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당신이 나타날 줄 알았다오”

타이틀 ??크레이지 하트
????????? (Crazy Heart)
감독 ? 스콧 쿠퍼
출연 ? 제프 브리지스, 매기 질렌할
제작국가 ? 미국
개봉 ? 2010년

카우보이 모자에 가죽조끼 청바지를 입고 롱부츠를 신습니다. 통기타를 맨 미국 백인 남자가 자연을 노래하고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고 고향 떠난 향수를 읊조립니다. 바로 미국 컨트리 뮤직의 전형적인 이미지입니다.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대표적입니다. 한(恨)의 음악인 블루스(Blues)가 흑인계 아메리카 음악인데 비해 컨트리뮤직은 미국 백인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서민적 음악 장르입니다. 미국 동부의 고급스런 유럽풍 음악과도 비교됩니다. 남부 서부를 중심으로 주로 목장의 카우보이, 가난한 농부들, 광부나 사냥꾼들에 의해서 향유됩니다.

컨트리 뮤직은 초기에는 힐빌리(hillbilly)라 불렸는데, 남부 시골뜨기라는 뜻으로 남부 사람들을 경시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중장년층의 감성을 건드리는 한국 전통 트로트 음악에 견줄 만합니다. 소박한 멜로디와 통속적인 감성에 누구라도 따라 부를 수 있는 편안한 가사가 그 공통점입니다.

여기 알뜰 제작비 700만 달러가 소요된 저예산 미국 독립영화 <크레이지 하트>(Crazy Heart)가 있습니다. 배우 출신인 스콧 쿠퍼(Scott Cooper) 감독의 첫 작품입니다. 주인공 배드 블레이크는 왕년에 한가락 했던 퇴물 컨트리가수. 할리우드 중견배우 제프 브리지스(Jeff Bridges)가 열연합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57세의 외롭고 초라한 남자. 영화 전편에 걸쳐 컨트리음악이 깔리고 제프 브리지스가 직접 부르는 무대가 전면에 배치되는 음악영화입니다.

결혼에 4번이나 실패한 배드 블레이크는 옛 히트곡 몇 곡으로 남은 생을 우려먹고 사는 흘러간 가수입니다. 젊었을 적 한때는 잘 나갔지요. 컨트리 음악 싱어송라이터로서 사랑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생을 탕진하면서 방탕의 노래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을 꾸릴 줄 몰랐고 혈육이라곤 얼굴도 모르는 아들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네 살 때 본 게 마지막입니다. 장성한 그 아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무엇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수중에 돈도 없습니다. 시골 볼링장 한쪽 구석에서 겨우 공연하고 근근이 용돈 받아 챙기는 삶이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기타 하나 매고 떠도는 삶은 중증 알코올중독에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24시간 술병을 끼고 삽니다. 담배는 손가락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초라한 밤 공연이 끝나면 추파를 보내는 시골 중년여인들과 향락의 밤을 보내는 비루한 인생입니다. 흘러간 옛 히트 곡을 부르다 술에 쩔어 공연 도중에 무대를 뛰쳐나가 구토하는 삶. 술에 취해야 잠에 떨어집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희망을 꿈꾸며 잠을 자본 적이 없는 비참한 생활. 영화는 세련되고 삼빡하지 않습니다. 멋지고 섹시한 장면 하나 없습니다. 잔잔하게 시작해 시종일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잔잔한 영화입니다.

변두리 퇴락한 ‘3류 가수’에게 지방신문 여기자 진이 다가옵니다. 한물간 컨트리 뮤지션의 삶을 취재하고자 인터뷰를 요청합니다. 매기 질렌할(Maggie Gyllenhaal)이 홀로 네 살배기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싱글맘 여기자로 호연합니다. 무책임한 남자에게 크게 한 번 데었던 이혼녀 진은 의외로 막장에 다다른 초로의 가수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생계형 퇴물 연예인 남자도 진에게서 순수한 감정을 느낍니다. 둘 사이엔 어느덧 사랑이 흐릅니다.

인생 황혼기에 막 접어들기 직전 남자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술 담배에 의존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블레이크의 삶은 진의 어린 아들 버디를 도심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리는 사고로 인해 진과 다시 멀어지고 맙니다. 진과 새로운 인생을 꿈꾸었던 블레이크는 알코올치료 병원에 제 발로 입원합니다. 장성한 아들이 보고 싶어 전화번호 책을 뒤져 통화를 시도하지만 아들은 분노보다 깊은 냉정함을 보이며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블레이크는 삶을 포기할까요. 영화는 조금 시간을 건너뜁니다. 알코올치료 병원을 퇴원한 노래인생은 다시 무대에 섭니다. 한때 자신의 컨트리백밴드에 속해 자신의 투어를 따라다니며 음악을 배웠던 토미 스윗(콜린 파렐, Colin Farrell). 콘서트 관객 1만명 정도는 쉽게 모으는 요즘 최고인기 컨트리가수입니다. 토미는 블레이크에게 재기의 기회를 줍니다. 블레이크는 토미의 오프닝무대에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오릅니다. 진과의 아픈 상처가 계기가 되어 작곡도 하게 됩니다. 불후의 명곡이 될 ‘The Weary Kind’을 만들어 토미 스윗에게 건네고 이 노래는 대히트 합니다.

어느 날 후배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고 물러나는 블레이크에게 진이 다가옵니다. 진은 훨씬 단단해진 기자로 변신해 있습니다. 그녀의 손엔 새로운 결혼반지가 보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섭니다.

“당신의 노래가 너무 좋아요”
“언젠가 당신이 나타날 줄 알았다오”
“버디도 같이 왔는데 만나볼래요?”
“아니, 만나고 싶지만 버디를 위해서 안 만나는 것이 좋겠소”
“이제 다시 당신을 인터뷰해도 되겠지요”

두 사람은 한바탕 웃습니다.

영화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가르쳐줍니다. 잘나갈 때 터닝 포인트가 있습니다. 인생이 하염없이 나락으로 처박힐 때 터닝 포인트가 있습니다. 세월은 가고 스타는 뭇별이 됩니다. 솟구치지 못하면 뭇별 또한 한 줌 재로 사라집니다. 순간순간 일어서야 합니다. 컨트리 음악을 꼭 닮은 영화는 노년에 다시 일어서는 외로운 남자를 조용히 응시합니다. 퀴퀴한 모텔방에서 객사에 직면했던 한 구겨진 삶의 눈물겨운 재기. 울혈에 짓눌린 늙은 남자의 심장이 다시 건강하게 뜁니다.

<크레이지 하트>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주제가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브리지스는 예상대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아주 유력한 후보였습니다. 브리지스는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으며 아카데미의 전초전인 골든 글로브와 미국 배우조합(SAG) 등에서 남우 주연상을 휩쓸었습니다. 영화 도중에?이 노래가 들립니다. 컨트리음악 유명곡 중 하나입니다. 1982년?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와 돈 윌리엄스(Don Williams)가 함께 부른 컨트리 명곡입니다.

If I needed you

If I needed you would you come to me
Would you come to me for to ease my pain
If you needed me?I would come to you
I would swim the sea for to ease your pain

Well the night’s forlorn and the morning’s born
And the morning’s born with lights of love
And you’ll miss sunrise if you close your eyes
And that would break my heart in two

Baby’s with me now
since I showed her how to lay lily hand in mine
Who could ill-agree
she’s a sight to see a treasure for the poor to find

One Response to [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당신이 나타날 줄 알았다오”

  1. 이지민
    이지민 July 20, 2012 at 3:30 pm

    늘 느끼는 거지만 글로 영화를 봅니다. 내러티브 비평의 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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