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외로운 그대, 그녀에게 말해요”
타이틀 : 그녀에게 (Talk to Her, Hable con Ella)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하비에르 카마라, 다리오 그란디네띠, 레오노르 발팅, 로사리오 플로레스
수상?: 2002년 유럽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등 5개 부문 수상
? ? ? ? 2003년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감독상 노미네이트
? ? ? ? 2003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
제작국가 : 스페인
개봉?: 2003년
나는 당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어요
영화 한편에 외로운 사람들이 가득히 나옵니다. 삶이 버거운 인생들이 즐비합니다. 오늘도 광장을 가로지르며 우왕좌왕 부딪히며 바쁘기만 합니다. 말은 쏟아지지만 되레 다가오는 것은 소통장애. 일찍이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화려하게 펼쳐진 정보 소통의 시대.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슴 답답한 소통부재 중증에 걸려있습니다. 영화 <그녀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하염없는 외로움이 어쩌면 삶의 피할 수 없는 전제조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자간호사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는 뇌사상태 발레리나 지망생 알리샤(레오노르 발팅)를 4년째 돌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하나.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베니그노는 자기집 2층 창가에서 붉은 색 커튼을 제치고 알리샤를 처음 보았습니다. 집에서 내려다보면 건너편 1층 발레학원생들 연습하는 모습이 잘 보입니다. 알리샤는 늘 똑같은 위치에서 연습했습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그녀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긴 목 부드러운 어깨 기쁨에 찬 알리샤 얼굴에서 베니그노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베니그노는 몸져누운 어머니를 병간호하기 위해 간호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피부마사지 미용 염색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침대에 누워계시지만 어머니를 아름답게 해드리고 싶어”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 베니그노야, 이제 스스로를 돌봐야한다. 집에서만 머물지 말고 세상 바깥으로 나가야한다. 창가로 가서 내다봐라. 그리고 여행을 떠나거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베니그노가 창가에서 첫 발견한 존재가 바로 알리샤입니다. 어느 날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알리샤가 지갑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격한 베니그노는 급히 뛰어 내려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말을 겁니다. 지갑을 돌려주면서 통성명을 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알리샤는 여행을 좋아하고 흑백영화를 즐겨본다고 합니다. 길거리를 사이에 두고 헤어졌으나 베니그노는 알리샤가 들어간 건물을 기억해둡니다.
비가 내리는 날. 무용학원에 알리샤는 보이지 않습니다. 궁금한 베니그노는 창가에서 무용학원을 주시합니다. 뭔가 연락을 받은 무용학원 원장 카타리나 (찰리 채플린의 딸 제랄딘 채플린 열연)가 황급히 외출은 합니다. 알리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베니그노는 긴 잠에 빠진 알리샤 전담 간호사 2명 중 한사람으로 채용됩니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그녀의 손톱을 다듬고 예쁘게 매니큐어 해줍니다. 동료간호사와 함께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잘라주고 염색까지 해줍니다. 돌보는 베니그노의 손길은 사랑이란 정성이 아니면 불가능할 정도로 예민하고 지극합니다.
베니그노가 무용극 공연 객석에 앉아 있습니다. 발레를 배웠던 알리샤에게 무용극 감상을 들려주기 위해서 비번시간이 되면 알리샤의 시선으로 무대를 응시합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 전반부에 무용극 ‘카페 뮐러(Cafe Muller)’를, 후반부에 ‘마주르카 포고(Masurca Fogo)’을 배치합니다. 현대무용의 거장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가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 출연합니다.
막이 오르면 눈을 감은 두 여인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쥡니다. 무대위엔 의자가 가득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여자들은 벽에 부딪히고 한 쪽의 남자는 여자들이 부딪히지 않도록 의자를 치워줍니다. 슬픈 음악 속에 그녀들의 춤사위가 흐느끼듯 흐릅니다. 베니그노 옆 좌석 덩치 큰 남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베니그노는 울고있는 남자 마르코를 조용히 응시합니다.
병실로 돌아온 베니그노는 알리샤에게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무용극을 보고 왔어요. 내 옆 한 남자가 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웠어요. 이 발레사진에다 직접 피나 바우쉬의 사인을 받아왔어요. 알리샤도 어서 일어나 다시 춤출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베니그노
쉬는 날 베니그노는 흑백무성영화를 보러갑니다. 알리샤를 처음 만난 날, 그녀는 흑백영화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알리샤의 아버지는 의사입니다. 베니그노는 알리샤가 보고 싶어 무작정 알리샤 아버지 병원을 찾아갑니다. 그녀 아버지에게 진찰받습니다. 이때 몰래 들어가 본 알리샤 방에서 무성영화책을 봅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 속에 영화를 배치합니다. 7분 분량의 흑백 무성영화 ‘애인이 줄었어요(Shrinking Lover)’를 따로 마련합니다. 작은 흑백 영화는 코믹하지만 슬픈 이야기로, 여성에 대한 알모도바르 감독의 숭배의식이 엿보입니다.
알프레도와 미모의 女과학자 암패로는 연인 사이. 어느 날, 암패로는 새로운 다이어트 약품을 발명합니다. 알프레도는 자신의 사랑을 그녀에게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시험약을 먹습니다. 약을 먹은 알프레도 몸이 부작용으로 점점 작아지기 시작합니다. 치료제를 발명하지 못한 암패로는 갈등합니다. 알프레도는 결국 손가락만한 크기로 줄어듭니다. 알프레도는 몸이 작아져 암패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결국 그 남자는 그 여자의 곁을 떠납니다. 암패로도 알프레도를 잊지 못해 알프레도의 어머니 집에서 그를 탈출시켜 데리고 나옵니다. 다시 행복한 연인이 된 거인과 소인 두 사람. 알프레도는 암패로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결국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갑니다.
‘애인이 줄었어요(Shrinking Lover)’를 보고 와서 알라샤에게 전해주는 베니그노의 목소리가 떨립니다. 알리샤를 아름답게 메이크업을 해주고 굳은 다리를 마시지를 해주는 베니그노 표정이 오늘따라 자못 흥분되어 보입니다. 스크린에 갑자기 노란색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더니 좌우 두 군데 빨간 액체 두덩이가 나타나 근접하다가 서로 합쳐지는 영상이 나타납니다.
상처 입은 사람끼리 사랑에 빠지다
여자 투우사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 거친 투우를 상대하면서 거뜬히 해치우는 그녀의 카리스마는 유명합니다. 그녀는 동료 투우사와 사랑에 빠졌으나 현재 헤어지는 중입니다. 강인한 그녀의 표정엔 슬픔이 섞여 있습니다. 남성위주의 투우사 세계 속에서 꿋꿋이 견디는 것은 투우사로 살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뜻을 잇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때 여행지 기자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가 등장합니다. 리디아가 텔레비전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해 황당한 질문에 봉변당합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리디아를 보면서 마르코는 인터뷰할 것을 결심합니다. 리디아를 찾아가 ‘삶이 버거운 여인’에 관한 기사를 쓰고 싶다는 제의를 하지만 리디아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집으로 바래다준 리디아가 자신의 집에 침입한 뱀에게 놀라 뛰쳐나오자 마르코가 리디아를 돌봐줍니다. 마르코는 뱀을 퇴치하면서도 눈물을 짓습니다. 뱀에 쫓기던 옛 연인과의 사랑이 생각난 것입니다.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현실적인 마르코. 그는 잘 우는 남자입니다.
그는 오래 전 연인과 헤어진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마르코는 여행 기자답게 연인 안젤라와 동행하며 전 세계로 취재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안젤라는 약물중독에 빠지고 맙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약물중독이 마르코와의 사랑 탓인 줄 알고 그들의 사랑을 떼어놓으려고 했습니다. 마르코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상처는 깊었습니다. 그때부터 마르코는 아름다운 장면이나 슬픈 순간에 처하면 눈물이 먼저 납니다. 실연에 사무친 마르코가 오랜 사랑이후 이별을 결심하는 리디아를 만난 것입니다. 둘 다 사랑과 이별의 날카로운 외줄 위에서 서로 만난 것입니다.
금박 수가 화려한 투우사 복장을 갖추는 리디아의 표정이 자못 비장합니다. 수개월간 마르코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동료투우사 발렌시아와의 옛 관계에 대해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발렌시아는 리디아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합니다. 오늘 투우 경기에 나오는 소는 500kg이 넘어가는 강적. 아버지가 물려준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마르코에겐 경기가 끝난 후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해뒀습니다. 투우가 갇혀있는 검은 문이 열립니다. 리디아는 붉은 천을 펼치고 심호흡하며 투우를 기다립니다. 육중한 검은 소가 뛰쳐나와 정면으로 리디아에게 달려듭니다. 리디아는 피하지 못하고 짓이겨집니다. 관중들이 놀라서 일제히 기립하고 마르코도 발렌시아도 벌떡 일어섭니다. 병원으로 실려 간 리디아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는 신문보도가 화면에 겹쳐집니다.
그녀에게 말을 해요, 기적을 믿어요
같은 병원에 알리샤와 리디아는 함께 입원해있습니다. 마르코는 의사에게 묻습니다.
“리디아는 희망이 있나요”
“엄밀히 말하면 희망은 없습니다, 환자가 눈을 뜨고 있어도 기계적으로 뜨고 있을 뿐이에요.”
마르코가 알리샤 병실을 지나칩니다. 열려진 문사이로 알리샤와 베니그노가 보입니다. 마사지하던 베니그노는 마르코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합니다.
“알리샤, 저번에 말했던 그 분이 왔어요. 무용 발표회 때 당신이 우는 모습을 보았지요.”
두 식물인간을 간병하는 두 남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베니그노는 마르코에게 충고합니다. 리디아를 사랑한다면 자꾸 이야기를 건네라고 합니다.
“그녀에게 말을 해요, 기적을 믿어 봐요. 필요하니까요”
마르코는 “그냥 믿는 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묵묵히 병실을 지킬 뿐입니다.
같은 처지 두 남자는 다른 선택을 하지만 둘 사이에 따뜻한 우정이 싹틉니다. 어느 화사한 날. 두 남자는 휠체어에 두 여자를 태우고 바람을 쏘입니다. 선글라스를 쓴 두 여자는 고개를 맞대고 마치 무슨 얘기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베니그노가 말합니다.
“이 둘은 지금 무슨 얘기를 나눌까요.”
리디아의 옛 연인 발렌시아가 병실로 찾아와 리디아와 자신은 사고 전에 다시 화해하기로 했다고 주장합니다. 리디아는 이 사실을 마르코에게 고백하려는 때를 찾다가 사고를 당한 것일까. 마르코에게 이별을 고해야 한다는 심경이 경기장에 선 그녀를 뒤흔들어 놓았을까. 발렌시아는 이제부터는 자신이 리디아의 병실을 지키겠다고 말합니다.
마르코는 조용히 물러섭니다.
“베니그노, 이제 나는 다시 혼자가 됐소. 떠날 때가 된 것 같아”
“당신이 떠난다니 슬프군요. 나도 외로워서 알리샤와 결혼할거예요”
“베니그노, 정신 차려요. 현실을 알아야지. 알리샤는 죽은 사람이야. 나무를 키우다가 정들었다고 나무와 결혼을 할 수는 없어요”
8개월 후 요르단 한 해변. 마르코는 신문에서 리디아의 부음기사를 읽습니다. 33살의 여투우사 사망. 병원으로 전화를 하니 베니그노가 알리샤를 강간한 혐의로 세고비아교도소에 수감중이라고 합니다. 마르코는 급히 마드리드로 돌아와 베니그노에게 면회를 갑니다.
“종종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쓴 여행 가이드를 읽거든요”
면회실에서 베니그노가 반갑게 웃습니다.
“알리샤를 못 봐서 너무 괴로워요, 알리샤와 아이소식이 너무 궁금해요”
마르코는 알리샤 측 변호사 조언대로 거짓 답변을 합니다.
“아이는 출산 중 사산했고 알리샤는 계속 코마상태”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알리샤에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출산 중에 아이는 사산했지만 그녀는 정상인 상태로 회복됐습니다. 알리샤는 혼수상태로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베니그노 집으로 이사한 마르코는 무용학원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알리샤를 목격합니다.
“안녕, 마르코. 저는 이제 이 교도소를 탈출하려고 해요. 알리샤에게로 가려고 합니다. 저도 코마 상태가 되면 알리샤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나중에 내 무덤에 오면 모든 것을 얘기해줘요”
베니그노는 마르코에게 유서를 남기고 약을 먹고 자살합니다. 슬픔에 잠긴 마르코는 유품을 정리합니다. 베니그노 무덤 속에 알리샤 사진, 알리샤 머리핀, 베니그노 어머니의 사진을 넣어줍니다.
막이 오르면 세계적 안무가 피나 바우쉬 ‘마주르카 포고(Masurca Fogo)’공연이 시작됩니다. 무대 위 남자들의 손길 위로 떠받들어진 여자는 깊은 한숨만 토해냅니다.
앞줄 객석 슬픈 남자 마르코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이제 무용극 공연 객석엔 베니그노 대신 알리샤가 앉아있습니다. 중간 휴식시간 로비. 지팡이를 짚은 알리샤는 건너편 쇼파에 앉은 마르코와 마주치자 미소를 보냅니다. 알리샤 눈빛은 마치 첫눈에 반한 모습입니다. 알리샤에게 마르코는 처음 보는 남자지만 마르코는 베니그노의 연인 알리샤를 알고 있습니다.
무용극 공연은 다시 시작됩니다. 무대위에선 기타리스트 바우의 ‘라퀼(Raquel)’이 흐르면서 일곱 쌍의 남녀가 경쾌한 춤을 춥니다. 마르코는 고개를 돌려 알리샤를 쳐다보고 알리샤 또한 그 시선에 웃음으로 답합니다. 퍼쿠션의 밝은 리듬이 새로운 미래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대, 소통하고 느껴라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 공식 홈페이지 인터뷰코너에서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밝힙니다.
“정신과의사인 알리샤 아버지가 베니그노를 면담했을 때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습니다. 베니그노는 외로움이라고 대답합니다. 마르코 또한 늘 외롭습니다. 그래서 항상 세상을 방황합니다. 외로움은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에게 묻어있습니다. 리디아도 알리샤도 발레선생님 카타리나도 외롭습니다. 하다못해 리디아를 짓이긴 검은 투우도 거대한 경기장에 홀로 남겨져 외롭습니다. ‘그래요, 외로워요.(Loneliness, I Guess)’가 어쩌면 이 영화의 또 다른 타이틀입니다.”
<그녀에게>는 외로움에 대한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외로움은 어떻게 만나고 버거움과 버거움은 어떻게 해소되는 지를 보여줍니다. 연인들 사이 의사소통과 소통장애를 역설적으로 배치했습니다. 끊임없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중증 침묵 앞에서도 독백이 얼마나 훌륭한 대화가 될 수 있는지, 몸으로 표현하는 침묵이 어떤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지를 은은하게 깨닫게 해줍니다. 영화 <그녀에게>는 고독 질병 죽음 광기에 맞서는 무기로써 대화를 내세웁니다. 동시에 광기(Madness)라는 것도 정상적인 것, 상식적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베니그노는 4년을 하루같이 알리샤를 씻깁니다.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그녀를 마사지하고 화장을 해줍니다. 알리샤가 어서 빨리 깨어나기를 기도하지만 지금도 행복합니다. 그녀가 어떤 상태이든 매순간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 혼수상태 여인과 사랑하기란 쉬운 일인가. 그의 사랑은 외로움에서 건저 낸 사랑입니다. 알리샤가 좋아했음직한 모든 것을 갖다 바치고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주려 합니다. 베니그노의 사랑은 알리샤의 기적같은 깨어남과 상관없이 매순간 완결적인 행위이자 메시지입니다.
반면 리디아를 향한 마르코의 사랑은 대조적입니다. 한 곳에 정주치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합니다. 알리샤를 돌보는 베니그노는 생기발랄하지만 리디아를 바라보는 마르코는 지쳐있습니다. 오직 ‘리디아가 깨어날 수 있을까’ 가능성만 바라봅니다. 부활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옛 연인이 기득권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 망연자실 병실에서 물러나고 맙니다. 베니그노가 알리샤와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마르코는 현실적인 판단력을 강요하며 베니그노를 타박합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 듣는 것을 전제로 하는 행위입니다. 독백도 결국 스스로가 듣습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식물인간이 된 알리샤를 통해 말의 의미와 몸으로 표현하는 비언어의 세계를 관객이 주시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녀는 살아있으나 듣고 말할 수 없는 존재. 즉각적인 반응도 할 수 없습니다. 생명만 붙어있는 그녀에게 한결같이 말을 건넵니다. 그것이 베니그노 혼잣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단견일 뿐. 그에겐 대화가 통하는 정상인과 다름없습니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알리샤를 산 사람 대하듯 말을 거는 모습은 정상일까요, 광기일까요.
병원검진에서 식물인간 알리샤가 임신한 것으로 판명납니다. 베니그노가 알리샤를 강간(?)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극중 무성흑백영화를 통해 강한 암시를 줄 뿐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강간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감독은 그걸 강간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관객의 판단 몫으로 남겨둡니다. 베니그노는 한낱 스토커였을까. 도덕적 잣대로 보자면 비난받아야할 일이지만 연민을 넘어 공감까지 하게 합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시선은 베니그노의 ‘완전한 헌신’에 긍정적입니다.
베니그노는 알리샤로부터 격리되고 수감됩니다. 출산과정을 통해 뇌사상태 알리샤는 정상인으로 돌아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자리를 빼앗긴 베니그노는 절망하여 자살합니다. 정상인 알리샤는 4년 동안 자신에게 바쳐진 베니그노의 지순한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까.
흩어져 있던 네 사람이 어떻게 하나의 관계망으로 만나는지를 영화는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하다 사회자의 억지질문에 흥분해 뛰쳐나가는 리디아에게서 마르코가 발견한 것은 ‘삶의 버거움’이었습니다. 이 버거움에 공감한 마르코는 당장 그녀를 만나러 갑니다. 모두 삶이 버겁고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기적을 믿지 못하는 마르코는 리디아에게 말을 걸지 않습니다. 결국 리디아는 마르코의 말을 받아 보지 못한 채 죽습니다. 강간혐의로 수감된 베니그노 후견인 노릇을 하면서 마르코는 베니그노의 진정한 열망을 깨닫습니다. 되살아난 알리샤를 통해 이를 확인합니다. 이제 마르코 또한 사랑의 힘을 믿는 존재가 됩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외로운 공간에서 독백만 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마주보며 대화를 시작하는 그 순간에 구원의 조명을 비춥니다. 사람과 사이엔 무엇이 있는가. ‘섬’이 있는가. 그 섬에 외로운 사람끼리 상륙해볼까요. 영화는 그 섬에 소통의 씨앗을 뿌리라고 말합니다.
1. 전에 보았던 영화가 다시보고 싶어 인터녯을 검색중에 본 영화중의 하나 입니다.
2. 그리고, 더 중요한것은 그(?) 또는 다른 여자투우사가 나오는 영화인지 잘 모르지만 영화삽입연주 및 음악(은발의 음악가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하는….애절한 음성 및 연주)이 더 좋아서 그 음악을 알려고 한 것 같습니다.
3. 그 음악을 아시면 이메일로 연락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