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마음이 열린다”

[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④] 쌓아둔 그대의 욕심을 치워라

왜 내 마음은 항상 복잡한가. 왜 내 책상, 방은 뭔가로 가득 쌓여 있는가. 비워내지 못하니 쌓인다. 쌓이면 지저분하고 분별이 안 된다. 덜어내지 못하고 갈무리 안 된 내 심사는 불안해지고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내 책상 위 어지러운 모습이 내 마음 속 풍경을 닮았다. 온갖 잡동사니 책들로 켜켜이 쌓인 책장이 여유와 여백 없는 내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당장은 쓸 데가 없다. 하지만 버리긴 아깝다. 바로 이 지점이 마음 속 갈등의 출발점이다.

결혼 때 혼수품목으로 마련한 호화 그릇세트가 세월의 더께만 낀 채 부엌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찻잔, 접시, 냄비는 해마다 늘어난다. 냉장고, 냉동실은 온갖 비닐봉지로 싼 음식물로 가득하다. 장롱과 옷장은 입지 않는 옛날 옷들, 심지어 몇 십 년 지난 옷들로 채워진다. 10벌이 있다면 손길이 가는 옷은 기껏 두세 벌. 나머진 그저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한번 구입한 책은 버리지 못한다. 언젠간 다시 꺼내볼 것 같아 쌓아두니 십 년째 먼지만 쌓이고 있다. 책장은 자꾸 무거워지고 고문서 보관대가 되어간다. 컴퓨터 속 문서나 이미지 파일에 넣어둔 수많은 자료들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무엇이 얼마나 어디에 들어 있는지 모른다. 오늘 당장 과제에 허겁지겁 매달려 살다 보니 빛나던 과거에 보관된 추억들은 살아나지 못하고 더욱 깊은 과거 벽장 속으로 침잠해버린다.

비우지 않으면 정서적 동맥경화

버릴 때가 됐다. 보관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진정한 실천이란, 당장 소용이 없는데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붙잡을 때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삶을 대하는 내 마음이 복잡해졌다면 바로 내 심리적 용량이 한계를 초과했다는 뜻이다. 내부 수용량이 적정기준을 넘어 넘실거릴 때 혼란해지고 심란해진다. 바로 이 때가 비워야 할 시점이다. 비우지 않으면 용량초과로 마음이 순환되지 않고 심리적 혈관들이 막히기 시작한다. 정서적 동맥경화에 자아분열까지 닥친다.

편집력은 넘치기 전에 덜어내고 보관 전에 선별하여 잘라내는 선구안이다. 소유할 것이 많아지고 알아둬야 할 관계가 넘쳐날 때 재배치와 재배열을 통한 편집행위가 필요하다. 뒤죽박죽 내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지름길은 바로 비움이다. 내 방, 내 집을 계속 늘려만 가는 길은 더 큰 뒤죽박죽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수납의 한계를 정하고 버릴 것을 선별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수납공간 더 이상 늘리지 말아야

한 사람의 의식주 범위는 의외로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최소한의 범주에서 먹고 입고 살아가는 간소화가 그 첫째다. 보관능력이 커지면 낭비공간도 늘어난다. 수만 권의 장서능력이 더 이상 미덕인 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대문호의 서가를 가질 필요가 없다. 전광석화 디지털 시대, 전자책 한 권 다운받는 데 10초면 된다. 장편영화 한 편 다운받는 데 90초면 된다. 수십 권 들어가는 작은 책장 하나면 행복하지 아니한가. 스마트 디지털 시대, 좋은 책은 보관보다 좋은 벗과 공유해야 그 가치가 아름답게 빛난다.

사유(私有)를 줄이고 공유(共有)를 늘리는 것이 간소화의 묘책이다. 최근 호주 시드니대학 중앙도서관에서는 소장 도서의 절반에 달하는 50만 권의 종이책과 논문들을 버렸다고 했다. 전자책과 전자논문이 그 대신 자리를 메웠다. 디지털화는 공유의 훌륭한 수단이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쓰이지 않고 어두운 창고에 내버려져 있다면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옳다. 일단 내 손에서 멀어진 물건은 떠나 보내도 좋다. 행동반경 동선에서 멀어진 대상은 내 것이라도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묵은 물건을 박스와 벽장 속에 가둬두고 있을 것인가. 알뜰살뜰 모아두었지만 더 이상 쓰임새가 없는 살림살이는 성가신 짐일 뿐이다. 맞지 않는 옷은 재활용박스로 옮겨라.

다 자란 청년의 어린 시절 잡동사니 장난감도 이젠 치워라. 저 깊숙한 수납공간에 저 혼자 버려진 소품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두라. 그 마저 넘친다면 가물가물한 추억의 파일은 ‘Delete 키’를 눌러도 좋다.

본래 기능으로 되돌리는 편집력

물건은 제 용도에 맞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피아노가 소품 전시대가 돼선 안 된다. 책상이 서류보관대가 되는 순간 좁아진 책상은 지식의 산실이 되기 어려워진다. 휴지통 또한 늘 비워져 있어야지 꽉 찬 휴지통은 기능 상실이다. 물건의 용도가 혼란스럽게 흩어진 공간은 주인의 산란한 심리상태만 드러낼 뿐이다. 집은 휴식공간이지 보관창고가 아니다.

생활은 과거에 사로잡힌 완료형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만끽하는 진행형이다. 버려야 할 것은 즉시 비우고 쌓인 것은 치워야 한다. 적기에 가감해야 삶의 정체현상이 방지된다. 내 몸도 내 마음도 과도한 영양과 지방을 담고 있지 않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도록 비워져야 한다. 여백이 없는 인생, 편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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