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⑧]편집, 존재의 최적화 행위

편집의 첫걸음은 분류다. 분류란 계통을 파악해 종류를 나누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편집 행위란 사건 발생 상황을 파악해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고 해결방법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상황을 편집하려면 계통을 따져봐야 한다. 같은 계열끼리 모으고 이질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은 따로 분리한다. 분류를 하면 목록을 만들 수 있다. <사진=김용길>

생명체 활동의 본질은 ‘정보 편집’

일본 최초 에디토리얼 디렉터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 편집공학연구소장은 지식독서법의 대가다.등의 저서로 한국에도 이름을 알렸다. 그의 관심사를 요약하면 ‘편집공학(Editorial Engineering)’이다. 마쓰오카 소장은 신문·서적·TV·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편집’의 의미와 용법을 확장시켰다.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서 정보를 얻을 때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두 편집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삶에서 편집의 순간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일기를 쓰는 것도,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저녁 식단을 짜는 것도, 축구경기 하는 것도 편집이다. 생각하는 것이나 쓰는 것도 편집이다. 심지어 생명체 활동의 본질 자체가 정보 편집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는 ‘편집이란 대상의 정보 구조를 해독하고 그것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생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나아가 일본이란 나라를 아예 ‘편집국가’로 정의 내렸다. 이 개념으로 편집력을 재정의 해본다면 ‘산재한 팩트와 스토리를 취사선택 가공하여 완결된 콘텐츠로 종합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3각 파도로 덮치고 있다. 지난날은 씁쓸했고 오늘은 버겁고 내일은 불확실하기만 하다. 못 다한 회한이 쌓여서 그런가. 과거는 열등감으로 깜박거린다. 전전하는 생계의 굴레에 갇힌 현재는 변화의 급물살에 허둥대고 있다. 모든 게 흔들리고 불안정하니 미래는 잿빛이다. 국가가 체제가 시민사회가 지역공동체가 회사가 학교가 내게 진정한 행복과 위안을 줄 수 있을까. 사실 모든 것은 개인 스스로 말미암고 스스로 절차탁마할 몫이다.

눈앞의 책 한 권을 두고 읽을지 말지를 판단해야 한다. 영화 한편 연극 한편 TV드라마 한편을 감상할지 말지 분별해야 한다. 새로 소개받은 만남의 인연을 지속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지식과 지혜라고 일컬어지는 정보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세상을 다 얻은 듯 컴퓨터 화면을 여러 개 켜놓고 둘러보아도 삶은 제대로 조망되지 않는다. 오늘 내가 지켜본 모니터화면의 개수가 도대체 몇 개였던가. 판단 분별 선택이란 행위가 나의 하루를 채웠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왜 편집력이 필요한가

바쁜 현대인. 스스로 좋아서 바쁜 것이 아니라 변화의 쳇바퀴에 갇혀 무작정 내달린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변화의 파도가 밀려온다.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뉴스 업데이트를 알려준다. 오전 뉴스는 오후 뉴스에 쫓겨 몇 시간만에 사멸한다. 디지털 미디어 기기들이 끝없이 신제품의 얼굴로 들이닥친다. 다매체 다채널 SNS 시대. 정보 업데이트 중독증에 빠진 현대인은 점차 경중완급을 분별하지 못한다. 진지함에 둔감해지고 변화의 속도에 치인다. 일상의 사리분별력도 희미해진다. 내가 정보의 주인인지 정보의 노예인지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다.

바로 이때가 편집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력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고 무작위로 널려진 것을 재배치 재배열하여 질서를 부여한다. 여럿 중에 핵심을 선택하고 먼저 세울 것과 나중 세울 것을 분류한 다음 제각각 본질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편집이다. 즉 편집의 3대 기능은 ①선택 분류 ②가치 부여 ③이름 짓기다. 이 과정은 따로 떼어지지 않고 물과 물고기처럼 밀착되어 있다.

삼라만상을 편집한다는 것은 그 존재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행위다. 개체는 생존을 위협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시 하며 생존능력을 최적화시킨다. 넘치는 것은 줄이고 부족한 것은 채워 타고난 기질과 개성을 바탕으로 생존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상태다. 존재는 끊임없는 편집의 결과다. 일상은 편집의 연속이다. 우후죽순 얽힌 만남을 가지런하게 가닥 잡고 소중한 인연은 더욱 도탑게 다독이는 과정이 관계의 편집이다.

편집력 갖춘 조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비즈니스 성패도 편집력에 좌우된다. 고객의 미래를 내다보고 수요처와 공급처를 선점한다. 범용시장이 아닌 차별화된 시장을 지향, 고객의 니즈에 맞는 특화된 서비스와 콘텐츠를 발굴하는 능력이 비즈니스 편집력이다. 일이 터지면 오히려 강해지는 조직은 뭔가 다르다. 유형무형의 정보창고를 양적으로 많이 확보한 조직이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산재한 지를 파악한 조직이 문제 접근, 문제 분석, 해결책 제시, 실천 돌입, 방법론 평가 순으로 내부 순환이 원활하다면 편집력을 갖춘 조직이다.

문제를 개념화할 줄 알고 실천가능한 방법론을 일목요연하게 추려내는 조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편집 감각을 갖추고 있으면 위기대처 능력이 증강되고 평범한 것에서도 고부가가치를 뽑아낼 수 있다. 편집력은 결단력이기도 하다. 위중한 시기에 분리된 것을 이어붙이고 애매모호한 것을 두 동강 내 확연히 가르는 것도 편집력이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타인들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형국에서 먼저 공익적 가치를 간파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명쾌하게 설파하는 리더십은 결단력의 요체다. 비전 제시 리더십은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교감을 주고받는 편집력의 핵심이다.

세상은 분야가 있고 순서가 있다. 어떤 장르의 과업이든 매뉴얼이 있고 비법이 있다. 문제해결의 첫 단추는 벌어진 사태를 차분히 응시하면서 흥분된 현장 속에서 본질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사실의 조각, 진실의 조각을 하나하나 수집한다. 동시에 먼저 해야 할 것, 나중에 할 것을 선별한다. 장황한 것엔 진실과 허위가 섞여 있다. 헛것을 추려내고 거품은 꺼뜨려야 한다. 바로 압축이 필요한 이유다. 본질만 남기고 몸집을 줄였다면 군더더기 없는 태그를 달아라. 명료한 깃발에 새겨진 태그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최고의 헤드라인이 된다.

편집의 첫걸음은 분류다. 분류란 계통을 파악해 종류를 나누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편집 행위란 사건 발생 상황을 파악해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고 해결방책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이다. 상황을 편집하려면 계통을 따져봐야 한다. 동일 계열끼리 모으고 이질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은 따로 분리한다. 분류를 잘하면 목록이 만들어진다. 애매하거나 복잡한 것은 가닥 잡고, 유사한 것은 한데 모으는 분류 과정을 통해 삶의 에너지인 편집력은 강화된다. 편집력은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당장 급한 것과 덜 급한 것, 핵심과 변방을 구분해준다. 동시에 버려도 되는 것, 생략해도 되는 것, 덜어내도 되는 것을 구별시켜준다.

삶에서 모든 선택은 우선순위를 가리는 행위다. 인생 성패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 소소한 차이의 출발점이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일이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편집력은 넘치기 전에 덜어내고 보관 전에 선별하여 잘라내는 선구안이다. 소유할 것이 많아지고 알아두어야 할 관계가 넘쳐날 때 재배치와 재배열을 통한 편집행위가 절실하다.

삶은 과거에 사로잡힌 완료형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만끽하는 진행형이다. 버려야 할 것은 즉시 비우고 쌓인 것은 치워야 한다. 적기에 가감해야 삶의 지체-정체현상이 없어진다. 내 몸도 내 마음도 과도한 영양과 지방을 담고 있지 않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도록 비워져 있어야 한다. 여백이 없이 부스러기로 꽉 찬 인생, 편집이 필요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