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⑬] 과거를 편집하는 3가지 방법

기억 속 시골 미루나무는 더벅머리 총각 이미지.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풋풋한 호연지기의 표상이기도 했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울까. 향기롭던 추억이 세월의 더께를 뒤집어쓰면 구슬픈 추억이 되기도 한다. 아픈 추억은 잊고 싶고 행복한 추억은 내내 기억하고 싶다. ‘인생 편집력’의 기본은 나쁜 일을 줄이고 좋은 일은 늘리는 것. 부정적인 과거는 털어내고 꿈의 설계도에 현재를 다 걸어라. <사진=김용길>

과거가 현재의 나를 삼키려할 때 적기에 삭제(Delete) 키를 눌러라.

서울 청계천 가로수 이팝나무를 쳐다보다가 어린 시절 신작로 미루나무를 떠올린다. 기억 속 시골 미루나무는 더벅머리 총각 이미지.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풋풋한 호연지기의 표상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교정을 둘러싼 플라타너스, 고교 운동장을 에두른 느티나무는 여린 소년의 마음을 다독였다. 태풍이 강변을 휩쓸 때 버드나무는 밤새 시달렸다. 빗발 그치면 산발 머리 세차게 도리질 한 후 힘겨운 허리 펴면서 일어섰다.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들판을 가로질러 온다. 뒤안길 대나무 숲을 헹궈내듯 쓸어대면 대나무 이파리들 숨겨진 전설을 두런거린다. 이렇듯 과거의 사금파리를 떠올리면 추억의 풍경이 펼쳐지고 그 시절 주인공이 타박타박 걸어 나온다.

하루를 살아냈다. 만만한 삶이 어디 있으랴. 다들 버겁게 생업을 치러내며 오늘을 어제로 보냈다. 지난 일들이 과거라는 고샅길을 지나 레테의 강을 건널 채비를 한다. 지나온 시간과 밟아온 궤적 모두가 기억 속에 보관되지는 않는다. 바닥 모르는 심연으로 가라앉거나 먼지처럼 허망하게 부유하기도 한다. 회상의 뚜껑을 열자마자 휘발되거나 탈색되기도 한다. 기억의 창고엔 추억의 편린들이 경중완급 없이 흩어져 있다.

과거를 꺼내 만져보는 일은 감성적 되새김질이다. 우리는 언제 과거를 꺼내보는가. 대부분 시련을 맞닥뜨릴 때다. 과거는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도 없다. 과거는 내 희로애락의 스토리와 버무려져 기억의 시렁위에 얹혀있다. 말라버린 꽃다발처럼 향기도 없고 다가오는 시선도 드물다. 과거는 추억이란 고갱이로 갈무리되면 더욱 외로워진다. 추억은 무작위로 출몰한다. 한의원 약장처럼 이름표 달고 일목요연하게 분류되지 않는다. 도서관 서적 분류방식처럼 논리적이지도 않다.
추억이란 수많은 기억 요소들 가운데 간추려져 편집된 한 장의 삽화다. 퇴적된 과거 에피소드 뭉치를 단층 촬영한 추억은 기쁨 슬픔 상처 이별 모두를 담고 있다. 영국 역사학자 E.H.카(1892~1982)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과정’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추억도 과거와 현재의 심경이 맞물려 빚어낸 머릿속 임시 파일이 아닐까. 고정불변한 추억은 없다. 추억의 수명과 생명력은 현재의 처지에 따라 출렁거린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울까. 향기롭던 추억이 세월의 더께를 뒤집어쓰면 구슬픈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픈 추억은 잊고 싶고 행복한 추억은 내내 기억하고 싶다. 과거를 편집하여 흐뭇한 추억으로 추려보는 3가지 마음가짐을 살펴본다. 왜냐하면 숱한 과거를 다 품고 다 껴안기에는 우리 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첫째,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라.

완벽해야한다는 강박증은 과거의 실패에만 집착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해 대중 앞에 나서지도 못한다. 자기 확신이 부족해 새로운 시도를 못하고 몇몇 추억에 과도하게 매달린다.
토크쇼의 최고 브랜드로 자리 잡고 국제적 사회사업가로 활동하는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자신이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어렸을 적 사촌형제에게 성폭행 당해 14살에 임신까지 했다고 고백한다. 가난한 흑인소녀의 기념비적 성공담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과거의 절대불행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과거와 싸워 이겼다. 세상과의 소통을 택해 자신을 건강하게 일으켜 세웠다. 그는 경청의 달인이다. 누구든지 오프라 윈프리와 대화를 나누면 스스로 알아서 마음의 문을 여는 현상도 생겼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Oprahization(오프라化)’이라고 명명했다. 이 신조어는 ‘속마음이나 과거의 철없는 행동을 만인에게 털어놓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 과거가 현재의 나를 삼키려할 때 적기에 과거 삭제(Delete) 키를 눌러라.

둘째, 현재를 즐겨라(Seize the days).

라틴말로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1989)에서 영어교사 존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이 성적 향상만 중시되는 삭막한 교실에 갇힌 학생들에게 외친 말이다. 명문대 입학만을 지상과제로 삼도록 강요당하는 제자들. 키팅 샘은 청춘이 마땅하게 누려야할 인문적 상상력을 강조하며 “현재를 즐겨라”고 설파한다. “시인 프로스트는 숲 속의 두 길 중 왕래가 적은 길을 택했다. 그 길이 시인을 만들었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라. 방향과 방법은 스스로 선택하라. 걷고 싶은 대로 걸어라. 전통에 도전하라.”
카르페 디엠은 ‘향락하라’(Enjoy the present)는 말이 아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자신을 펼치고 표현하라는 의미.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셋째,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

미래의 설계도가 없을 때 과거에 붙들린다. 꿈꾸기가 없으니 닥치는 시간이 버겁다. 해야 할 과제가 없으면 허망한 추억만 들춰 감상에 빠지기 일쑤다. 3분의 1을 머뭇거렸다면 남은 3분의 2를 잘 설계해야 한다. 생애 절반을 낭비했다면 남은 절반은 꼭 건져야 한다. 인생 3분의 2가 지났다면 남은 3분의 1에 ‘올 베팅’해야 한다. 아름다운 추억이란 꿈꾸기를 시도하다 생겨난 ‘훈장’이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의 최고 어록은 ‘이봐, 해봤어?’다. 과도한 심사숙고는 패배주의다. 돌다리마저 두들기다간 인생 다 간다. ‘생의 편집력’ 기본은 나쁜 일을 줄이고 좋은 일은 늘리는 것. 부정적인 과거는 털어내고 꿈의 설계도에 현재를 다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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