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지켜주고 싶었던 ‘타인의 삶’

아시아엔은 오는 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한 남자가 있습니다. 차갑고 하얀 표정의 이 남자. 타인 앞에서 한번도 웃지 않았던 남자의 변화가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독일영화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 The Lives Of Others)>.? 2007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입니다. 실제 있었던 일처럼 스토리라인이 탄탄합니다. 저수지 휘젓는 잉어처럼 마음에 파문을 남깁니다.

때는 통일독일 5년 전 1984년. 비즐러는 은닉된 신분으로 타인을 감시하는 비밀 경찰입니다. 동독엔 9만 명의 슈타지(비밀경찰)와 약 17만 명의 비밀 정보원이 활동합니다. 가히 국가에 의한 총체적 전 국민 감시체제입니다.

가족 혈육 사랑 우정 신념을 비웃듯, 만인에 대한 만인의 밀고시스템으로 유지되는 사회주의 체제의 반인권적 실상. 비즐러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냉혈한의 목소리를 가진 최고의 비밀사찰 전문가. 하지만 성품은 대쪽 같아 조직의 상부에 손바닥을 비비는 타입은 아닙니다. 권력의 속내가 이미 부패한 동독사회에서 출세하기는 멀어 보입니다.

경찰학교 동기지만 출세가도를 달리는 상관 그루비츠대령의 명령으로 도청 임무를 맡습니다. 도청감시 대상은 동독 연극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최고의 여배우 크리스타. 이 잘 생기고 아름다운 중년 커플은 자유혼을 구가하는 예술인에도 불구하고 동독 사회주의체제를 신봉하는, 흠잡을 데 없는 연인들입니다.

감시의 천국에서도 애국적인 그들에게 별다른 반체제 혐의점을 찾지 못합니다. 오히려 흠 하나 없는 것을 슈타지는 의심하여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권력의 핵심층으로 나오는 헴프 문화부 장관과 권력의 줄을 잡고픈 그루비츠의 야합으로 벌어집니다.

헴프는 크리스타에게 흑심을 품고 있습니다. 장관은 연극계 히로인을 차지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아 그녀의 남자를 털어내 버리고자 합니다. 여기에 적발 실적을 세워 출세하고 싶은 그루비츠의 욕망이 가세하는 형국입니다. 그루비츠는 비밀사찰 최고 전문가 비즐러에게 이 연인커플의 24시간 밀착 도청을 맡깁니다. 슈타지는 드라이만의 집 곳곳에 도청장치를 설치합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소리는 수집되고 기록됩니다. 비즐러는 시간대별로 취합, 분석하여 상관에게 보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지식인들을 조롱하는 방식은 동서고금 대개 유사합니다.

그루비츠는 히죽거리며 말합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어. 꼬투리를 잡아 독방에 가둬놓으면 풀이 죽지. 처자식들 사정 딱하게 되고, 독수공방 처박히고 호소할 곳이 없으면 알아서 기게 된다구. 그 다음부턴 글 안 써. 마냥 조용히 있지. 이렇게 한방 먹이면 끝나지.”

드라이만 집 건너편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자리 잡은 도청 공간. 비즐러는 수신기 헤드폰을 끼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도청되는 드라이만 커플에게서가 아니라 엿듣기 훔쳐보기의 담당자 비즐러의 수십 년 억센 심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비즐러는 권력의 썩은 부패를 목격합니다. 장관이란 권력을 이용, 한 지식인의 사랑을 파괴하고 그의 여자를 훔치려는 스캔들 음모에 자신이 동원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크리스타는 틈을 노리고 접근하는 장관을 피하려하지만 스스로와 드라이만의 안위를 우려한 나머지 만남을 허락하게 되고 차안에서 능욕을 당합니다.

권력 앞에서 예술은 한낱 꼭두각시에 불과함을 절감한 크리스타는 비탄에 빠집니다. 엿듣는 비즐러는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이 흔들릴까봐 되레 걱정이 되어 가슴 졸입니다.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곡을 듣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두 남녀가 서로 진실로 사랑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일상에 접근할수록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자신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드라이만의 서재에서 브레이트 시집을 몰래 가져와 시를 읽습니다. 여자를 사랑해보고 싶고 달뜬 소년처럼 시를 낭독해보고 싶은 마음··· 감시당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서서히 감시자의 삶으로 스며듭니다. 드디어 감시자는 피감시자(드라이만과 친구 지식인들)들이 동독의 절망적인 현실을 서방세계에 고발하고자 모의하는 것까지 감싸주는 수호천사로 변신합니다.

서독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편집장까지 드라이만의 집에 와서 ‘작전’을 진행합니다. 위즐러는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 연극대본을 쓰느라 동료들이 들락거리고 있다고 거짓 보고서를 올립니다. 국가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충성을 바쳤던 비밀요원이 이제는 반체제 음모를 돕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비즐러는 사람을 사람답게 표현하는 예술인의 역동적 꿈틀거림에 전염된 듯 합니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감시자가 뒤뚱거리며 제 삶의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집니다. 중년을 넘어가는 독신남 비즐러가 수레바퀴 밑에 깔린 자신을 비로소 건져 올리려는 의지로 다가옵니다.

익명의 동독 작가로 드라이만이 특별기고한 동독의 현실은 슈피겔 커버스토리로 대서특필됩니다. 동독 권력층은 발칵 뒤집혀 기고자를 잡아들이라는 엄명을 내립니다. 드라이만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주목되고, 비즐러 또한 그루비츠의 의심을 사게 됩니다.

추근대는 장관의 유혹을 마다한 크리스타에게 연극 출연금지라는 보복이 닥치고 크리스타는 감옥으로 갈 순간, 슈타지의 제안에 타협하고 맙니다. 드라이만의 행위를 자백한 크리스타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죽음을 선택합니다. 슈타지가 물증을 확보하고자 드라이만 집에 들이닥치기 직전,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숨겨둔 타자기를 들고 나와 증거를 인멸해줍니다.

그루비츠는 직감으로 느낍니다. 이 모든 사태의 조력자가 비즐러인 줄을.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습니다. 비즐러는 한직인 우편 검열원으로 좌천당합니다. 그 순간 동서독을 가로막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은 사라집니다.

통일 독일. 더이상 감시도 도청도 사라진 어느 날. 드라이만은 전 장관 헴프를 만납니다. 다른 예술가와 달리 자신을 왜 도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헴프는 “너야말로 가장 철저하게 도청 당했다”고 확인해줍니다. “지금 당장 너의 집 벽 스위치를 뜯어봐라” 자신의 집 곳곳에서 도청장치를 발견한 드라이만은 아연실색합니다. 도무지 이 사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과연 지난 시절 누가 나를 도왔단 말인가.

분단시절 자료보관소를 찾아갑니다. 자신에 대한 도청기록을 살펴보고 자신 관련 보고자 HGW XX/7 (위즐러의 작전 명)의 얼굴 사진을 확인합니다. 드라이만은 우편배달부 위즐러를 찾아갑니다. 우편물을 돌리고 있는 초라한 위즐러를 먼발치서 지켜봅니다. 이윽고 드라이만은 조용히 차를 돌립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여전히 위즐러는 우편물 수레를 끌고 서점을 지납니다. 서점 쇼윈도우엔 커다란 신간안내 포스터가 걸려있습니다. 바로 드라이만의 신간 소설‘ 선한 이들의 소나타’ 홍보물입니다. 길을 가다 발을 멈춘 위즐러는 서점의 문을 열고 소설책을 들춰봅니다.

그 책의 첫 장엔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서점 직원이 묻습니다. “포장해드릴까요?” “아뇨, 직접 읽을 겁니다.” 이 장면에서 ‘웃지 않는 남자’ 위즐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희미한 미소를 머금습니다. 권력이 결코 훼손하지 못하는 휴머니즘이 덜커덩 가슴에 돋아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찬란하게 되살아납니다. 음지는 표현을 만나 양심을 열고 표현은 음지를 통해 자유를 얻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서로 파고듭니다.

감독 각본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위즐러역 = 울리쉬 뮤흐 Ulrich Muhe

드라이만역 = 세바스티안 코치 Sebastian Koch

크리스타역 = 마티나 게덱 Martina Gede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