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공자의 부활…’중용의 도’가 간절한 순간

타이틀 : <공자 – 춘추전국시대> (Confucius)
감독 : 호 메이
출연 : 주윤발, 주신, 진건빈
제작국가 : 중국
개봉 : 2010년

공자 스토리텔링은 이제 시작이다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왕은 실권이 없는 군주였습니다. 공자를 등용해 무너져가는 왕권의 부활을 노립니다. 하지만 실제 권력을 휘두르는 세도가들은 공자를 배척합니다. 공자가 설파하는 당위성이 그들의 기득권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인덕 정치는 적자생존과 부국강병을 내세우는 현실정치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관직을 내놓고 공자는 따르는 제자들과 주유천하에 나섭니다. 중원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제후들은 공자의 이상정치를 한낱 술자리 안줏감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공자를 품은 뜻은 좋지만 현실을 모르는 청맹과니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은 권모술수와 영토확장이야말로 현실적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습니다.

영화 <공자>는 웅장한 서사를 다룬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닙니다. 공자의 기구한 일생을 다룬 전기영화입니다. 반전과 음모와 액션이 없기에 밋밋하고 담담합니다. 그래서 공자가 더 잘 들여다? 보입니다. ‘논어’ ‘춘추’ 등 고전을 통해 말씀으로만 체험했던 공자의 면모가 생생하게 형상화됐습니다.

주윤발의 연륜 깊은 연기는 세상을 떠돌며 인(仁)을 설파했던 공자의 간난신고 여정을 잘 드러냈습니다. 동양사회 유교이념의 진원지를 과장 없이 서술했습니다. 진지하고 교육적입니다. 어깨에 힘주지 않는 영화로서 상업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비영화적인 요소들이 오히려 미덕입니다.

2500년 전 공자에 대해 문화혁명 인민재판을 감행했던 중국 공산당 정부가 공자를 복권시키고 숭앙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공자 스토리텔링은 이제 첫 물꼬를 튼 셈입니다. 하지만 앞장서서 관제 냄새 풍기는 복권작업은 진정한 공자 부활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자와 자로, 그 사제지간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동네건달 출신입니다. 제자 중에 가장 연장자이고 스승과 아홉 살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을 향한 뜨거운 존경심은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논어를 통해 본 자로는 실리적이고? 실천을 중시합니다. 공자는 그의 화끈한 성격을 늘 염려하고 다독여줍니다. 영화 속 제자들 중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입니다.

공자 일행의? 주유천하는 늘 곤궁한 생활에 직면합니다. 자로는 의식주 살림살이를 챙겼고 힘든 일에 먼저 나아갔습니다. 위나라 군주는 검술에 능한 자로에게 무관 벼슬을 내립니다. 관직에 나아가는 제자를 공자는 격려해줍니다. 영화의 한 장면.

– 제자가 벼슬을 받으니 기쁘다만 지금은 천하가 어지러우니 불안하구나. 너를 보내기가 망설여진다.
– 사부님, 얼른 자리를 잡아 위나라 내란을 빠르게 평정하여 사부님을 국상(國相)으로 모시겠습니다.
– 매사에 서둘러서는 안 된다. 자로야, 넌 너무 서두르는 게 탈이다. 혼란할 때는 특히 그렇다.
– 예, 잘 알겠습니다. 하오나 제가 서두르는 건 예로써 다스린다는 사부님 가르침을 하루라도 빨리 실천하고 싶어서 그러하옵니다.
(공자는 자로를 일으켜 세워 제자의 의관을 매만져줍니다.)
– 정치를 행하는 자는 행동거지와 심지가 대쪽처럼 곧아야 한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아라.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 그 말씀 죽을 때까지 명심하겠습니다. 옥체보존 하십시오.
(지팡이 짚은 스승은 멀리 길 떠나는 제자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봅니다. 위나라 무관이 된 자로는 진나라가 쳐들어오자 어린 군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합니다.)
–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군자는 죽음을 맞이할 때도 떳떳해야 하는 법…
(싸움터에서 죽음에 이르자,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 투구를 바르게 쓴 다음 적의 칼을 재차 맞고 쓰러집니다. 나중에 자로의 의로운 죽음 소식을 듣게 된 공자는 쓰러져 곡을 합니다.)
– 그렇지. 옳구나. 자로야, 너의 마지막은 역시 군자답구나.
(스승은 눈을 들어 먼 설산을 응시합니다. 얼마 되지 않아 공자마저 세상을 하직합니다.)

마음의 道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논어를 읽으면 공자의 마음이 보입니다. 춘추전국시대 난세를 겪으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제자들과 고민하던 공자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그의 사상이 두드러지는 몇몇 구절을 살펴봅니다.

*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
? (자왈,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 득지 불처야,
??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 득지 불거야) <이인(里仁)편 5장>

공자 말씀하시길 “부유함과 귀함,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늘 얻고자 하는 것. 그러나 道가 아닌 방법으로 얻었거든 누리지 말라. 가난과 천함,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하지만 道가 아닌 상황에서는 빈천에 처하더라도 버리지 말라.”

공자께서 직시하는 기도(其道)란 무엇일까. 아마 정도(正道)일 것입니다. 편법을 구하지 않는 정도를 걸어가라는 설파로 읽힙니다. 세상은 훨씬 편해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문명의 변화는 날이 선 칼날같이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변화에 한번 뒤쳐지면 영영 낙오자로 낙인찍힐까봐 조바심이 끓어오릅니다.

앞선 자도 불안하기 매한가지. 왜냐하면 많이 모으고 많이 소유하여도 소유의 속도에 치여 진정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소유는 짐이 되고 굴레가 되고 스트레스가 됩니다. 스트레스는 존재의 혼을 갉아먹습니다. 바로 공자가 말씀하신 일상의 도가 절실해지는 순간입니다.

도는 저 깊은 산속의 도가 아닙니다. 저자거리를 왕래하는 백성들이 깨닫고 누려야할 낙관의 도입니다. 부귀가 생의 목표로 내걸어지는 순간, 소유의 광폭함에 내 정신은 매일 굶주릴 것이요, 휘청거릴 것입니다. 빈천의 강박증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평상심을 옭아맬 것입니다. 중용의 도가 간절해지고 성현의 가르침이 절실해지는 시점입니다.

*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 (자왈, 군자부중즉불위 학즉불고,
??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학이(學而)편 8장>

공자께서 군자의 수양 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군자는 무겁지 않으면 위엄도 없다. 학문을 해도 견고하지 않다. 충(忠)과 신(信)을 주력으로 삼아라.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사귀지 말라. 허물이 있거든 고치기를 꺼리지말라 ”고 하십니다.

무겁게 행실을 하라는 말씀은 애써 차린 권위로 포장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살피고 일의 진행을 진득하게 밀고나가라는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마음속에 忠으로 삼는 목표를 세우고 信으로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이 군자의 무게중심일 것입니다. 세속적 셈법에만 눈이 팔린 무리를 경계하고 스스로에게 조금이라도 허물과 과오가 발견되거든 즉시 고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 불멸의 훈령은 듣고 또 들어도 울림이 큽니다.

혼탁하고 경계의 뒤섞임이 극심한 시대를 살아갈 때, 인간은 그 누구라도 허물 짓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미력해 늘 모자람을 탓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은 과오를 행했을 때 그 잘못을 고치려는 인간과 그 잘못을 방관하는 인간으로 갈립니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허물입니다.(過而不改 是謂過矣).?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 성찰의 삶을 살펴갈 때 늘 챙겨야할 최고의 아포리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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