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⑩] 이미지가 당신, 당신을 편집하라

우리는 메시지 내용에도 영향 받지만, 미디어 자체로부터 받는 영향이 더 크다. 미디어 자체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전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미지다. 주도적인 이미지 획득이 독자적 삶의 첫걸음이다.

주체적 매체 활용·조합 방법론

“저 사람은 이미지가 참 좋아”
“저 사람은 마주보고 싶지 않는 얼굴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엔 정(情)이 흐르고 정보도 흐른다. A와 B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A는 B에 대한 이미지를 품게 되고 B는 A에 대한 이미지를 축적해나간다. 이미지 강도는 A와 B 둘 다 동량 동질이 아니다. A에게 B는 강력한 이미지로 형상화돼 있으나 B에게 A는 수수한 이미지일 뿐이다.

당신의 이미지란 ‘타인이 보고 느낀 당신의 모습’을 말한다. 이때 이미지의 주체는 나지만 이미지의 평가주체는 타인이다.

본질은 이미지를 통해 발현된다

그렇다면 나의 이미지는 주체인가 객체인가. 한 개인의 이미지가 단일화되지 못하고 분열될 수밖에 없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미지는 형용사 형태로 표현된다. 평범하다 아름답다 지적이다 품위있다 귀티난다 섹시하다 예민하다 허약하다 무모하다 비굴하다 교활하다… 등의 서술어로 당신은 평가된다.

남들이 어떤 느낌으로 나를 평가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타인들이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를 원한다. 그런데 타인이 파악하고 있는 나에 대한 이미지는 정확한 것일까. 남이 알고 있는 나에 대한 이미지 조각들은 정말 ‘나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을까.

나를 둘러싼 여러 이미지 파편들이 모이고 합쳐져 현실 속의 내 평가를 이루고 있다. 그 이미지 평가가 힘을 발휘할수록 내 자신의 본질은 자꾸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타인의 시선이 자아의 시선을 압도하면서 자기 정체성이 현실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미지 영향력 아래 종속되어 버린다. 어느덧 타인이 규정하는 이미지적 허상에 순종하게 되고 말과 행동에도 제약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나의 중심이 흔들린다. 불안할수록 타인의 평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토록 중차대한 나의 이미지를 그저 타인의 주관적 평가에만 맡겨둔 채, 무기력하게 방관해야할까. 자신의 이미지가 ‘타인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라고 정의내리는 한 나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타인이 먼저 나를 규정하고 나는 타인의 선입견에 따라가는 형국이 된다. 이제 나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내 이미지 이니셔티브를 장악해보면 어떨까.

발상을 바꾸면 이미지란 ‘내가 타인에게 공개하기를 선택한 내 부분들의 총체’가 아닐까. 이미지 자기결정권은 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캐릭터를 본질이란 우물에서 길어 올려 극대화시킬 것인지, 우물 속 밑바닥에 더 깊숙이 파묻어둘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다. 주도권을 행사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타인에게 투사할 수 있는 이미지는 여럿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여러 겹 당신의 이미지를 누구든지 ‘당신의 동의 없이’ 형성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의 우유부단한 이미지는 당신이 우물쭈물한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었거나 불안한 모습을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타인이 갖고 있는 당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원인은 당신 스스로 방관 방치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주도적 이미지 편집력을 스스로에게 강단지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눈으로, 나의 어떤 면을 보았느냐에 따라 나의 이미지는 실제의 나와 다르게 왜곡될 수 있다. 다행히도 내 자신을 어떤 각도로 보여주는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여기서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명언이 등장한다. “매체가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 활용할 수 있는 미디어를 어떻게 부리느냐에 따라 타인에게 전달되는 우리의 이미지를 얼마든지 달리할 수 있다.

미소, 웃음, 침묵, 무관심, 분노, 슬픈 표정, 속삭임, 이메일, 문자전송, 카톡 대화, 사진찍기, 쪽지 보내기, 음악전송, 스마트폰 컬러링, 장미꽃 보내기, 책 선물, 로맨스영화 관람… 내 마음이 담긴 모든 행위가 나의 미디어다. 나의 본질을 노출시켜 전달하는 매체를 내게 유리하게끔 활용 조합 편집하는 방법론이 이미지 전략이다. 바로 내 자신이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작품 ‘잘못된 거울 (Le faux miroir)’. 자신의 이미지가 ‘타인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라고 정의내리는 한 나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타인이 먼저 나를 규정하고 나는 타인의 선입견에 따라가는 형국이 된다. 이제 나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내 이미지 이니셔티브를 장악해보면 어떨까.

매체가 곧 메시지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바탕 이미지가 흔들리면 불안해한다. 자신의 본질은 자신의 ‘이미지 아바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역전 현상도 벌어진다. 의도적으로 선택된 이미지들이 그 자체의 세계를 창조하고 인위적으로 선택된 그 이미지가 다시 후속 이미지를 결정하는 ‘이미지의 이미지(Images of Images)’ 현상까지도 나타난다.

독자적 자기 이미지는 생산하지 못하고 외부 이미지만 소비하는 사람이 현대사회 이미지중독 군중이다. 능동적인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창출 관리한다. 깨어있는 사람은 지향해야 할 목표와 목적을 뚜렷하게 설정해 놓고 자신의 이미지 우물 안에서 긍정적 이미지를 반복해서 끌어 올린다.

실재 그대로를 모사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진실. 이미지와 진실 사이에 늘 긴장된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을 메워나가는 일이 인생의 비밀을 풀어가는 ‘열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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