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올레길]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올가을 빨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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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설1

가까운 미래. 기술발전과 경제성장만 내세우던 세계는 지구적 규모로 번져오는 자연재해에 두 손 들고 만다. 70억 인류는 자연과 기후를 망칠 수는 있어도 원래상태로 되돌릴 순 없는 욕망덩어리였기 때문. 대륙적 규모로 불어오는 거대 황사는 병충해 확산과 맞물려 초미의 식량 부족 사태로 이어진다. 생명의 발아 공간인 흙이 메마른 유해 흙먼지로 변해 식물 종자를 멸종시키고 인류가 먹을 식량은 동이 나 폭동 발발 직전이다. 밀과 쌀이 사라지고 옥수수밭만 겨우 남아있다. 켜켜이 쌓이는 먼지로 사람들의 폐는 병들고 개별적 국가체제와 국제기구도 허울만 남아있다. 지구멸망을 점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만 간다.

# 가설2

슈퍼파워 미국의 예산만 잡아먹는 주범으로 몰린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예산을 빼앗기고 해체 당했으나 비밀리에 복원되어 인류 구원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정확히 말하면 현존 인류 전체를 구조하는 작전이 아니다. 인간 생존 가능 환경을 가진 ‘제2의 지구’를 찾아내 소수의 선택된 인류 대표들만 그 곳으로 집단이주하는 계획인 것이다. 그래서 거대한 지하기지 전체가 우주정거장으로 설계되어 있는 비밀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NASA는 태양계를 탈출해 ‘제2의 지구’가 될 만한 행성 발견의 임무를 띤 12명의 과학자들을 이미 선발대를 보냈다. 드디어 미지의 우주 공간 12곳의 후보 행성 가운데 3곳에서 송신하는 긍정적인 전파 신호가 잡혔다.

지상최대 SF영화의 종착점은 결국 인간과 사랑

7살부터 카메라를 갖고 논 40대 중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최신작 <인터스텔라>에서 이런 2개의 가설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오게끔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준다. 명멸해가는 흙먼지 속 지구의 절망이 절절하고 그 탈출구로써 머나먼 우주는 상상력의 천장을 뚫고 확연하게 다가온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표작들은 결코 쉽지 않은 철학적 주제들을 담고 있다.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다룬 <메멘토>, 슈퍼히어로를 내세워 정의와 선택의 문제를 다룬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 꿈과 현실의 경계를 해체시켜버린 <인셉션>이 그러했다. 그의 영화는 늘 상식을 뒤집는 지적 유희를 보여준다. 일상을 깨부수는 기상천외한 설정 속에서 날카로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1년 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가 무중력의 공간으로서 우주를 영화적으로 재현해냈다면 <인터스텔라>는 이를 뛰어넘어 시공간의 개념 자체가 다른 5차원적 우주를 체감하게 만든다.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 동안 광활한 우주로 떠나는 영화의 종착점은 결국 인간과 사랑이다. 장기간 우주 동면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당신은 누구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은가. 결국 삶의 벼랑 끝에선 사랑하는 사람만이 나를 구원한다.

전직 최정예 파일럿이었던 옥수수 농부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뇌암으로 아내를 잃고 남매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10살짜리 딸 머피는 자꾸 자신의 방 서가의 책들이 저절로 잇달아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며 아빠에게 “유령의 짓 같다”고 묻는다. ‘유령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딸의 말을 무시하다가 반복되는 그 메시지가 한 장소의 좌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좌표를 따라 찾아간 비밀의 그 곳에는 해체된 줄 알았던 NASA가 있었다. 그들은 거대 우주 정거장과 우주 비행선을 만들고 있었다. 지구는 멸망할 것이고, 그래서 인류의 새 터전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서는 미션을 브리핑 받는다. 동시에 쿠퍼는 미션 책임자 브랜드 박사로부터 우주비행선의 조종사로 나서달라는 운명적 요청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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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 밖의 제 2의 지구를 찾아라”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행성을 찾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 ‘웜홀(worm hole)’이 발견됐고, 그곳을 통해 여러 별들 중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하는 미션이다. 쿠퍼는 지구 귀환이 보장되지 않는 미션을 받아들인다. 쿠퍼는 지구에 남아 있는 가족들, 특히 딸 머피의 미래를 위해서 역설적으로 가족을 떠난다. 유령의 최종 메시지가 “가지 말라(STAY)였다”며 울면서 막아서는 딸의 말을 뒤로 한 채, 그는 떠난다.

어느 ‘제2의 지구’ 후보 별에서 체류한 1시간은 지구의 7년에 해당된다. 생명체 없는 빙하의 별도 있었다. 소소한 시간이 흘렀지만 시간의 속도 차이로 지구에 남겨진 딸은 이미 아빠와 같은 나이가 된다. 우주과학자로 자란 딸은 지구인들이 탑승한 거대 우주 정거장이 우주 항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력 방정식의 비밀을 풀려고 애를 쓰고 있다. 우주 망망대해 일엽편주 만신창이 우주선에 홀로 남은 아빠와 지구의 딸은 재회할 수 있을까.

<인터스텔라>는 결코 쉽지 않는 과학영화다. ‘웜홀을 통해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의 연구 이론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킵 손의 이론에 따르면 웜홀은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벽에 난 일종의 ‘구멍’으로, 웜홀을 통해 이동하는 것은 벌레가 사과의 정반대 지점으로 이동할 때 사과 표면보다 사과의 중심에 뚫린 구멍을 통하면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킵 손은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해 과학적 이론을 거스르는 부분이 없는지를 검토했다.

각본 담당 조나단 놀란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실제 동생이다. 그는 영화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상대성 이론’을 익히기 위해 캘리포니아공대에서 4년간 공부했다. 일반인들이 한 번도 상상할 수 없던 블랙홀 이미지가 한 번 스크린에 구현되면 그대로 관객들의 뇌리에 심어지고 마는 결과에 진지하게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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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깊은 연출과 천재적인 영상 편집력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중력’ 개념으로 확장시켜 지난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공간은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곳에서 휘어지며 그 힘이 강할수록 휘어짐도 강해진다. 끌어당기는 힘이 무한정 강해질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블랙홀’이 생성된다.

‘블랙홀’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당겨 절대 밖으로 뱉어내지 않는 이론상의 천체다. ‘웜홀’은 이론상 ‘블랙홀’과 그 반대 개념인 ‘화이트홀’을 연결해주는 통로다. 웜홀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 그 누구도 블랙홀을 목격하거나 체험한 적 없다. 매일 관객 동원의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영화 덕분에 이제 웜홀은 학자만의 가설 지식에서 지구인 교양상식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태양계 인류가 또 다른 태양계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체험하면서 관객은 169분 동안 눈과 귀를 하염없이 열게 된다. 회전하는 블랙홀 조망, 웜홀을 관통할 때의 실제감, (지구와 다른) 중력에 따른 시간지체 현상, 쿠퍼가 블랙홀의 5차원에서 3차원 딸의 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장면 등은 영화 역사상 처음 구현되는 놀라운 SF 판타지 사건임이 분명하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의도적이었다”는 놀란 감독은 “감성적 이슈, 즉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그는 “결국 차가운 우주와 따뜻한 인간 감성에 대한 극명한 대비를 말하고 싶었고,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가 어디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살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과 우주로 나간 인간의 삶은 어찌 보면 평행선으로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우주가 배경이 되면 확실히 죽음에 대한 문제가 확대되고, 그것은 곧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위치는 어디인가’ 등의 질문으로 이어지죠. 영화는 그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인터스텔라>엔 제작비 1억6500만 달러(약 1800억 원)가 투입됐다. 우주 시간을 관통하는 감독의 사유 깊은 연출과 천재적인 영상 편집력은 볼거리 위주의 황당한 SF영화 생산이 아닌 생생한 인류의 미래 모순을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먼 앞날의 스토리를 말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현재를 통찰하고 있다. 그대 바쁘다면, 당신의 자녀만은 이 영화 꼭 체험하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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