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분류해야 세상이 보인다”

[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③] 어떻게 만나자마자 찰떡궁합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은 분류의 역사다. 너와 나, 우리와 너희, 아군과 적군, 친구와 남남, 육지와 바다, 산과 강, 우기와 건기, 기혼과 미혼, 귀족과 평민, 부자와 빈자, 상류층과 하류층, 고대 중세 근현대, 선진국과 후진국,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인류 문화의 모든 것이 분류의 흔적들이다. 새 분류법은 옛 분류법을 대체한다. 떠오르는 문명이란 새로운 분류방식의 다른 이름이다. 아날로그로 분류되던 현상들이 디지털 방식으로 분류되고 융합된다.? 인간관계도 분류의 연속이다. 매력이 넘쳐 함께 대화하고픈 사람, 속내를 고백해도 꼭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 십년을 함께 생활해도 맨송맨송한 그 사람, 마주쳐도 한마디 말 붙이기가 꺼려지는 사람이 있다. 지란지교 관포지교 죽마고우란 비유도 우정의 한 분류다. 견원지간 불구대천 원수지간도 갈등관계를 상징하는 분류다. 혈액형이 4가지로 분류되듯 사람들의 기질 취향도 분류될 수 있을까.

조선말 이제마선생은 동양의학의 음양론을 발전시켜 사람의 체형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분류하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을 내놓았다. 한의사가 환자에게 진료할 때 사람들을 네 가지로 분류해 체질에 맞는 처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소음인은 엉덩이와 앉은 자세가 크나 가슴둘레는 왜소하다. 유순하고 침착하며 마음 씀씀이가 세심하고 계획적인 성격으로 분류한다. 빙과류나 생맥주 같은 찬 음식을 먹으면 설사하기 쉽고 파 마늘 감자 닭고기 등 덥고 매운 음식이 적합하다.

‘의사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사람의 기질을 담즙질(膽汁質) 흑담즙질(黑膽汁質 우울질) 다혈질(多血質) 점액질(粘液質) 네 가지로 나눴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체액을 혈액 점액 담즙 흑담즙으로 나눠 네 가지의 체액이 인체 내에서 균등하게 존재하지 않고 어느 하나에 치우치게 되어 불완전한 기질을 갖게 되며 주도적인 체액에 사람의 기질이 결정 된다고 본 것이다. 예를 들면 다혈질 인간은 쾌활활발, 사교적, 모임에 주동적, 과시적, 낙천적, 무절제함, 잘 잊어먹음, 잘 끼어듬, 쉽게 화를 냄, 목소리가 큼, 변화무쌍한 감성 등의 특징을 갖는다. 우울질 인간은 분석적, 사려 깊음, 예민한 감수성, 질서정연, 완벽주의, 침울하고 비관적, 외톨이, 내향적, 인기 없음, 까다로운 성격 등의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분류는 인간의 기질을 성격별로 나눠 갈등보다는 화합하는 쪽으로 인간관계를 풀어가기 위한 한 방편이다. 소 닭 보듯 썰렁한 관계는 줄여나가고? 만나자마자 찰떡궁합인? 관계는 늘려보려는 인류의 문화자산인 것이다.

<사진=김용길>

분류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귤 장수가 수레에 귤을 가득 쌓아놓고 팔고 있다. 절반은 크기에 상관없이 무더기로 쌓았고(사진 1번), 절반은 크기를 골라 균등한 크기의 귤만 줄을 맞춰 질서 있게 쌓았다(사진 2번). 지나가는 사람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귤은 어느 쪽일까. 손님은 귤 한 봉지를 살 때 대부분 균일하게 정렬된 귤을 가리키며 한 봉지 담아달라고 주문한다. 동일한 크기로 정렬해두면 귤을 고르는 수고를 덜고 한눈에 귤의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 또 귤 장수와 손님 둘 다 한 봉지에 몇 개의 귤을 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장수가 귤을 선별하고 질서 있게 배열해두면 구매력이 높아진다.

파프리카를 매대에 무작위로 쌓아놓았다(사진 3번). 크기, 색깔, 신선도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다른 쪽(사진 4번)은 균일한 크기와 같은 색깔의 파프리카를 두 개씩 포장한 데다 가격 정보를 포함한 상품 정보 태그까지 붙였다. 과일이나 채소를 분류 포장과정을 덧붙이니 상품으로서 정교해진다. 바로 비즈니스의 출발점이다. 자연 상태에 분류, 배열, 포장, 정보 표시를 추가하니 훨씬 상품력이 높아진다.

편집의 첫걸음은 분류다. 분류란 계통을 파악해 종류를 나누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편집 행위란 사건 발생 상황을 파악해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고 해결 방법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상황을 편집하려면 계통을 따져봐야 한다. 동일 계열끼리 모으고 이질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은 따로 분리한다. 분류를 하면 목록을 만들 수 있다. 전체 수량은 몇 개인지, 몇 가지로 나눠야 팩트 본질에 접근가능한지 가늠할 수 있다. 즉 애매하거나 복잡한 것은 가닥 잡고, 유사한 것은 한데 모으는 분류 과정을 통해 편집력은 강화된다.

<사진=김용길>

백화점의 와인 코너는 분류의 백미다. 먼저 수많은 와인이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미국 스페인 등 제조국가 별로 나뉜다. 해당 국기가 문패에 부착돼 확연히 식별된다. 국가별 와인 매대는 다시 생산 년도 별로 재분류된다. 그 와인은 다시 제조 와이너리별로 한데 모이고 가격대가 저렴하면 하단으로, 고급이면 상단으로 배치된다. 와인 고객은 분류의 규칙만 알면 수많은 와인 병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가격대의 와인을 쉽게 선별할 수 있다.

버리는 것도 분류 과정을 거치면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버릴 땐 재분류를 한다. 가구류 종이류 플라스틱 빈병 비닐류 깡통류 음식물쓰레기 등을 따로 분리하여 재활용업체가 수거해간다. 온갖 잡동사니가 섞여있으면 쓰레기지만 분류되는 순간 재활용가능한 자원이 된다. 자원 리사이클링의 첫 단추는 버리는 행위를 재분류하는 행위로 개념 전환하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한 번에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 소비위주 단견에서 재분류해 유사한 것들은 한 데로 모으는 환경배려 리사이클링 마인드가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한다.

분류를 잘하면 세 가지가 편리하다

첫째, 복잡한 것이 단순화된다.

사건 주인공과 그 주변 환경, 안과 밖, 주체와 객체를 재빨리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누가 무엇을 했고 액션 이전과 액션 이후 뭐가 달라졌는지부터 따져본다.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해악을 끼치는 지를 진영으로 나눠본다. 극단적 단순화의 오류만 피할 수 있다면 모든 이론은 단순화 과정에서 꽃을 피운다. 단순화 과정에서 법칙이 발견되고 인간의 지성은 정교해진다. 분류를 깊이 파고들면 새로운 개념 새로운 차원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다. 학문은 분류의 또 다른 명명이다. 학문은 분류로 발원해 분류를 통해 진화한다. 인문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응용과학으로 분화하면서 수많은 융합과 통섭을 반복한다.

둘째, 분류는 우선순위를 부여해준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당장 급한 것과 덜 급한 것, 핵심과 변방을 구분해준다. 동시에 버려도 되는 것, 생략해도 되는 것, 덜어내도 되는 것을 구별시켜준다. 삶에서 모든 선택은 우선순위를 가리는 행위다. 인생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 소소한 차이점의 출발점이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일이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할 것인가.? 신문사 편집국장은 신문조직의 꽃이다.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은 300~400명의 편집국 기자들을 지휘한다. 하루에 생산되는 수백 건의 뉴스와 분석 기사들의 게재 여부와 편집 순위를 최종 결정하고 최종 책임을 진다. 어떤 뉴스를 1면 톱으로 올리고 어떤 기획기사를 심층보도할 것인지를 재빨리 판단해야한다. 동시에 이 과정은 덜 중요한 기사는 빼고 덜 급한 이슈는 뒤로 미루는 일이다. 한정된 지면에 최고의 뉴스만 엄선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엄선은 그만큼 내공을 기울여 뉴스를 정교하게 설계한다는 의미이고 그 편집 계획 밖의 잔디 잔 뉴스들은 과감하게 버린다는 뜻이다.

셋째, 분류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공자는 일생을 돌아보며 인생을 몇몇 단계로 분류했다.? 15세는 학문에 뜻을 두는 지학(志學)의 단계, 30세는 스스로 자립하는 나이인 이립(而立)의 단계, 40세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불혹(不惑)의 단계, 50세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지천명(知天命)의 단계, 60세는 누가 무어라 해도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않게 되는 이순(耳順)의 단계, 70세는 마음에 따라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從心)의 단계로? 의미부여하면서 평생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자세를 강조했다. 동양권 인생 경영지침의 영원한 화두다.

장수시대가 앞당겨 오면서 ‘인생 칠십’이란 말이 옛말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살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을 넘어섰다. 3년마다 평균 수명이 1세씩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50년 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100살을 넘길 전망이다.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세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유엔은 ‘호모 헌드레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 1모작’이란 말이 사라지고 있다. 평균 80세 이상 인생을 영위한다고 볼 때 50대 은퇴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으로 제2의 인생을 꾸려야 한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길어진 생의 노년이 재앙이 변할 수 있다. 자신의 전 생애를 성찰하고 분류해봐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연장된 삶의 기간에 필요한 것들을 무엇일까. 한정된 퇴직금으로 무엇에 도전할 수 있는지, 기존 경력과 새로운 경력을 융합하기 위해선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 것인지, 고정소득이 얼마인데 적정한 노후를 보내기위해선 평균소득은 얼마만큼 유지되어야 하는지, 도전할 것과 집중할 것 위주로 지금까지의 생을 재분류해볼 필요가 있다. 본인의 주체적 역량이 뛰어나면 인생 3모작까지 가능하다. 50대까지 인생 1모작을 완료했다면 제 삶을 재편성하여 인생 2모작에 돌입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분류는 삶의 기회와 선택권을 압축해준다. 초반전에 실패했어도 후반전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다. 준비하지 않으면 되는대로 살게 된다. 유비무환이 편집력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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