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세상을 규정한다

기차는 시골역에 잠시 정차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본다. 한 호흡 가다듬은 뒤, 미래의 설계도를 펼치고 새 철로를 달려야 한다. 어떤 스토리가 담긴 선로를 달릴 것인가. 심신을 망치는 나쁜 습관을 고쳐서 현재의 삶에서 거듭나 새로운 삶에 도전하겠다는 총체적 결심이 바로 스토리 편집력이다.

[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①] 스토리가 세상을 규정한다…행복은 운이 아니라 ‘편집력’

다매체 다채널 SNS 시대. 정보 업데이트 중독증에 빠진 현대인은 점차 경중완급을 분별하지 못한다. 진지함에 둔감해지고 속도에 치인다. 일상의 사리분별력도 희미해진다. 바로 이때가 편집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력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고 무작위로 널려진 것을 재배치 재배열하여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다. 여럿 중에 핵심을 선택하고 먼저 세울 것과 나중 세울 것을 분류한 다음 제각각 본질에 걸 맞는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편집이다. 즉 편집의 3대 기능은 ①선택 분류 ②가치 부여 ③이름 짓기다. 선택-분류-명명의 작업과정은 따로 떼어지지 않고 물과 물고기처럼 밀착되어 있다. 삼라만상을 편집한다는 것은 그 존재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행위다. 편집력을 키워 삶의 가닥을 잡아보자.

인생을 바꾸는 절실한 스토리 얽기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알코올중독자, 줄담배를 태우다가 담배를 끊겠다는 흡연자, 인터넷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게임중독자, 카지노를 출입하지 않겠다는 도박중독자, 한달 안에 10kg을 감량하겠다는 다이어트 선언자. 이들의 굳센 의지가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뭘까.

미국 버지니아대학 심리학과 티모시 윌슨 교수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자기의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개인적 내러티브(personal narrative) 전문가다. 2012년 한국서 번역된 저서<스토리>는 ‘행동의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심리처방’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은 자발적 참여와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동기, 즉 ‘스토리 편집’(story editing) 개념을 제시한다.

단순히 폐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금연을 결심하면 대다수 끽연자는 결심 번복의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심신을 망치는 나쁜 습관을 고쳐서 새로운 삶에 도전하겠다는 총체적 결심이 곁들인 금연 결단이 스토리 편집력 사례다.

“두 딸은 유치원생이다. 번듯한 내 집 마련은 아직 멀었다. 현재 우리 부부 모두 건강하지만 성인병이 나타날 40대 후반이 되면 어찌될 줄 모른다. 가장인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우리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하루 한 갑 이상 피우고 있다. 그래, 지금 당장 금연이 불가피하다.” 바로 이것이 삶에 대한 계획이 분명하고 자발적 의지가 동반된, 그래서 성공가능성이 높은 스토리 편집이다. 스스로를 스토리로 설득시키고 무장하라는 메시지다.

윌슨 교수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으면 그 변화의 핵심내용을 끌어내 본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자기 삶 속에 전개되어야 할 이야기(story)를 얽어(editing)보라는 것이다. 이 스토리가 절실하고 합리적일수록 의도한 변화는 더 잘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학교 신입생 김방종군과 이결심양은 경영수학 과목 중간고사에서 D학점을 맞았다. 김군은 “나는 정말 수학에 재능이 없나 봐. 경영학과에 괜히 왔어”라고 생각하면서 수업도 종종 빼먹고 기말고사 준비도 하지 않는다. 경영수학 과목에 거의 포기상태다. 반면 이양은 “고등학교 방식대로는 안 되겠네. 다음 시험 대비 미리 철저하게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어”라고 결심하면서 수업도 꼬박꼬박 출석하고 맨 앞줄에 앉아 교수의 강의를 꼼꼼히 메모한다. 지금 김군은 자기파괴적 순환고리에 갇혀있고 이양은 자기향상적 순환고리에 진입한 대표적 비유사례라 할 수 있다.

고난과 충격을 겪었을 때, 사람들은 재빨리 잊어버리거나 회피하기만 한다. 문제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바로 이때 일정 정도의 객관적 거리감을 두고 찬찬히 글을 써보면 '자기분석'이라는 큰 도움이 된다. <사진=김용길>

의미가 생산되면 포부와 책임감 생긴다

어떤 힘겨운 일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고난의 의미를 해석해본다. 대부분의 해석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 사람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인 스토리와 동일한 뜻)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내러티브가 긍정적인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김방종과 이결심양의 경우가 대조적 사례가 될 수 있다. 부정적 내러티브 징후가 강하다면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회피적 피동적 인간관계 해석에만 머물 가능성이 커진다.

윌슨 교수는 글쓰기 요법을 추천한다. 고난과 충격을 겪었을 때, 사람들은 재빨리 잊어버리거나 회피하기만 한다. 그래서 문제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바로 이때 일정 정도의 객관적 거리감을 두고 찬찬히 글을 써보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사건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저자는 충격적인 고난의 후유증에 대해 처음엔 두서없이 무질서하게 끄적거리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낙서하듯 주절주절 써보다가 결국 며칠 후에는 일관성 있는 줄거리를 건지고 힘겨웠던 경험에 대해 담담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의미가 생산되면 다음 목표가 떠오르고 포부와 책임감도 생긴다.

스토리 편집 접근법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자기 해석을 바꾸어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좀 더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인생에는 얼마든지 속상하고 괴로운 일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스토리 편집은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일종의 매듭을 지은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매일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본질과 그 작동 근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는 행복의 중대한 변수다.

진짜 최악의 상황은 내게 벌어진 나쁜 일의 본질 또는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하게 지내는 것이다. 명백한 자기도피고 책임회피다. 책 <스토리>는 낙관주의자가 성취할 수 인생 편집력을 제시한다. 안락의자에 앉아 긍정적 마인드만 갖추면 만사가 편안해진다는 허황된 자기긍정 계발서는 아니다.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낙관적 행동방식에 관한 전략적 실천서다. 행복은 운이 아니라 편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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