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칙칙하고 눅눅한 이 징후가 경고하는 것
타이틀 : 하얀 리본?(Das Weisse Band, The White Ribbon)
감독 각본 : 미하일 하네케 (Michael Haneke) ?
주연 : 마리사 그로왈트, 야니아 파우츠, 미카엘 크란츠
제작국가? :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개봉 : 2010년
수상내역 😕 2009년 6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010년 67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마을은 평화로운가
1913년 독일의 작은 농촌 마을. 중세시대 영주 같은 대지주 남작이 실질적 지배자입니다. 관리인을 통해 수많은 소작농들의 생존과 생계를 좌지우지합니다. 빈농들의 삶은 ?남작의 한마디에 달려 있습니다. 추수기 축제 광장에 모인 소작농들은 두 손 들어 남작을 칭송하며 만세를 외칩니다. 마을엔 교회 학교 제재소가 있습니다. 경건주의를 표방하는 독일 루터교 목사가 동네 사람들을 신앙의 공동체로 이끕니다. 학교엔 젊은 남자교사가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은 특별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어느 날 유일한 동네 주치의가 귀갓길에 누군가 몰래 쳐놓은 작은 줄에 걸려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칩니다. 소작인 아내가 제재소에서 사고를 당해 죽습니다. 남작의 외동아들이 어둠 속에서 린치를 당해 피투성이 상태로? 발견됩니다. 한밤중 영지 내에 알 수 없는 방화사건이 발생합니다. 마을 산파로 일하는 중년여성의 장애 아들이 누군가에게 잔인한 폭행을 당해 실명합니다.
이 간헐적 사건들은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을? 얼어붙게 합니다. 큰 도시 형사들이 들이닥쳐 수사에 착수하지만 남겨진 증거는 애매하고 범인은 오리무중. 남작이 나서서 범인을 색출하자고 호소하지만 이미 적대감 가득 찬 마을은 불신과 침묵의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듭니다.
단죄하는 아버지
이 영화의 화자는 젊은 한 시절을 이 마을에서 보낸 남자 교사. 제3자의 시선으로 마을을 바라본 그는 수십 년이 흘러 인생말년에 옛 일을 회상하듯 읊조립니다. 영화 초입에 다음과 같은 말로 말문을 엽니다. “이 마을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들이, 어쩌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 마을의 원인 모를 사건들이 왜 시대의 징후를 설명할 단초가 될 수 있을까.
남작의 가정은 이미 파탄상태. 마을이 싫다며 이탈리아로 휴양 떠난 남작의 처는 이미 딴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낙마 사고를 당한 의사는 홀로 사는 산파를 성적 노리개로 삼다가 자신의 딸까지 성추행하는 파렴치범입니다. 아내가 죽은 소작인은 경작하고 있는 땅마저 떼일까봐 두려워, 남작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아들의 뺨만 후려칠 뿐입니다.
마을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하는 목사의 다섯 아이들은 아버지의 엄격한 규율에 숨막혀 합니다. 목사는 자녀들의 사소한 잘못도 신앙의 이름으로 응징합니다. 심판을 내리고 순수와 순결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하얀 리본’을 착용하게 합니다. 자위행위를 했다고 고백하는 10대 아들에게 하얀 리본을 팔뚝에 두르도록 명령합니다. 아들은 침대에 두 팔을 묶인 채로 잠을 자야 합니다. 목사에게 매질을 당한 자녀들은 일요일 예배시간 성가대로 나서 천사의 음성으로 찬송가를 부릅니다.
폭력의 되물림
어느 순간 아이들은 “나는 모릅니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어른들에게 더 이상 묻지도 않습니다.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 묻는 말에 모른다는 말만 합니다. 대화는 사라지고 자폐적 단절만 횡행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오직 제 또래들과 침묵의 대화를 나눌 뿐. 함께 몰려다니면서 무언가를 모의하는 기색도 언뜻 보입니다. 자세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뿐입니다. 체벌에 순종하는 눈빛이지만 체벌을 가장한 가부장적 폭력은 곧 되물림됩니다. 폭력은 지워지지 않고 또 다른 폭력의 희생자를 만들어냅니다.
평화롭게 보이던 마을을 버티고 있는 것은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지주와 소작농, 아버지와 자녀, 권위와 예속, 목사와 신도, 분배권과 생계유지, 명령과 묵종, 속빈 관계의 공허감, 소통부재…. 이 주종관계를 관통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인간내면에 감춰진 폭력성에 대한 탐구로 유명합니다. 142분에 걸친 흑백 영상은 한 컷의 미술작품으로 화폭에 내걸어도 거뜬할 만큼 인상적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1년 전, 숨 막히는 시대 배경을 독일 시골마을의 어두운 삽화를 통해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네케 감독은 사회의 문제가 파편화된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 지를 천착했습니다.
영화는 불친절하며 상영시간 내내 불편하게 합니다.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도 암시하지 않고 책임을 물을 가해자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단순명쾌하지 않고 모호한 것처럼 영화가 집착하고 있는 ‘징후’는 애매모호합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뭔가 코끝에 와 닿는 칙칙한 징후. 장막 뒤에 눅눅하게 스며든 시대의 분위기. 영화는 사라예보의 총성 소식과 1차 세계대전 발발 소식이 작은 마을에도 전해지는 것으로 끝맺습니다.
하얀 리본은 강요된 완장
‘하얀 리본’은 순수라는 이름의 강요된 완장입니다. 순수는 과연 언제나 선한 가치일까. ‘종교적 순수’가 교조주의에 빠지면 삶의 다양성을 이단으로 몰아갑니다. 특히 전체주의가 권위주의와 결합될 때 역사적 괴물을 만들어 냅니다. 변종 파시즘의 서식지로 가능합니다.
마을 10대 아이들 또래가 독일 사회의 중심축이 될 1939년.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인류사 전대미문의 홀로코스트 비극의 가해자가 됩니다. 민족 우월을 선동하며 나치즘으로 무장한 히틀러정권은 순식간에 독일 사회를 맹목의 전초기지로 돌변시킵니다.
시네마는 강요된 순결, 강요된 윤리로 억압적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되레 욕망과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외부세계 격랑과 마을 연쇄사건의 알레고리적 관계는 ‘아이들은 무조건 선하다’는 기존 메시지를 뒤집고 있습니다. 억압 – 좌절 – 폭력의 3중주가 시대적 광기를 초래해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요즘? 한국사회의 징후는 무엇일까. 빈발하는 연쇄 조짐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휘몰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