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또다른 ‘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Directed by Krzysztof Kieslowski?
Irene Jacob …. Veronika / Veronique?
Original music by Zbigniew Preisner

# 故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적 미장센을 좋아하십니까.
그의 문제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The Double Life Of Veronika>.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는 유러피안의 시선으로, 베로니카는 제게 다가왔습니다.

1991년 개봉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국내 상영기간이 무척 짧았습니다. 비디오테이프는 구하기 힘들었고 특별상영 기회를 찾기란 더욱 묘연했습니다. 그 아쉬움은 키에슬로프스키 마니아들을 늘 목마르게 했습니다. 그 갈증이 18년 만에 풀렸습니다. 특별 DVD가 출시된 것입니다. 극장 개봉 당시 삭제된 장면까지 넣은 완본이며, 고화질(HD) 텔레시네작업을 마친 특별판(SE)입니다. 별도 DVD에는 2시간40분에 달하는 풍성한 부가영상을 담았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단편 영화 4편과 다큐멘터리, 감독 인터뷰, 이렌느 야곱의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인터뷰까지 수록되었습니다. 게다가 영화 속에 쓰인 OST가 전부 들어있는 오디오 CD까지 첨부되었습니다.

# 생전 영화 작업 모든 순간 손끝에 담배를 놓지 않았던 키에슬로프스키는 인터뷰 영상에서 자신의 영상미학론을 펼쳐 놓습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 이야기를 말과 언어로 뽑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제 영화는 마음을 열고 보셔야 합니다. 부끄러움, 자존심을 버리고 봐야합니다. 모든 사람들 심연에 흐르는 공통적인 것을 노크하고 싶었습니다.”

1인2역의 주인공 이렌느 야곱. 이제는 마흔을 넘어선 (여전히 지적인) 최근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쁨입니다. “직관과 예감으로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갈 때 한편의 서정시 같았습니다. 충만과 허무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습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님은 스토리가 아닌 느낌과 직관들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클로즈업이 대부분이었기에 입술을 움직이는 것도 사전에 준비했습니다.”

폴란드 태생의 작곡가 즈비그니에프 프라이즈너가 풀어내는 사운드 트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갈색 톤의 화면은 때론 주술적인 분위기마저 풍깁니다. 화면 그 자체로 한편의 단색 풍경화 같은 영상미, 아련히 존재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음악, 언어가 잦아든 몽환적인 스토리로 관객들이 제각각 사념을 곱씹게 만드는 편집. 바로 삼위일체의 이 조화가 20년이 지나가도록 영화의 생명력을 북돋우고 있습니다.

도플갱어, 까닭모를 슬픔, 조우, 빛의 가루들, 영상, 일상, 아픔, 늙음, 노래, 음악, 사랑, 육체, 죽음···.?이 모든 예술적 상징들이 살아 숨쉬는 ‘베로니카의 세계’로 한번 떠나보시길···.

# 음악과 버무려져 영화팬들의 입소문이 무성한 영화.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꼭 넘어서야할 대상이 故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slowski) 감독입니다. 키에슬로프스키감독의 가장 문제적 작품이 바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The Double Life Of Veronika> 입니다. 1991년 한국에 개봉될 때 수입업자가 붙인 제목은 상업성을 노린 흔적이 역력합니다. 정직한 번역은 ‘베로니카: 두개의 삶’정도가 됩니다.

# 어딘가에 자신의 분신이자 나의 닮은 꼴인 도플갱어(Doppelganger, Double Gore)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으세요. 똑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와 나. 서로는 서로만 알아봅니다. 이 둘은 서로 만나게 되면 먼저 본 자가 죽게 되는 비극의 운명을 갖습니다. 독일 민담에서 유래하여 범 유럽적 상상력으로 자리 잡습니다. 근대의 많은 문학가들이 이 운명적 설화를 차용합니다.

동과 서의 이념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1990년.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시기 폴란드 크라코우市 광장. 젊은이들이 행렬을 이루며 무언가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때 폴란드 베로니카와 프랑스 베로니크는 운명적 일별을 겪습니다. 폴란드 베로니카는 관광온 프랑스 베로니크를 또렷이 목격합니다. 시위대의 소요탓에 황급히 관광버스에 올라타는 관광객들. 일행에 섞인 베로니크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댑니다. 아, 건너편에서 베로니크를 응시하던 베로니카는 베로니크 카메라 필름 끝자락에 담기고 맙니다.

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혹시 저 먼 땅에 나와 똑같은 애가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지요. 아무런 이유도 원인도 없이, 우울하고 슬퍼질 때 “저 먼 땅의 그 애와 내가 혹시 서로 교신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도 했지요. 베로니카와 베로니크는 똑같이 1966년생이고, 세 살때 난로에 손을 데었고, 성악에 특출한 재능이 있고,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父女끼리 살아갑니다. 가죽 끈이 긴 악보첩을 가졌고, 가락지로 눈 아래를 어루만지는 습관도 같습니다. 동시에 치명적인 심장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붉은 스웨터에 검은 코트를 종종 입습니다.

# 폴란드 출신 키에슬로프스키감독은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영상화한 三色 시리즈 ‘블루’ ‘화이트’ ‘레드’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영화 마니아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바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입니다. 갈색 톤의 원초적인 영상은 마치 한편의 성인동화를 빚어낸 듯합니다.

1990년대 초 폴란드 정치적 풍경을 묘사한 몇몇 씬들은 ‘베로니카···’를 색다르게 해석하게 하는 이유도 됩니다.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과 유럽 통합의 大격변기가 도플갱어의 두 여성의 삶에 녹아 있다는 해석 말입니다. 결국 하나임을 확인하게 되는 베로니카와 베로니크, 동유럽과 서유럽의 상황이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는 셈입니다.

음악을 맡은 프라이즈너는 애조 띤 단조의 음률로 영화를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영상詩로 승화시킵니다. 이 예술영화가 영혼을 뒤흔들며 우리의 폐부에 깊이 각인되는 데는 프라이즈너의 영명한 선율이 큰 몫을 합니다. 각 장면의 테마마다 꼭 맞게 배치된 음악은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요소이며 베로니카와 베로니크를 한 영혼으로 이어줍니다.

영화음악이 철학의 경지로까지 다다른 사례는 드뭅니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영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프라이즈너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三色 연작과 ‘사랑에 대한 짦은 필름’ ‘살인에 대한 짧은 필름’ 등의 십계 시리즈 외에도 루이말 감독의 ‘데미지’ ‘남자가 사랑할 때’등의 영화음악을 맡기도 했습니다.

# 타고난 독특한 음색으로 콘서트의 솔리스트로 데뷔하게 된 폴란드 베로니카. 먼 곳에서 자신을 찾아온 연인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베로니카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이미 도플갱어를 목격한 베로니카의 운명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거리를 걷는데 까닭 모르게 가슴의 통증이 엄습합니다. 이윽고 콘서트에 선 베로니카.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어우러진 독창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지금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이 바로 ‘Van Den Budenmayer concerto e minor’입니다. 그녀의 반덴 부덴마이어 콘체르토 E 마이너 소프라노 버전은 죽음을 바로 앞둔 처연한 절창입니다. 서서히 고음계로 상승해가는 단조 선율엔 존재의 희로애락이 서려있습니다. 영상과 음악이 하나 되어 빚어낼 수 있는 최고의 장면입니다. 장중한 콘서트 도중 절명한 베로니카. 그 죽음의 메아리는 곧바로 프랑스 베로니크에게 그대로 공명되어 울려 퍼집니다.

#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두 곳에 존재함을 느낀다··· 이상한 감정이야.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와 비슷한 무언가를 잃은 듯 슬픈 느낌이야” 베로니카가 절명한 후 ‘자신의 삶에서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상실감에 빠진 프랑스의 베로니크. 그녀는 성실한 초등학교 음악교사입니다.

이 때 베로니끄의 삶 속으로 인형극 공연가이자 소설가인 알렉산드르가 서서히 스며듭니다. ‘의식의 이중성’과 ‘이중 자아’에 대한 소설을 쓰기 위한 탐구 대상으로 베로니크를 선택한 그는 몇몇 우편물을 그녀에게 보냅니다. 폴란드 베로니카의 흔적들을 전달함으로써 두 여인의 이중 존재감를 이어주며 부활시켜주는 매개자가 됩니다.

알렉산드르가 조종하는 ‘춤추는 발레리나’ 인형극 씬은 인상적입니다. 춤추던 발레리나는 다리를 다쳐 절망 속에 죽어가고, 여신은 상처입고 죽어가는 발레리나의 몸에 흰 천을 덮습니다. 다시 하얀 천이 벗겨지면 발레리나는 여신으로 부활하여 비상합니다. 발레리나의 절망, 죽음, 부활이라는 드라마틱한 인형극을 연출하는 알렉산드르. 그를 응시하는 베로니크의 눈길은 사랑에 빠진 모습입니다.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1인 2역을 열연하며 전 세계 뭇 남성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그녀. 이렌느 야곱의 매력은 깊이 각인됩니다. 이렌느는 이 영화로 1991년 깐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허리우드식 영화作法을 완전히 떨쳐버린 유럽식 스토리텔링. 비논리적이고 애매모호합니다. 하지만 감성이 넘치는 詩的 전개. 유러피안들의 몽환적 세계관이 질펀하게 녹아 있습니다.

거기에 프라이즈너의 테마 음악들은 문외한도 감전시킬 만큼 감동을 줍니다. 우린 모두 현실에 묶여있습니다. 동시에 늘 현실 탈출을 꿈꿉니다. 절대로 헤어날 수 없는 현실, 해방되고픈 갈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늘 우리곁에서 아른거릴 것입니다.

# 워싱턴포스트 영화평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동구와 서구의 베로니카란 이름을 지닌 두 여성의 삶을 평행으로 이어 붙여 개인의 정체성과 동구와 유럽의 현실, 그리고 삶을 재현하는 영화매체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놀라운 표현의 깊이를 담은 작품이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에로티시즘과 멜랑콜리 사이의 어딘가를 떠도는 연약하고 최면에 걸린 듯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당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닌 무언가 부족한 존재처럼, 혹은 뿌연 유리를 통해 일식을 보는 것처럼, 또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붕괴되어 심장이 한번 뛰는 사이에 모든 것이 당신의 눈앞에 전광석화처럼 지나간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키에슬로프스키는 결코 그의 이야기에 결론을 내지 않는다. 음악을 통해 이 영화는 우리를 완전히 그들의 세계로 끌어 당기며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우리 자신의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풍요로우며 놀라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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