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목격자의 방관···폭력은 증폭된다


타이틀 :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감독 : 장철수
출연 : 서영희(김복남 역) 지성원(해원 역) 박정학(만종 역)
개봉년도 : 2010

남녘 바다 외딴 섬 무도. 언뜻 보기에 평화로운 섬.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상상하기만 해도 불쾌한 죄를 짓습니다. 결국 죄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혀 복수를 꽃피우게 합니다. 한 여자에 대한 집단 학대극이 펼쳐집니다. 곧이어 학대받은 여자의 처절한 복수극이 대미를 장식합니다.

2010년 하반기 많은 화제를 뿌렸던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기상천외한 대본에서 태어난 작품이 아닙니다. 젊은 신예 장철수 감독은 3건의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1991년 남원에서 발생한 ‘김부남 사건’, 1992년 충주에서 일어난 ‘김보은-김진관 사건’, 그리고 2004년 벌어진 ‘밀양 여중생 사건’을 가리킵니다. 영화는 주인공 김복남이 왜 살인범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애당초 살인범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 속 ‘김복남 사건’이 신문에 보도된다면 뉴스 헤드라인은 『30대 여성, 섬 주민 엽기적 몰살』로 정리될 것입니다. 영화는 팩트 안에 숨겨진 처절한 복수의 속내를 추적합니다.


1. 복남의 스토리

한 때 북적거렸던 섬. 단짝 소꼽친구 해원이가 서울로 떠나자 소녀 복남은 외롭게 성장합니다. ‘빌어먹던 년’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살던 복남은 마을 청년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하고 딸 연희를 낳습니다. 하나둘씩 떠난 섬은 고작 열 명 남짓 사는 황량한 곳으로 변합니다. 만종·철종 형제, 형제의 고모, 파주 할매, 순이 할매, 개똥 할매, 그리고 치매 걸린 할아범이 남아있습니다. 이들은 따지고 보면 서로 먼 친척이 되는, 가족도 아닌 남도 아닌 관계입니다. 무도 출신 득수가 운행하는 통통배가 외부세계와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입니다.

만종에게 시집간 복남은 아내로서 대접은커녕 수년째 구타와 중노동에 시달립니다. 섬에서 유일한 남성권력자로 군림하는 만종. 누구 씨인 줄도 모르는 딸을 데리고 왔다며 복남을 하대하다 못해 가축처럼 부립니다. 머리가 약간 모자란 시동생 철종은 형이 집을 비운 사이 형수를 성폭행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밤낚시 한다며 집을 비운 만종은 의붓딸 연희를 데리고 나가 성적 노리개로 삼고 있었습니다. 순간 복남은 낫을 손에 들고 부르르 떨었지만 딸의 안전을 위해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복남에 대한 착취와 억압은 고모를 비롯한 마을 할머니들의 암묵적 승인 속에 자행됩니다. 남근을 숭배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무도 섬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최고 연장자인 고모와 할매들은 만종의 노동력과 경제활동에 의존해야 생존이 가능한 관계망 속에 놓여있습니다. 성차별을 당연시하는 가부장적 권력체계가 작동되도록 고모와 할매들은 적극 협조하고 있습니다.

서열 관계상 가장 하위에 속하는 복남은 섬에서 행해지는 모든 노동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복남의 노동과 눈물, 한숨소리를 깔고 서야 나머지 섬사람들의 희희낙락이 가능합니다. 복남의 유일한 소원은 딸 연희를 섬에서 탈출시켜 노예의 삶을 물려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시기를 지나쳐버린 연희는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채 만종에 의해 의도적으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복남에게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관계의 끈은 어릴 적 헤어진 해원밖에 없습니다. 죽마고우 해원에게 복남은 몰래 편지를 보냅니다. 무도로 꼭 한번 와 달라며 애타는 ‘SOS’를 끊임없이 보냅니다. 서울 사는 해원은 옛 친구의 간절한 절규를 제대로 수신하고 있는 걸까요.

2. 해원의 스토리

서울 소규모 저축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해원은 말 그대로 ‘차도녀’에 ‘까칠녀’입니다. 그녀의 얼굴에 서울의 차가운 인심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연민과 동정이 배어나는 살가운 표정을 찾을 수 없습니다. 타인의 삶에 간섭하기도 싫고 남이 자신의 삶에 끼어드는 것도 질색입니다. 홀로 원룸 오피스텔에 사는 해원의 얼굴은 웃음기 가신 냉랭함 그 자체입니다. 딱한 처지를 호소하며 할머니가 대출 상담을 요청해도 규정을 내세우며 박대하듯 내칩니다.

밤거리 교차로 신호 대기 중. 어두운 골목에서 젊은 여자가 남자 두 명에게 얻어맞고 있습니다. 피를 흘리며 뛰어나와 해원의 차에 달려듭니다. 앞창을 두드리며 도와달라고 절규해도 해원은 귀찮은 듯 유리창을 올려 여성의 위급함을 외면합니다. 며칠 후 경찰에서 목격자 진술을 위해 출두를 요청합니다. 수사관은 해원의 차를 가로막으며 도움을 호소하던 여성의 시신 사진을 보여주며 살인범 추적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경찰서에 와있던 용의자들이 진범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해원은 비협조적입니다. 더구나 풀려난 용의자들이 해원을 가로막고 입막음의 협박을 하는 순간, 그녀는 사건의 목격자로서 침묵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해원이 은행에 출근하는 길. 해원에게 대출신청을 거절당했던 할머니가 후배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후배 여직원의 배려로 대출받은 것입니다. 해원은 후배를 붙잡고 “남자 상사를 어떻게 구워 삶았냐”며 노골적으로 힐난합니다. 해원은 잠시 후 회사 화장실에 갇히는 봉변을 당합니다. 인정머리 없이 쌀쌀한 해원을 청소 아주머니가 의도적으로 욕보인 것입니다. 이를 오해한 해원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후배 직원의 뺨을 갈깁니다. 상황은 해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드디어 상사로부터 권고휴가 명령이 떨어집니다. 해원은 휴가지를 물색하다 복남이를 떠올리고 무도로 향합니다. (결국 무도에 머무르던 중 휴대폰 문자를 통해 정리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3. 내 딸을 죽이는 데 합세한 사람들아

무도에 도착한 해원을 복남은 펄쩍 뛰며 환대하지만 나머지 섬사람들은 벌레 보듯 시큰둥합니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리가 자욱합니다. 섬 도착 후 며칠 동안 무도의 풍광은 해원에게 어릴 적 고향의 푸근함을 되살려줍니다. 하지만 해원은 서서히 복남의 처참한 상황을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복남의 남편 만종이 육지 다방여자를 불러들여 안방에서 정사를 벌일 때 복남이 마루에서 양푼의 밥을 미친 듯이 퍼먹는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합니다. 조용한 시간, 복남이 처지를 고백하며 연희를 의탁하는 부탁을 하자 해원은 즉각 자기방어에 나섭니다. “서울도 여기와 다르지 않고, 너도 성인이니 네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며 복남의 애절한 호소를 회피합니다.

이제 복남은 홀로 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딸 연희는 짐승 같은 만종에게 딸로서가 아닌 성적 노리개로 전락해 길들여져 가고 있습니다. 무도를 다녀간 다방 여자는 오히려 복남의 신세에 연민을 느끼고 무슨 일이든 도울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했었습니다. 서로 약자 끼리 동질감의 연대가 생긴 것입니다. 만종이 술에 취해 뻗어버린 시간. 복남은 현금을 빼내고 만종이 감춰둔 전화기로 육지 다방여자와 연락합니다. 다음날 새벽 복남과 연희는 살금살금 ‘악마의 수렁’을 빠져나와 선착장으로 향합니다. 다방 여자는 득수가 모는 통통배를 이끌고 무도로 옵니다. 하지만 무도 출신 득수는 이미 만종과 한통속입니다. 복남과 연희가 배에 오르려는 순간 득수는 뒤편에 나타난 만종에게 눈인사를 보냅니다.

다시 섬으로 끌려온 복남은 만신창이가 될 만큼 손찌검과 모욕을 당합니다. 얻어맞는 엄마 곁에서 연희는 더 이상 엄마를 때리지 말라며 만종에게 대들고, 만종은 그런 연희를 내팽개칩니다. 힘없이 나가떨어진 연희는 근처 바위에 뒤통수가 깨지며 즉사하고 맙니다. 숨소리 잦아든 자식을 품에 안고 처연한 어미가 동물처럼 울부짖습니다. 만종은 “된장 바르면 나을 것”이라며 짐짓 복남의 고통을 외면합니다. 섬사람 모두가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복남은 집 마당에 연희를 묻습니다. 해원은 멀리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경찰이 옵니다. 서로 구면 사이인 만종은 연희의 죽음을 단순 사고사로 둘러대고 마을 사람 모두 맞장구를 쳐줍니다. 오직 복남만이 만종이가 살인자라고 주장합니다. 경찰은 복남이가 정신이상이라고 강변하는 만종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맙니다. 설움에 복받친 복남은 고개를 돌려 해원을 쳐다봅니다. 유일하게 자기 말을 지지해줄 객지 친구. 목격자 해원이 진실을 말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해원은 “다른 곳에서 있었기 때문에 현장을 보지 못했다”며 회피하고 맙니다.


4. ‘김복남 사건’은 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가.

처절한 약자가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던 자식을 잃고 삶의 절박감마저 포기하고 맙니다. 호미를 들고 야수처럼 감자밭을 캐던 복남은 문득 고개를 들어 이글거리는 태양을 주시합니다.

“한참 태양을 봤더니 태양이 말을 허네”

그 순간 복남이 호미를 놓고 낫을 듭니다. 대낮 낫부림이 시작됩니다. 짐승같은 만종·철종은 며칠 뭍으로 나가 있습니다. 자신이 약탈 유린당할 때 오히려 그 폭력을 두둔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던 할매들이 1차 제거대상이 됩니다. 슬래셔 무비답게 잔혹한 장면이 꼬리를 잇습니다. 저항하던 시고모는 절벽에서 추락해 즉사하고 육지에 나갔다 돌아온 만종·철종 두 사람도 한 사람씩 상상을 불허하는 방식으로 응징당합니다.

어느새 복남의 복수극은 관객의 마음을 훔치고 맙니다. 잔혹극을 펼치고 있는 복남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복수를 직접 주관하며 빈틈없이 가해자와 방관자들을 척살하는 영화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복남의 분노 폭발은 특히 여성 관객에게 카타르시스까지 가져다줍니다.

이제 복수의 칼날은 해원을 향합니다. 중노동, 구타, 성폭행에 시달리는 복남의 처지를 알고도, 더구나 딸 연희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악을 응징하는데 목격자로 나서주지 않았던 친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닙니다. 영화는 주저 없이 해원에게 유죄를 선언합니다. 타인의 삶에 말려들기 싫어하는 개인주의, 나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주의. 서울깍쟁이 해원의 특징은 곧 우리들의 캐릭터입니다. 살아갈수록 동정과 배려하는 마음은 말라갑니다. 강자에게 굽신거리고 약자에겐 불친절합니다. 바로 관객인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잔혹극의 칼날은 침묵하며 스크린을 지켜보던 우리들의 비겁함까지 찌르고 있습니다.

영화는 서울과 섬, 관심과 무관심, 친절과 불친절, 남자와 여자, 억압과 피억압··· 이런 이항대립의 프레임으로 짜여있습니다. 무관심과 불친절이 넘쳐나는 우리 한국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혀집니다. 폭력을 보고도 두렵고 귀찮다며 침묵을 하면 그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자랍니다. 동시에 침묵은 더 잦아들고 폭력은 증폭되어 방관했던 모든 이들을 덮치고 맙니다. 무관심 보다 알면서도 방치하는 방관이 더 악성입니다.

사건 목격자의 양심과 책임성까지 묻는 영화.

“넌 너무 불친절해” 복남이 해원에게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우리 사회의 목격자로서 자격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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