 네루다는 마리오 루폴로라는 시골 청년과 깊은 우정을 나눕니다. 시가 낳은 아름다운 인연입니다.



30대 노총각 마리오는 가난한 어부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이 마을로 오자, 전 세계 네루다의 문학 팬들이 편지를 보내옵니다. 마을 우체국장은 (산꼭대기 집에 거처를 마련한) 네루다 부부 우편물을 배달해주는 임시 직원을 모집합니다. 겨우 글만 읽을 줄 아는 마리오는 자전거가 있다며 여기에 지원하고 네루다 우편물만 싣고 나르는 전속 배달부로 채용됩니다.

마리오는 마을 우체국과 시인의 집을 오가며 시인의 사는 모습을 물끄러미 살펴봅니다. 어느 날 더듬거리는 어눌한 목소리로 시인에게 고백합니다.

– 선생님, 저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 시를 쓰면 여자들이 좋아하겠지요?
– 선생님, 은유(metaphor)란 무엇인가요?

마른 빵처럼 삐쩍 마른 순진청년 마리오는 두 눈을 껌벅거리며 시의 門을 두드리려 합니다. 네루다는 청년의 진실한 마음을 읽었는지 ‘은유’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 마리오, 시란 은유야. 마음을 실어 다른 것에 비유해보는 거야.
– ‘하늘이 운다’면 이것이 무슨 말이지?
– 비가 온다는 말 아닌가요.
– 맞아, 바로 그게 은유야
– 선생님의 시 구절 중에서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표현이 참으로 가슴에 다가와요. 그게 무슨 말이지요.?
– 난 내가 쓴 시 이외의 말로는 시를 설명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지. 마리오,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뿐이지.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살펴보게. 그럼, 은유를 알게 될 거야

2. 마리오를 위한 詩창작 교실

그 날 이후, 마리오는 해변을 걷고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자나 깨나 네루다의 시집을 손에 끼고 중얼거립니다. 달빛이 내리는 창가에 기대여 바람 소리를 듣고 밤바다를 내려다봅니다.

– 어쩔 때 단어가 물결처럼 왔다 갔다 해요.
– 파도처럼 출렁거린다고? 그것이 바로 운율이라는 거야.
– 배가 단어들로 이리저리 튕겨지는 느낌입니다.
– 방금 자네가 한 말이 바로 은유야.

네루다와 마리오의 詩창작 교실은 지중해 해변을 거닐면서 계속됩니다. 마리오는 선생님께 귀한 술을 한 병 드리고, 시인은 제자에게 가죽노트 한 권을 선물로 줍니다. 어느 날 마리오는 마을 선술집 아줌마의 여조카 베아트리체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집니다. 선생님에게 사랑에 빠진 심정을 토로합니다.

– I’ve fallen in Love.
– Nothing serious. There’s a remedy.
– No, no remedy! I don’t want a remedy. I want to stay sick. I’m in Love, really, really in Love.
– Who are you in Love with?
– Her name’s Beatrice.

짙은 눈썹 커다란 눈의 베아트리체를 그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마리오에게 시인은 힘을 북돋워 줄 모양입니다.

– 자네 애인을 한번 만나러 가볼까.

3. 이제 자네는 시인이야

선생과 제자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내려갑니다. 그 뒤로 파란 지중해가 펼쳐집니다. 선술집서 일하는 베아트리체는 두 사람의 방문에 깜짝 놀라고 마을 사람들도 “시인과 제자가 왔다”면서 웅성거립니다. 포도주를 주문하면서 대시인은 마리오에게 가죽노트를 달라고 하고 베아트리체에게는 펜을 갖다 달라 합니다. 베아트리체가 지켜보고 있을 때 시인은 노트에다 친필로 거침없이 써내려 갑니다.

‘나의 절친한 친구이며 동지인 마리오에게, 파블로 네루다’

– 이제 자네는 시인이야, 시를 쓰고 싶다면 이 노트에 쓰게.

대시인이 마리오를 마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으로서 당당히 등단시킨 셈. 베아트리체의 두 눈이 더 커집니다.? 마리오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이 깊어 갑니다.

“당신의 미소는 장미요, 땅에서 움트는 새싹이요, 솟아오르는 물줄기입니다. 그대의 미소는 부서지는 은빛 파도. 순결한 여인과 함께 있는 것은 파도가 부서지는 백사장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마리오의 설익은 메타포가 폭포처럼 쏟아집니다.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향한 마리오의 은유를 가만히 새겨봅니다. 시인에게 배운 은유를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시심은 옮겨지고 마음속에서 익혀진 뒤 다시 누군가에게 전파됩니다.

시의 뼈대는 은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중첩시킬 때 세계는 확장되고 의미는 증폭됩니다. 은유는 생생한 긴장감을 주고 지혜의 경계를 넓혀줍니다.


갓 잡아 올린 물고기 마냥 파닥거리는 은유를 익힌 마리오에게 세계는 다시 다가옵니다. 무미건조하고 쓸쓸했던 고향 섬도 아름다운 섬으로 재탄생되고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은 꿈의 언어로 커져만 갑니다.

마리오와 베아트리체의 결혼은 마을 축제로 흥겹게 치러지고 시인은 자신의 조국 칠레가 자신에 대해 정치적 박해를 중지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망명자는 귀국을 결정하고 동시에 마
리오는 전속 우편배달부 자리를 잃게 됩니다.

칠레로 돌아간 네루다에게서 아무런 기별이 없어도 마리오의 믿음은 변치 않습니다. 마리오는 네루다가 남기고 간 짐을 부쳐주면서 그의 녹음기에 자신의 시심을 담습니다. 섬마을 풍광의 소리를 담는 정경은 한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눈물겹습니다.

큰 파도 소리, 작은 파도 소리, 절벽의 바람 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걷는 소리, 신부님이 치는 성당의 종소리, 밤하늘 뭇별이 반짝거리는 소리, 그리고 아직 베아트리체의 뱃속에 있는 아들(마리오는 자식 이름을 선생님 이름을 본 따서 파블리오라고 미리 짓습니다)의 심장 소리까지 녹음합니다. 마리오는 녹음기의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 섬의 아름다움을 이 테이프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제가 시를 한 편 지었습니다. 시 제목은 ‘파블로 네루다님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4. 네루다의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마리오는 아들이 태어나기 며칠 전, 큰 도시 사회당 주최 집회에 참가합니다. 집회에 참가하면 선생님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집회에서 노동자 대표로 ‘파블로 네루다님에게 바치는 시’를 낭송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수많은 군중 틈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다 진압대와 맞닥뜨립니다. 때마침 거친 진압이 시작되자 군중들은 우왕좌왕. 한쪽으로 쏠리는 군중들이 마리오를 덮칩니다. 시가 적힌 종이 한 장이 거리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네루다 부부가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술집 벽엔 네루다 부부와 나란히 포즈를 취한 마리오- 베아트리체의 결혼사진이 걸려있습니다. 홀에서 뛰노는 조그만 꼬마 아이를 향해 “파블리오”라고 부르는 베아트리체 목소리가 들립니다. 베아트리체는 노시인에게 마리오의 기구한 죽음을 찬찬히 말해줍니다.

남편이 녹음한 테이프를 칠레로 보내지 않고 간직하던 베아트리체는 네루다에게 녹음테이프를 들려줍니다. 지중해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변을 걷는 네루다의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시를 읽는 사람도 시인입니다.
시를 가슴에다 가꾸는 사람도 시인입니다.
시는 시인에게서 태어나 시심의 바다로 떠나갑니다.
시가 닿는 포구마다 시심이 피어납니다.
시는 나눔입니다.
시는 돈이 아닙니다.
시는 가난합니다.
시는 가난한 풍경,
넓고 높고 깊은 시야,
고즈넉한 시선을 담습니다.
시가 다가오는 계절.
시가 태어나고 시가 자라고 시가 죽어가는 시간입니다.
한 줄기의 시를 읊조리는 순간,
우리는 마리오가 되고 지중해 파란 파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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